“동생의 조현병이 재발할 것 같아요”

조현병 당사자의 보호자로서, 또다른 보호자 J를 인터뷰하다①

심지안 | 기사입력 2024/09/26 [15:44]

“동생의 조현병이 재발할 것 같아요”

조현병 당사자의 보호자로서, 또다른 보호자 J를 인터뷰하다①

심지안 | 입력 : 2024/09/26 [15:44]

정신분열증이라 불렸던 조현병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조현)라는 뜻으로, 그간 이 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과 오해가 많아 2011년 개명이 이뤄졌다. 실제로도 질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당사자가 적절한 치료나 적극적인 도움을 받는 것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환자 가족 등 돌봄자가 돌봄을 하는 데 있어서도 고통을 야기한다. 사실 조현병은 최근 약물요법을 포함한 치료법에 뚜렷한 발전이 있고, 조기 진단과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지역사회에서 일상생활이 가능한 질환이다.

이 글은 조현병 당사자의 보호자로서 다른 조현병 당사자 가족을 인터뷰하면서 수많은 가족의 돌봄을 돌아보고, 한편으로 이 질환에 대한 인식을 돕고자 한다. 총 3회 연재한다. -편집자주

 

닉네임이 ‘바라’(바란다)에서 ‘지안’(편안함에 이르다)이 될 때까지

 

2007년 9월 26일 오후 2시. 한 포털 카페 조현병 당사자 보호자모임에는 “동생이 재발할 것 같아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온다. ‘어머니도 편찮으시니 동생이 마음을 다잡아 재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는 내용.

 

조현병은 병명 개정 이전에 정신분열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뇌 질환이다. 사고, 감정, 행동을 조절하는 신경전달 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이 이상 활성화되어 망상, 환청, 혼란된 사고 등을 유발하는 것이 그 증상이다. 치료제가 발달해 이제는 적절한 약물치료만 이루어진다면 나름의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만성질환이다. 그런데 글쓴이는 ‘(환자) 당사자가 마음을 다잡아 재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호르몬을 마음으로, 의지로 조절하라는 요구다.

 

이 요구를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16년 전의 나, ‘바라’다. 치유를, 자유를 바란다는 말을 채 맺지도 못하고 말 줄임표를 삼켜 아이디를 지어 쓰던 시절.

때는 암 투병 1년이 돼가는 아내를 자신은 도저히 살릴 수 없으니 네가 살려 달라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먼저 돌아가시기 2달 전이었다.

 

바람과는 달리, 동생은 재발했고 강제(보호)입원이 이어졌으며 동생에게는 아버지의 부고조차 숨겨야 했다. 그 1년 뒤,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어느새 퇴원한 동생이 제 방에서 다시 재발하던 때, 왜 이 참담을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지 과각성된 몸과 마음은 비현실 위를 둥둥 떴다.

그가 죽기를 바란 적이 있다. 그 바람으로 온통 지옥이 된 정신을 건져내기를 주저한 적이 있다.

 

그러나, 2022년 8월 7일. 우리는 누구 하나 죽지 않고 이제 서로에게 부모가 되어주려 애쓰는 유별난 사이가 되어 있고, 나는 자랑을 하러 카페를 다시 찾는다. 이제는 ‘편안함에 이르다’라는 뜻의 ‘지안’이라는 이름으로 그간의 소식을 전한다.

 

▲ 동생의 마중을 받아 집에 이르면 내 고양이 양양이 있다. 동생과 더불어 내게 집이 되어주는 양양. (촬영-심지안)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걸어 스피커폰을 켜고, 할 말이 없어도 각자의 생활 소음을 BGM 삼아 긴 안부를 확인하는, 이 ‘관계’에 대해 쓴다. 어쩌다 늦은 귀가를 할 때면 3분 거리에 사는 남동생은 꼭 마중을 나오는데, 그럴 때면 나는 집 전체가 마중을 나온다 느낀다, 그와 있으면 그곳이 집이다, 적는다.

