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받는 사람이 숨겨지면, 돌보는 사람도 지워진다

연대와 돌봄의 법⑪ 서로의 삶의 목격자이자 증언자인 HIV감염인의 돌봄

나영정 | 기사입력 2025/11/13 [18:53]

돌봄받는 사람이 숨겨지면, 돌보는 사람도 지워진다

연대와 돌봄의 법⑪ 서로의 삶의 목격자이자 증언자인 HIV감염인의 돌봄

나영정 | 입력 : 2025/11/13 [18:53]

[연재 소개] 2024년 9월, 가족구성권연구소와 민달팽이유니온, 사회복지연구소 물결, 성별이분법에저항하는사람들의모임 여행자, 언니네트워크, 장애여성공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공동으로 〈연대와 돌봄의 법〉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살아가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차별과 억압을 드러내고, 동시에 동질적이지 않는 소수자들이 법 제도를 넘나들면서 이미 해나가고 있는 돌봄과 연대를 발견하고, 더 많이 발명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이 연재를 통해 우리의 고민과 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노년의 파트너 돌봄을 전담하고 있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

 

성진과 그의 파트너는 각각 20년, 10년간 HIV 감염인으로 살아온 노년에 접어든 이들이다. 성진은 뇌졸중을 앓고 편마비가 생기고 언어능력이 떨어진 파트너를 돌보았다. 하지만, 성진 또한 골다공증과 비뇨기질환, 안과 질환 등 복합적인 질병을 겪으면서 투병하고 있는 환자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장애 등급을 받지 못해서 활동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파트너는 노인장기요양 등급을 신청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성진은 파트너가 과연 심사에 통과해서 요양보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요양보호사가 집에 방문했을 때 마땅히 앉을 곳도 없기 때문에, 요양등급 신청을 주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진은 돌봄 노동을 전일제로 하고 있는 셈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이를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돌봄 노동을 인정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우선, 돌봄 노동자에게 임금을 제공하고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러한 방식이 아니라도 이미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정체성과 관계 맺음을 통해, 때로는 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절실한 관계로서 주변의 사람들을 돌보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로 인정받지 않으면, 혹은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돌보는 행위 자체가 인식조차 되지 않는다.

 

‘누구도 돌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인식과 소외

 

HIV감염인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돌봐왔다. ‘아무도’ 돌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수치를 주고,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준다고 여겨지는 질병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감염인은 가족과 단절한 채 살아왔다. 의료인도, 간병인도 에이즈환자를 돌보는 것을 꺼려왔기에 정부는 ‘동료간병인’ 제도를 만들어서, 입원한 에이즈환자에게 간병 훈련을 받은 동료 간병인을 파견하는 사업을 해왔다. 에이즈 환자가 소외되는 이유와 동일한 방식으로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동료감염인도 소외되고 있다.

 

‘누구도 돌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인식과 소외는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단절되고, 사회에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가도록 강요당하는 HIV/AIDS 감염인의 삶의 조건으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는 감염인 돌봄 활동가가 동료 감염인을 방문하여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서로돌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3년 10월, 자존감 캠프에서 "나에게 돌봄이란?"이라는 주제로 신문, 잡지에서 이미지를 잘라 표현하기. 스티커는 참가자들이 마음에 드는 작품을 투표한 것. (출처: 사단법인 함께서봄)


성진은 파트너가 요양병원에서 방치된 채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더더욱 자신 외에는 파트너를 돌볼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성인 두 사람이 가족으로 인식되지도 않았기에, 동사무소 직원이나 이웃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왜 ‘가족'이 돌보지 않는지, 왜 요양병원에 가지 않는지 궁금해했다. 성진은 자신이 파트너와 어떤 관계이고, 파트너의 질병이 무엇이며, 왜 HIV 감염인으로서 사회서비스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서 매우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돌봄 노동으로 지치기도 하고, 성진 역시 돌봄이 필요한 환자였지만, 누군가에게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이었다. 돌봄을 받는 사람이 소외되고 숨겨지면, 그를 돌보는 사람 또한 그렇게 된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피엘’(PL: HIV/AIDS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People Living with HIV/AIDS)은 자신의 상황을 숨기라는 압력을 받는다.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면 매일 먹는 약이 무엇인지,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병원이 어디인지를 숨겨야 한다. 가족과 애인, 친구와 동료에게까지 숨겨야 한다는 압박은 일상생활에서도 자신을 통제해야 하는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게 만들고, 결국엔 관계를 단절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피엘’임이 드러났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은 고스란히 당사자에게 원인이 전가되기 때문에, 성진은 파트너와 함께 두 사람 모두 노력하면 할수록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피엘’에게 허락된 권리는 약을 제공받는 것으로 축소된다. 약을 빼먹지 않고 착실하게 먹는 환자로만 인정받는 사회에서 주거권, 노동권, 돌봄권 등 생활에 필수적인 권리들은 전혀 연결되지 않고 있다. HIV/AIDS인권행동 알은 HIV감염인의 노동권을 이슈화하고, 사회가 마땅히 보장해야 할 권리라는 점을 주장해나가기 위해서 실태를 파악하고 당사자의 힘을 조직하는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빈곤한 사람들의 ‘덫’, 요양병원

