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열증이라 불렸던 조현병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조현)라는 뜻으로, 그간 이 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과 오해가 많아 2011년 개명이 이뤄졌다. 실제로도 질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당사자가 적절한 치료나 적극적인 도움을 받는 것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환자 가족 등 돌봄자가 돌봄을 하는 데 있어서도 고통을 야기한다. 사실 조현병은 최근 약물요법을 포함한 치료법에 뚜렷한 발전이 있고, 조기 진단과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지역사회에서 일상생활이 가능한 질환이다. 이 글은 조현병 당사자의 보호자로서 다른 조현병 당사자 가족을 인터뷰하면서 수많은 가족의 돌봄을 돌아보고, 한편으로 이 질환에 대한 인식을 돕고자 한다. 총 3회 연재한다. -편집자주
조현병 당사자의 삶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
첫 번째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만난 일주일 사이에 J의 글이 카페에 올라왔다. J의 오빠는 자기 용돈을 벌겠다며 소액으로 주식을 하다 그만둔 적이 있다. 그것을 최근에 다시 시작한 것이다. J는 보호자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댓글을 통해 보호자와 당사자들 간의 의견이 갈렸다. 스마트 폰을 빼앗아서라도 주식을 그만두게 해야 한다는 입장과, 보호자의 지나친 통제는 당사자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입장이 팽팽했다.
J는 오빠에게 가족들이 이 일로 얼마나 고민인지 그 과정을 그대로 공유했다. 카페에 있는 당사자와 보호자들에게 의논했고, 이러저러한 의견을 들었으나 여전히 고민이니 어찌하면 좋겠냐. 당사자의 문제에서 당사자를 소외시키지 않고 함께 가겠다는 J의 태도는 오빠를 안심시켰다. 가만히 듣더니 “그럼 안 할게”라고 했단다. J는 오빠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니, 오빠 스스로 밝히기 전에는 그의 병력을 주변에 알리는 일도 마땅치 않다 여긴다. 부모님도 같은 생각이시다.
“한 가지 남은 고민은 그거예요. 지금은 오빠가 현실감이 돌아왔으니 한 번씩 충격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공부도 다 했고 대학도 갔고 군대도 다녀왔어요. 사실, 오빠는 공무원 시험도 붙었어요. 대단한 거죠. 근데 2차 면접에 안 가니까 집으로 전화가 온 거예요. 알고 보니까 자기가 이 공부를 한 이유는 엄마한테 증명해 보이려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면접을 포기한 거예요. 그런데, 그게 아깝지 않아요. 그 당시엔 아깝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만일 그 상황에서 일을 했으면 어땠겠어요? 지금은 그냥 오빠가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뭘 하면 오빠가 행복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근데 그건 본인이 찾아가야 하는 거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거 적당히 할 수 있는 정도의 돈을 벌면서 만족감을 느끼면서 사는 게, 저희 가족의 소망이거든요. 작지만 큰 소망. 오빠한테도 그 얘기를 해주고 있어요. ‘늦은 거 없어. 지금부터 그냥 내키지 않더라도 그냥 아무거나 다 해봐. 이것저것 다 해봐. 오빠 좋아하는 거 뭐든.’ 지금은 ‘나는 좋아하는 거 없어’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피아노 치는 것도 되게 좋아했고 호기심도 많고 그랬던 사람이거든요.”
진정한 돌봄은 ‘자기돌봄이 우선’
J가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오빠에게 좋아하는 것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J는 돌봄에 대한 자기 철학이 확고하다. “비행기에서 안전 교육할 때에도 내 산소마스크를 먼저 쓰고 다른 사람을 도우라 교육하는 것처럼, 자기 돌봄이 우선이어야 해요. 그리고 ‘돌본다’라는 것이 어찌 보면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이 있는 것인데, 이게 잘못된 방식의 돌봄이 된다면 그것은 결코 진정한 돌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결코 다른 사람을 온전히 돌보지 못한다는 말과 같은 거죠.”
