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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태린. 발 딛고 선 곳의 이야기를 쓴다.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한겨레출판사, 2024)를 함께 썼다. 입법노동자, 정당 활동가, 기록자로 지내왔으며 더 잘 듣고 쓰는 사람이 되고자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다.
제주에서 19호실을 만나다
2023년 가을, 홀로 제주를 찾았다. 세월호 10주기를 앞두고, 생존자와 연대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던 때였다. 인터뷰이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취재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글의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즈음한 시기였고, 참사와 삶, 죽음, 일상에 대한 고민은 계속됐다. 인터뷰이는 10년간 변하지 않은 사회, 반복되는 참사에 대해 울분을 쏟아냈다. 이 취재로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쓰는 일이란 대체 무엇인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온전한 ‘혼자됨’이 절실했다. 일정을 바꿔 제주에 조금 더 머물기로 했다.
어떤 계획도 없이 바닷길만을 하염없이 걸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혼자됨은 오히려 어색했다. 그 와중 함께 기록 작업을 하던 동료에게 연락이 왔다. 선물을 준비했다고 했다. 제주시의 한 작은 책방에 미리 책값을 치러 두었으니 언제든 들러 찾아가라는 이야기였다. 무슨 책인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왜인지 그 책이 나에게 답을 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받아든 책은 『19호실로부터』. 19호실이라, 도리스 레싱의 작품에 나오는 공간이라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었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는 자신의 일상을 포기하고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로만 살아가던 전업주부 ‘수전’이 자신만의 공간인 ‘19호실’로 향하며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19호실로부터』라는 제목은 실제로 〈19호실로 가다〉를 뒤집어 지은 것이다. 동시에 예술기획자인 ‘제람’이 2022년 겨울 제주에서 개최한 전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나만의 19호실로 가야겠어!” 어머니는 느닷없는 선언을 하고 집을 나섰다. …(중략) 어머니는 설령 누추한 공간일지언정 나를 포함해 누구도 자신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곳에 있고 싶다고 했다. 언제 돌아올지도 묻지 말라고 했다. 어머니가 가려는 ‘19호실’이 제주의 동쪽인지 서쪽인지라도 알려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것도 싫다고 했다. 말릴 수 없으니 응원하자 싶어 어머니의 새로운 시도를 지지한다고 했더니 속도 모르면서 응원한다며 배웅하는 것도 싫다고 했다. 혹시 어머니에게 애인이 생겼냐고 묻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는 퉁명스러운 대꾸마저 거두고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19호실로부터』 71~73p)
당신에게는 19호실이 있습니까
기획자 제람의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나만의 19호실로 가겠다”고 선언한다. 제람은 “쉴 곳이 필요하신 거라면 적절한 공간을 알아봐 예약해 두겠다”고 (아마 ‘이만큼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은 없을 것’이라는 조금의 뿌듯함과 함께) 화답한다. 하지만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누추해도 좋으니, 그 누구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것.
-왜 어머니는 가족과 집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자꾸만 넘으려고 할까. 나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에 자랐고, 남달리 섬세한 성품을 지닌 성소수자라서 내 지정성별이 남성임에도 여성인 어머니의 삶을 제법 헤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극건성 피부인 어머니를 위해 수분크림과 토너가 좋기로 소문난 브랜드 제품을 사다가 쟁여놓고, 어머니가 드실 영양제랑 염색약, 중배전한 커피 원두, 자연 방사 달걀, 무가당 두유, 무염 버터 등의 생필품이 떨어지지 않게 살피고, 빨래할 때마다 어머니 양말이나 속옷에 구멍이 나지 않았나 살피고 낡았으면 알아서 바꿨다. … ‘너랑 함께 있다고 내가 늘 행복할 거라 착각하지 마.’ (『19호실로부터』 73~74p)
이에 제람은 깨닫는다. 성소수자로서 안전할 수 있는 공간인 ‘자신의 집’을 가꾸고 지키는 것 또한 어머니의 수고에 기대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성들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19호실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에게 19호실은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서 〈19호실로부터〉 프로젝트는 이어진다. 답을 찾는 실마리로서, 제람은 “오롯이 혼자가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 프로젝트가 ‘숙박형 전시’라는 생소한 형식으로 진행된 이유이기도 하다.