 

한국 병원의 체계에서 요양병원은 어느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2008년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시행하면서 본격화된 요양병원 서비스는 주로 급성기 치료 후 회복을 위한 단계로 알려져 있으나, 돌봄을 받기 어려운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인이나 빈곤한 사람들이 퇴원이라는 기약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곳으로 변질되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요양병원은 ‘일당 정액 수가제도’를 통해서 의료행위가 일어나기 때문에, 개별 환자에 맞는 의료행위를 하기 어렵고 요양원과의 차이가 크지 않아서, 간병비를 내기 어려운 경우 요양병원에 가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또한 ‘사회적 입원’이 계속해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2019년 추산에 의하면 요양병원 입원환자의 40%가 의료적 필요가 아닌 다른 이유로 요양병원에 입원해있다고 보았다. 정부는 요양급여가 취지에 맞지 않게 지출되고 있기 때문에 병상을 줄여서 사회적 입원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이는 현실적인 대책이 아니다. 사회적 입원이 필요한 사회적인 상황 자체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회적 입원의 사례로 에이즈환자나 노숙인의 사례가 꼽힌다.

 

권미란 ‘에이즈환자 건강권 보장과 국립요양병원 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활동가는 치료제의 눈부신 발전과 조기 확진과 치료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HIV감염인이 대다수이지만, 낙인으로 인해서 치료를 미루다가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되어서 빈곤한 삶으로 내몰리는 환자들이 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조금만 조력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돌봄 공백’으로 인해 위기에 빠져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장기요양이 필요해진 에이즈환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권미란, “누가 왜 요양병원에 보내지는가”, 「비마이너」, 2019년 7월 3일자 참조)

 

하지만 에이즈환자들에게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요양병원에 가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성진의 파트너 또한 이러한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성진의 파트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된 계기는 두 사람이 에이즈 환자를 위한 민간쉼터에서 생활하다가, 성진이 입원과 수술이 필요해진 상황에서 파트너의 일상생활을 보조하는 사람이 부재했기 때문이었다. 파트너는 성진 외에 식사보조나 신변보조를 조력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요양병원에서 1년간 누워서 지낼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파트너가 1년동안 요양병원에서 아무런 재활치료를 받지 못한 채 언어기능을 비롯한 운동기능이 현저하게 저하된 것을 발견하고, 성진은 어떻게 해서라도 요양병원에서 빼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양병원에 ‘갇힌’ 환자들은 스스로의 의사를 통해서 퇴원할 수 없었다. 성진이 퇴원을 요구했지만,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 없었고, 병원은 업무방해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또 다른 에이즈 환자는 퇴원을 요구했다가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오라”는 답변을 들었고, 신분증을 맡겨놓은 채 외부 진료가 필요할 때조차 외출이 불가능했고, 병원 측에서 대리 처방을 받아와 약만 먹어야 했다.(권미란, 위의 글) 요양병원에서 퇴원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는 환자가 곧 보험급여로 환원되어, 환자가 많을수록 특별한 의료행위를 하지 않아도 병원 수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노숙인의 경험에서도 드러난다. 인천 소재 한 요양병원은 차량을 동원해 서울 영등포역에서 노숙하고 있던 이들에게 다가가 숙식을 제공하고, 기초생활수급자로 만들어주겠다고 꾀여 병원에 입원시켰다. 최대한 많은 이들을 입원시킨 뒤 보험급여를 타내고, 임의로 감금 또는 결박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는 게 밝혀졌다.

 

곽순헌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입원할 때 노숙인이라고 따로 표기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입원 규모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의료법은 불특정 다수한테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노숙인들이 많이 있는 곳에선 이들을 차에 태워 요양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일이 흔하다. 주변 파출소나 노숙인 지원센터도 특별히 단속이나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서울역 파출소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오거나 피해자가 요청하지 않으면 병원 차량이 보여도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박영아 변호사는 “노숙인한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고 보험급여를 받아내는 건 부당 급여 청구로, 국민건강보험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기사 “노숙인 꾀어 돈벌이하는 요양병원”, 「한겨레」, 2014년 6월 25일자 참조.)

 

이러한 요양병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도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크게는 우선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고 적절한 의료행위가 이루어지는 요양병원, 소수자들도 입원이 가능하며 퇴원도 가능한 요양병원을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요양병원이 아닌 다른 대안을 함께 만드는 것이다.