 

안정기에 접어들기까지 다양한 조력자가 있었을 것

 

16년이 흐른 지금, 카페에는 여전히 부모 보호자가 많다. 내가 낳았으니, 내가 그렇게 키웠으니, 죄책감을 동력 삼는 보호자들.

그러나, 또 다른 마음으로 당사자를 돌보는 이들이 있다. 바로, 형제/자매/남매 보호자들이다. 형제나 자매, 남매가 조현병 당사자여서 부모 대신 돌봄 하는 이들. 최근에는 지력과 마음을 다해 조현병 당사자인 남자 형제를 돌보는 J의 글을 자주 보게 된다.

 

J는 30대 초반의 여성으로 결혼해 원 가족과 따로 살고 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부모님을 도와 당사자를 돌본다. 그의 6살 위 남자 형제는 초진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고 오랫동안 고생하다, 근래 들어서야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한 경우다.

 

당사자의 컨디션을 살피며 입원 가능한 시간까지 숨죽여 날을 새는 밤에 대한 기억은, 조현병 당사자의 보호자라면 하나쯤 갖고 있다. 그 밤들 중의 하루, J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선배 보호자들의 댓글 하나하나를 구조신호처럼 기다렸고, 가슴 졸이는 긴박한 상황은 실시간으로 기록되었다. 뒤늦게 나는 그 밤의 그를 졸라 밤새 통화라도 하며 함께 지새고 싶은 마음이 된다. 언젠가의 나에게 나를 보내고 싶어진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제는 정신질환을 다루는 시선은 이전과는 비교할 만하다. 시행착오 끝에 최적의 의료진과 적절한 약물을 찾아낸 당사자들은 곳곳에서 일도 하고 연애도 하며 루틴을 관리하며 평범을 산다. 주치의 상의하에 약물을 조절해 출산도 치른다. 조현병 당사자들은 일상을 산다. 남다를 것 없이, 남부러울 것 없이.

 

그러나, 이들이 안정기에 들 때까지 다양한 조력자들이 그들의 동반이 되어주었을 것이고 나는 당사자를 돌보며 자신을 지켜 지금까지를 살아내 온 J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의 분투에서 희생이나 헌신, 가족애 등의 순응과 극복의 서사를 넘는 간단치 않은 마음의 경로가 짚인다. 그를 통하면 과거, 내가 가거나 가지 못한 곳에 이른다. 여기 그 대화를 기록해 전하고자 한다.

 

▲ J의 아버지는 맥없이 누워 있는 J의 오빠를 일으켜 날마다 함께 산책을 하고 등산을 도왔다. (J 제공)


조현병 당사자의 ‘동생’이 돌봄을 하게 된 마음의 경로

 

우선, 조현병 당사자의 동생이 돌봄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J는 오빠를 돌보며 어머니가 무너지고 애쓰는 모습을 보았고, 그것이 안쓰러워 본인이 나서게 되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동기가 됐을까. 어머니와는 본래 애착이 강했던 걸까.

 

“10대 때는 엄마랑 관계가 되게 안 좋았어요. 엄마랑 대화를 안 했어요. 왜냐면 말을 하면 항상 대립이었거든요. ‘엄마랑 나는 평행선이야.’ 제가 늘 하던 말이에요. 접점을 절대 만날 수가 없는 거예요. 일단, 어쩔 수 없으니까 엄마 앞에서는 굽히는데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해야 되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좀 감성 쪽이 강한 사람이다 보니까 엄마한테 공감을 하나도 받지 못해서 ‘어차피 말해봤자 난 상처만 받아’ 하면서 아예 말도 안 하는 관계가 됐죠.”

 

J는 중학교 때 반에서 괴롭힘을 당했다. 자해를 시도할 정도로 심각했다. 용기가 없어 실행하지 못하고 생각에 그친 것들도 있다. 그러나 J와 성향이 달랐던 어머니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때,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골이 깊어졌다. 그러다, 대학에 가 우연히 접한 심리검사를 계기로 J는 자신에 대해 탐구를 해야겠다 마음먹었고 어머니에 대한 이해도 시도한다.

