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에 걸린 소녀들

[청년 페미니스트, 머리맡의 책]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권수현 | 기사입력 2025/08/09 [10:12]

거미줄에 걸린 소녀들

[청년 페미니스트, 머리맡의 책]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권수현 | 입력 : 2025/08/09 [10:12]

[필자 소개] 권수현. 뮤지컬, 연극, 독립영화를 넘나드는 7년차 배우. 무대 위에서, 스크린 속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 페미니즘과 퀴어 서사를 탐구한다. 예술이 누군가의 일상에 작지만 단단한 용기를 심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 대만 작가 린이한(林奕含)이 스물여섯에 발표한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허유영 번역, 비채, 2018) 표지 ©권수현

 

갓난 아기의 엉덩이처럼 연한 살구빛 표지 중앙에는 보드라운 깃털 하나가 처량히 갇혀있다. 정갈하고 새하얀 제목은 아름답고 간질거리는 단어들로 구성된다. ‘첫사랑’ 그리고 ‘낙원’. 보는 이로 하여금 사랑스럽고 달콤한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이 두 단어는 매끄러운 표지에 깃털처럼 얹혀 독자의 손을 유혹한다. 단 하나 낯선 것은 ‘팡쓰치’라는 이름이다. 누군지는 몰라도 심상치 않은 첫사랑을 했구나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편다. 열세 살 소녀들의 장난스럽고 재잘거리는 이야기를 웃으며 따라가다 보면, 당신은 문득 깨닫게 된다. 지금 읽고 있는 이야기는 기괴하고 엽기적인 지옥의 이야기라는 것을.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읽게 된 것은 한 영상 때문이었다.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발견한 영상에서 알려준 정보는 세 가지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는 것, 작가가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했다는 것, 그리고 책 속의 가해자로 지목된 실존인물이 여전히 잘 살고 있다는 것. 영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책을 주문했다. 어떤 분노는 지갑을 열게 만들기도 한다. 책을 받자마자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한 권의 책이 이렇게 많은 눈물을 받아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 일주일간 두통과 불면, 악몽에 시달렸다. 몇 번을 읽어도 마음을 다잡아야만 이 책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쓰치를 통해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

 

‘n회차’의 가해자가 구축한 거미줄

 

소설 속의 인물 ‘리궈화’를 보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5회독을 하고서야 그 기시감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게 됐다. 수많은 웹툰 주인공들이 바로 그 출처였다. 바야흐로 회귀물 전성시대다. 웹툰과 웹소설 플랫폼의 상위를 차지하는 작품 대부분이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의 줄임말)을 토대로 한다. 주인공들은 n회차의 삶을 통해서 과거로 돌아가 상황을 개선하여 더 나은 결말을 만든다. 소설 속의 가해자 리궈화는 이 n회차를 몸소 겪어본 인물이다. 그는 수많은 회차를 통해 완벽한 가해 시스템을 구축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리궈화가 만들어낸 ‘더 나은 결말’이 바로 피해자들의 파멸과 이어진다는 것이다.

 

리궈화는 n회차의 웰메이드(well-made) 가해자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그는 안전하게 아이들을 휘두를 수 있는 수만 가지 방법을 차곡차곡 모아뒀다. 그는 적당한 외모, 중년의 나이가 주는 신뢰감, 유명 강사로서의 권위를 이용할 줄 안다. 온화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이웃은 물론 직장에서도 좋은 평판을 쌓고, 외모나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따뜻한 모습을 보인다.

 

리궈화는 ‘못생긴 아이들’에게도 하염없이 친절하다. 그들이 ‘비밀 아파트에 있는 러브레터 상자를 가득’ 채워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자를 보면, 리궈화가 휘두르려고 마음먹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고분고분’해진다. 그렇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가까이 그와의 관계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 얼마나 쓸모 있는 친절인가. 그의 거미줄은 오랫동안 공들여 쌓아 올린 치밀한 계산의 산물이다.

 

▲ 그루밍 성범죄의 가해자들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완벽한 거미줄을 구축한다. 거미줄에 걸린 피해자들은 사랑이라는 탈을 쓴 그루밍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미지=pixabay]

 

반면, 이 거미줄에 걸린 쓰치들은 대개 이런 상황 자체가 처음이다. 그들은 자신이 거미줄에 발을 디뎠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쉽지 않지만, 더 힘든 건 거미줄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주변 어른들이 가해자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쉽게 피해자와 단 둘이 있을 시간을 기꺼이 내어준다. 이런 상황에서 열세 살의 아이가 오십 대의 거짓말을 간파하지 못하는 것이 과연 아이의 잘못일까? 가장 신뢰했던 어른의 괴물 같은 민낯을 발견했을 때, 그 충격 속에서 완벽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것 역시 아이의 책임일까?