J의 가족은 각자 맡은 역할분담이 있어 돌봄을 하면서 크게 갈등을 겪지 않은 편이다. J는 주로 약이나 치료 방법, 병원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재활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 계획을 세우는 역할을 한다. 생활 속에서 정서적으로 물리적으로 당사자를 돌보는 것은 부모님이다. J는 그 덕분에 지치지 않고 돌봄을 이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돌봄의 성격상 정서적 지지가 주를 차지한다고 볼 때 남성 성별의 가족보다 J나 J의 어머니에게 돌봄이 더 요구될 수밖에 없고, 이는 돌봄에 있어 성 역할이 작동하는 현실의 한계를 반영한다. 남성이 돌봄의 주체가 되는 기회나 경험, 환경이 충분치 않고, 남성에게는 사회적 기대가 낮고 신뢰도 없으니 책임을 요구하기도 쉽지 않다. 남성이 특별하게 자발성을 보이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돌봄은 곧 여성의 일이 되고 만다.
물론, 당사자 보호자모임 카페에는 드물게 아버지 보호자나 남편 보호자가 생업에서 손을 놓고 당사자를 돌보는 경우도 있다. 그들 대부분은 카페에서 주요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모두의 관심과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여성에게 돌봄은 기본값이다. 그 속에서 역할론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질문을 찾아 나가는 일은 특히 어렵다.
또, 제도적 돌봄이 부재한 상황에서 조현병 당사자의 보호자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거나 가족과 분담하는 등 자기 자원 안에서 수행 가능한 범위를 찾을 수밖에 없다. 평소 당사자의 컨디션을 살피다 단약 등의 이유로 재발하거나 약물 조정이 필요해 당사자가 입원을 하게 되면 그 틈에 부지런히 쉬어야 한다. 적절히 회복해두지 않으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돌봄을 지속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당장 하나의 정보를 얻기 위해 접속한 커뮤니티에서 마침 만나 경험을 나누고 서로를 지지하면서 저마다의 필요를 채우다 당사자가 어느 정도 안정기를 맞이하면 커뮤니티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뤄지는 타인에 대한 지지 활동은 자신에게도 응원이 된다. 그 자체로 사회적 운동이 된다.
“언젠가는 스스로 증상관리와 기록을 하게끔” 도와주고 싶다
J는 최근 카페에 당사자, 보호자 체크리스트를 공유했다. 체크리스트는 당사자가 투약이나 식사, 운동 등 루틴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당사자나 보호자가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한 기록지다.
조현병 당사자 형제/자매/남매 보호자모임을 꾸리는 꿈
『단단한 삶』의 저자 아스토미 아유무는 ‘진정한 자립은 의존’이라 이야기한다. 힘들 때 “도와 달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렇게 도움을 청할 사람이 많은 것이 바로 자립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은 누구나 타자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인정받는다. 조현병 당사자들은 이 과정에서 긍정적인 자기 이해에 도달하기가 어렵다. 조현병에 대해 알려진 잘못된 인식이 당사자들의 일상을 ‘비정상’으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부정당한 당사자들은 스스로와의 관계조차 제대로 세우기 어렵다. 그래서, 정신장애 당사자 운동가들이 스스로 고유한 정체성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기반이 될 수 있는 지원과 치료가 사회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요구하는 것이다. 사회가 이들의 목소리와 활동에 자리가 될 수 있는 안전한 ‘곳’을 만들고 자발적인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하는 것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J와 나는 요즘 새로 꾸는 꿈이 있다. 조현병 당사자 형제/자매/남매 보호자모임을 하는 것이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하나만으로도 정신과 마음에는 그만한 공간이 생긴다. J는 감정 카드를 이용해 형제, 자매, 남매 보호자들의 욕구를 다루고 일상을 공유하는 파트를 맡고, 나는 몸을 쓰는 경험을 통해 감각을 깨우고 자기 욕구를 구체화해 보는 목공 프로그램을 구상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조현병 당사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어요. 100명 중의 1명이 걸릴 수도 있다는 이 확률은 결코 작지 않고, 그 확률 속에는 ‘내’가 혹은 나의 사랑하는 누군가가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야 진짜 마음을 다해 이들을 사회 속에서 함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조현병에 대해 공부를 하고 의학이 접근할 수 있는 답을 알기 전에는 죽음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J.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난다는 흔한 말에 압도되었던 그. 그러나 그는 돌봄을 통해 관계를 구하고 자신을 깨치고 주변과 연결되며 앞으로를 틔우고 있다. 조용히 혁명하고 있다. [끝]
[필자 소개] 심지안. 다큐멘터리 번역을 하고 지금은 글 쓰는 목수가 되기 위해 수련 중입니다. 세상 마지막 목소리에까지 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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