 

“그때부터 엄마랑 대화를 시작했던 것 같아요. 엄마가 살아온 삶을 듣게 된 거죠. 엄마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라는, 한 여자의 인생으로 돌아보니까 너무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누구보다 꿈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 꿈을 이룰 만한 능력도 다 가진 사람이었는데, 좌절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 물론 아빠도 아빠대로 노력을 했고 사랑을 했지만, 아빠는 모성을 못 느끼고 자라 사랑을 주고받는 데 서툰 분이셨어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엄마가 아니라 그냥 한 여자로 보이고 그때부터 더이상 화가 나지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용서가 됐어요. 대학 들어가고 1~2년 정도 그런 시간이 있었어요.“

 

나는 어머니를 짝사랑했다. 아프거나 사고를 치는 다른 아들들에게 정신을 뺏긴 어머니의 품은 좀처럼 차례가 나지 않았다. 좌절되는 마음은 원망이 되고 얼음 박였다. 10대 내내 그와 말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당신을 원하는 자신이 치욕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투병을 하며 생활에서 놓여나자 새로 사귀는 친구처럼 날마다 독특하게 웃기고 새록새록 명랑했다. 그러니 점점 알았다.

 

새로 사귄 내 친구 정상남 씨는 가족 제도 안에서 자라고 역할 하느라 그 활기도 단 하나의 카랑카랑한 웃음도 사그라들며, 학습된 억압과 내면화된 가부장제의 피/가해자로 자신을 뺏기다 겨우 병을 얻어서야 놓여났다. 그제야 맘껏 아팠다. 늘 꾀병 같은 우울과 무기력, 통증에 시달리다 이제야 병명을 하사받아 쉬려는 이에게는 용서보다 사랑이 빨랐다. 그가 못 가고 못한 것, 그냥 해버리는 것이다. 사랑해버리는 것이다.

J도, 자신의 어머니가 취약한 나머지 미처 닿지 못한 데에 그 자신이 먼저 이른 것은 아닐까. 먼저 사랑해버린 것은 아닐까.

 

“엄마는 어려서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일단 공부를 잘하셨고, 돈도 충분치 않아 자녀 교육을 직접 다 시켰어요. 오빠를 잘 키워서 자리 잡게 하면 동생인 나도 자연스럽게 오빠가 이끌어 줄 것이라는 생각에, 사실 어떻게 보면 오빠를 쥐 잡듯이 잡은 거죠. 성격이 되게 강하세요. 어떤 환경에서도 잘 꺾이지 않는 분이세요. 유일하게 꺾이는 대상이 단 한 명, 오빠예요. 그러니까 지금 그것 때문에 되게 많이 무너졌던 세월이 있었고...“

 

J는 붉어지는 눈시울을 들키지 않으려 손으로 얼굴을 쓸더니 안경을 고쳐 썼다. J의 어머니는 교사였고, 똑똑한 첫째에 대한 기대가 커 홈스쿨링으로 아들을 교육했다. 통제가 있었다. 그것이 원인이라는 의사의 말에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 자신을 지탱해온 모든 신념과 가치관을 내려놓았다. J는 어머니가 식사 거부를 하며 맥없이 누워 있는 오빠에게 망고주스를 손수 만들어, 누인 채 빨대로 먹이던 장면을 기억한다. 이전의 강직하고 엄격한 어머니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울증’ 오진으로 인해 초기 약물치료 없이, 병원 밖에서의 14년