 

가해자에게 이번 일은 지나가는 n번째 회차에 불과하지만, 피해자에게 이 일은 유일한 회차이자 최초의 회차다. 쓰치는 리궈화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끔은 선생님이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난 그때 정말 어렸는데.” 여기에 대한 리궈화의 답은 다음과 같다. “넌 어렸지만 나는 아니었으니까.” n회차의 가해자와 1회차의 피해자, 이 둘은 같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그루밍 성범죄의 본질을 꿰뚫는다. 가해자의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조작과 피해자의 무력함 사이에는 권력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위계 안에서의 구조적인 폭력이다.

 

가해자의 언어로 물든 세상

 

첫 강간을 끝낸 후 리궈화는 말한다. “이건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야. 알겠니?” 쓰치는 속으로 생각한다. “선생님이 틀렸다고. 나는 성기를 막대사탕으로 착각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쓰치는 리궈화의 말과 행동이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답답하게도 다른 사랑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배운 사랑이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쓰치에게 사랑이란 “끝난 뒤에 피를 닦아주고, 단추가 떨어져나가지 않게 옷을 벗기는 것”이다.

 

언어교사인 리궈화는 5년간의 성폭행을 통해 효과적으로 쓰치의 언어세계를 통치한다. 쓰치의 모든 말과 생각에는 리궈화가 얼룩처럼 묻어 있다. 실제 대부분의 그루밍 성범죄 가해자들 역시 피해자의 사고체계를 통제하려 한다. 그들은 배우기라도 한 듯 비슷한 말로 피해자를 고립시킨다. “넌 선생님을 좋아하고 선생님도 널 좋아해. 우린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았어. 이건 서로 좋아하는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이야. 날 원망하지 마. 내가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넌 모를 거야.” 따위의 말들로.

 

쓰치들은 운이 좋아 살아남더라도 가해자의 언어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 언어를 떨쳐내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몇 년 동안 학대당한 사람은 탈출해서 살아남아도 편의점 단골손님이나 핑크색 마니아, 보통의 딸, 혹은 엄마가 되지 못한다. 그들은 영원히 ‘살아남은 자’다.” 쓰치는 살아남았더라도 오랜 시간 동안 문학을 접할 때마다 리궈화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생존을 이어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피해자들은 기를 쓰고 평범한 일상을 염원한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한 평범함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가장 큰 소원이 된다.

 

고립된 피해자, 연대의 가능성은?

 

소설 속에서 쓰치의 친구 류이팅은 모순적인 위치에 있다. 그는 팡쓰치의 힘겨운 고백을 들은 최초의 사람이지만, 동시에 피해자에게 맹렬한 비난을 쏟아내는 2차 가해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2차 가해가 그렇듯, 류이팅의 비난 역시 무지에서 시작된다. 류이팅은 쓰치의 일기장을 보기 전까지는 쓰치에게 비난을 쏟아내지만, 일기를 읽은 후에는 비난을 멈춘다.

 

그루밍 성범죄 피해자를 향한 비난은 ‘자신은 절대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온다. 무지에서 출발한 확신을 가진 세상의 류이팅들은 잔인해진다. 악의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피해자들을 헤집는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등을 돌릴 때, 피해자들은 완전히 고립된다.

 

구석에 몰린 피해자를 ‘지켜주고 사랑해주는 것’은 오로지 가해자뿐이다. 많은 그루밍 성범죄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피해를 깨달은 직후 가해자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것이 모순적이고 바보 같은 일이라는 걸 우리는 알지만, 그 상황 속에 처한 이들에게는 가해자만이 자신을 도울 손길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은 그루밍 성범죄의 가장 어려운 지점 중 하나다.

 

▲ 기독교반성폭력센터의 5주년 후원행사 “오늘도 내일도 옆에서”. 세상의 쓰치들, 그리고 쓰치를 지키기 위해 일상의 일부를 내어 목소리를 높이는 류이팅들을 위해 노래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필요하다. 이 책은 암호다. 쓰치가 겪은 것과 비슷한 일을 단 한 번이라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본 사람은 그 암호를 알아들을 수 있다. 쓰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이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깨닫게 되기를, 류이팅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연대의 방법을 배우게 되기를 바란다. 반대로, 이 책을 읽은 이들이 쓰치가 겪었던 일의 위험 신호를 빠르게 인지하고 피할 수 있기를 믿는다. 이 책의 효용은 거기에서 온다.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이해한다. 고통스럽고 힘든 책이기 때문이다. 어떤 고통은 이런 이야기를 읽을 수조차 없게 만들 테니까. 그렇지만 세상에 쓰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자, 어떤 고통은 영혼을 태워버려 그 무엇으로도 승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고자, 그래서 그 고통의 고리를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끊어내고자 호소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소개한다.

우리가 조금이나마 쓰치들의 기댈 곳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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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픔이 2025/08/13 [14:00] 수정 | 삭제
  • 이 소설을 읽는 것이 애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거기서 더 나아가는 정치적 행위가 될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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