전시 참여자들은 안내에 따라 제주 한적한 곳에 위치한 시골집, ‘19호실’에 체크인한다. 체크인을 돕는 호스트는 가까운 곳에 있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동행인도, 반려동물도 동반 입장은 불가능하다. 19호실에 들어서면, 상세한 매뉴얼이 참가자를 반긴다. 참가자는 매뉴얼에 따라 식사를 직접 지어 먹거나, 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향을 맡을 수 있다. 혹은 그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다. 매뉴얼을 지키지 않는다 해서 발생하는 페널티는 없다. 19호실 안에서의 모든 일은 참가자의 자유에 달려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거나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라니. 내게, 아니 수많은 여성들에게는 그런 자유가 주어졌던 적이 있었던가.
더 넓은, 더 많은 19호실을 향해
내게도 19호실이 필요했다. 모든 여성/퀴어들이 그러하듯, 내게 ‘안전’은 언제나 큰 화두였다. 스무 살, 어쩌면 이른 독립과 함께 갑작스레 ‘혼자됨’의 순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내게 혼자됨의 다른 이름은 불안이기도 했다. 혼자 사는, 가난한 어린 여자에게 세상은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고, 내 선택으로, 의지로,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누군가의 침입, 예상할 수 없는 타인의 존재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은 빠르게 나를 지치게 했다. 온전히 혼자이고 싶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오롯이 혼자일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됐다.
‘여성 공간’도 나의 19호실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여성 공간 안에서 나는 수많은 여성들과 뜨겁게 연대하고 사랑했지만 동시에 뜨겁게 싸웠다. 여자대학에 재학하던 당시 많은 이들은 내게 ‘부럽다’는 말을 건넸다. 여자대학은 ‘여성’만이 존재하는 공간이기에 안전하고 편안하지 않느냐는 말과 함께였다.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백래시는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해 나의 페미니스트 동료들을 괴롭혔기에 그 말을 마음 깊이 이해했다. 동시에 ‘안전’이라는 이름 하에 트랜스젠더를 배제하고, ‘평화’라는 이름 아래 투쟁을 잠재우려는 목소리들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지우는 방식으로 담보되는 안전이 진정한 안전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안전함에 향할 수 있을지 논의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 공간에 대한 성역화와 대상화 사이에서 우리는 늘 스스로를 지켜야 했으므로.
‘안전’과 ‘평화’라는 말을 꺼낼 때면 언제나 긴장이 함께했기에, 나는 그 말들과 늘 불화해 왔다. 어쩌면 부러 불화하기를 선택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 19호실이 필요하다고 간절히 바라는 동시에, 우리 모두가 19호실이라는 방 한 켠에서만 안전하기를 바라지는 않기 때문이다.
-타인을 전제하지 않고 오롯이 혼자만 있는 관계의 진공상태에서는 ‘안전’이 작동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안전’을 말할 때 주어의 자리에 ‘나’보다는 ‘우리’를 호명하게 된다. 함께 상상하고, 서로 협상하고, 때로는 목소리 높여 싸우면서 실현하고 얻을 구체적인 일상의 토대로서 ‘안전’이 무엇일지, 공통의 생각과 감각을 벼리고 싶다. (『19호실로부터』 96p)
선을 그어 고립되는 것보다는, 낯선 존재들을 더욱 많이 마주하는 것이 어쩌면 내게는 안전을 감각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나’를 넘어 더 많은 ‘우리’를 마주할 수 있는 방식을 더욱 부지런히 상상하려 한다. 그것이 더 많은 19호실들을 만들기 위한 나의 작은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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