당사자도, 가족도 조현병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J의 어머니에게 아들 돌봄은 자신이 살아온 모든 것과의 헤어짐이었다. 그는 관성을 버리고 24시간 아들에게 무조건 맞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14년이 흘렀다, 약물치료 없이 14년이라는 세월 동안 당사자와 보호자가 간단치 않은 조현병의 증상과 후유증을 감수해 낸 것은 보호자의 힘일까, 당사자의 힘일까. 어느 쪽이든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의사한테 들은 말로 너무 충격을 받고 어머니는 그때부터 오빠한테 모든 걸 진짜 다, 어린 시절 못 해준 걸 채워준다는 마음으로 100% 헌신을 하셨어요. 제가 봤을 때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마냥 다 받아주기만 한 건 아니었어요. 오빠가 상담을 다닐 때, 가족 상담도 같이 진행됐는데 그때 엄마가 그 상담사한테 배운 것들이 아주 헛되지는 않았던 게, 사실 조현병 환자들이 재활하는 과정에서 약물이 일단 1번이고 두번째는 환경에서 받쳐주는 역할들이잖아요. 그것들을 엄마는 그때 다 배웠더라고요. 다룬다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너무 받아주지도 않고 강제하지도 않는 그 정도를 진짜 기가 막히게 잘 아시거든요.”

 

J의 오빠는 초진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의사는 양육방식과 환경의 문제라며 심리상담을 권했다. 우울증이 심리나 환경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큰 데 비해 조현병은 신경전달물질의 이상 활성화가 원인이므로 초기 약물치료가 중요하다. 오진으로 인해 그는 이 시기를 놓친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엄격하기만 하던 주 양육자인 어머니와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이 얼마간 해소된 것으로 보였다.

 

“약물로 직접적인 치료를 한 건 4~5년밖에 안 돼요. 옮긴 병원에서도 진단을 하기에 우울증 정도다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관련된 치료약을 먹으면서는 진짜 오빠가 정신을 못 차리더라고요. 하루종일 누워 있고 못 일어나고. 처음에는 그게 이해가 안 됐어요. 왜 저렇게 계속 맨날 누워만 있지? 근데 어느 날부턴가 아빠가 겨우겨우 일으켜서 데리고 등산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오빠의 이전 증상이 점점 좋아졌어요. 활동도 하고. 그전엔 원초적인 본능만 남았던 상황이었는데 이제는 맛있는 거 먹으러 혼자 다니는 그런 정도까지 간 거예요.”

 

J의 가족들은 그때,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당사자도 용기를 내 일을 시작했다.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였다. 어머니는 당사자를 두고 처음부터 육아를 다시 하는 것 같다며, 이제 10대쯤 온 것 같다, 아니다, 이제 20대는 된 것 아닐까 등의 말을 J와 주고받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어머니의 주관대로 양육을 했다면, 이 시점부터는 당사자를 중심에 놓고 돌봄을 새로이 한 셈이다.

 

그러나, J나 가족에겐 조현병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필자 소개] 심지안. 다큐멘터리 번역을 하고 지금은 글 쓰는 목수가 되기 위해 수련 중입니다. 세상 마지막 목소리에까지 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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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z 2024/10/22 [08:29] 수정 | 삭제
  • 제가 정말 모르고 살았었네요. 아뇨, 잘못알고 살아왔네요. 좋은 글 덕분에 제가 갖고있던 조현병에 관한 오류도 바로잡고 조현병을 둘러싼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어 다행입니다. 좋은 글은 사람도 고치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보호자 2024/10/17 [13:44] 수정 | 삭제
  •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고는 하나.... 눈초리며 뭐가 달라진걸까요....
  • 새봄~ 2024/10/02 [21:47] 수정 | 삭제
  • 3인칭 시점으로 관조적 입장에서 써내려간 글이 감동을 더 하게 합니다. 군더더기 없는 표현, 절제된 언어가 돋보입니다. 2편이 기대되네요❤
  • 시아 2024/10/01 [11:02] 수정 | 삭제
  • 지안님의 글을 여기서 읽게 되네요. 응원합니다.
  • 좀머 2024/09/28 [17:41] 수정 | 삭제
  • 저도 돌봄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정말 행간의 시간과 깊이를 느끼며 읽었습니다... 힘든 시절은 언젠가는 지나가기에....
  • 호프 2024/09/27 [16:01] 수정 | 삭제
  • 세상의 모든 조력자들에게 응원을!!!
  • 느린 2024/09/27 [10:40] 수정 | 삭제
  • 조현병에 대해 예전보다는 정보가 많아졌고 이렇게 경험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계심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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