 

에이즈 환자와 노숙인은 요양병원 입원이 거부당한다는 점에서 차별이 상존한다. 단지 다른 환자와 가족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요양병원은 에이즈 환자의 입원을 거부한다. 노숙인의 경우는 국가가 지정한 공공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적절한 시점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병을 키우고 심각한 상황에 처한다. 에이즈 환자나 노숙인이 (일반적인) 의료기관에서 환영 받지 못하고 거부당하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는 이들을 노려서 특화된 요양병원을 만들고, 치료도, 퇴원도 불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 문제는 요양병원 외에 사회적 돌봄을 받을 가능성이 낮을수록,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는 요양병원에 꼭 가지 않아도 되는데 사회적 돌봄이 부재한 이들을 위해서, 2022년부터 ‘서로돌봄’ 활동을 시작했다. (관련 기사: ‘안부만 나눠도 힘이 돼’ HIV/AIDS 감염인의 서로돌봄, 「일다」, 2025년 1월 19일, https://ildaro.com/10096) 사단법인 함께서봄을 창립하고,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어떤 필요가 있는지 조사하고, 감염인 돌봄 활동가를 양성하고, 돌봄 활동가가 동료 감염인을 방문하여 일상생활 지원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함께서봄 설립취지문 https://knpplus.org/63)

 

▲ HIV/AIDS 감염인 커뮤니티 케어 체계 구축사업 ‘서로돌봄’ 프로젝트가 2022년부터 3년간 진행됐다. 2022년 3월, 이심전심 교육(돌봄활동가 양성교육) 오리엔테이션 중. 참여자들이 "자기를 잘 표현하는 사진" 고르기를 하고 있다. (제공: 사단법인 함께서봄)


빈곤하고 질병을 가진 게이 커플의 생존에 필요한 것은…

 

성진과 파트너가 숨겨지는 다른 요인으로 주거상황 또한 포함된다. 성진은 무허가주택에 살고 있다. 이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오랫동안 살아왔다. 거래가 불가능하지만 주소지를 가지고 있고, 주민등록이 가능하며, 전기가 들어온다. 하지만 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동네에 도시가스가 들어올 때 비용이 없어 신청하지 못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에 임대주택에 접근할 수 있지만, 현재 살고 있는 집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는데 제한을 받는 빈곤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문제를 동시에 겪는다. 열악한 쪽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 홈리스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 강제폐쇄 위기에 놓인 성매매 집결지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겪는 복합적인 문제는 단지 집 자체의 문제로만 수렴되지 않는다.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준다고 해서 이 복합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자리나 여타의 사회적 관계로 인해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계속 머무르기를 선택하기도 하는 것이다.

 

동사무소에서는 성진에게 영구임대아파트를 신청하라고 했다. 성진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포기하고 본인이 신청 가능한 지역의 아파트에 입주 자격을 얻으려 했으나, 이내 포기했다. 1인 가구를 위해 마련된 영구임대아파트에서는 파트너를 돌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좁디 좁은 화장실은 한 사람이 서있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성진이 파트너의 신변을 보조하고 목욕을 돕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화장실도 없고, 온수도 없으며, 서서 조리할 수 있는 부엌도 없지만, 성진이 터득한 방식으로 파트너 신변을 보조하고 식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법적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서 말 못할 고생을 감수하였다. 성진은 “남자와 여자처럼 우리가 결혼할 수 있었다면 이렇지는 않았겠죠.”라고 했다. 누군가는 다른 지역으로 주소를 옮겨서 좀 더 환경이 좋고 넓은 임대아파트를 구하라고 조언하지만, 성진은 낯선 동네에 가서 시장과 병원을 오갈 수 있기까지 적응하는 것이 큰 부담이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살았던 이웃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어머니도 돌아가셨지만, 여기에서 사는 것이 ‘나답다’고 느낀다.

 

▲ 노년 게이커플의 모습을 담은 단편영화 〈올드랭 사인〉(소준문 감독, 2007)의 스틸 컷

 

“남자와 여자처럼 결혼할 수 있었다면 이렇지는 않았겠죠.”라는 말을 좀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홈리스로 살아가는, 쪽방촌에서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성애 혼인을 경험했다가 혼자가 되었다. 빈곤은 제도적 가족을 해체시키는 힘이 있다. 한편 HIV감염인으로 살아가는 이성애자 또한 질병을 이유로 가족과 혼인 생활의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혼인 생활 안에서 지지를 받으며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과 실행을 해나가는 이들도 있다.

 

따라서 성진의 저 말은 성진의 계급적 지위, 감염인으로서의 삶, 장애를 가진 중년의 몸이라는 조건들과 함께 생각했을 때 파트너의 성별이 미치는 영향의 결과는 단언하기 어렵다. ‘내가 부자였다면’, ‘내가 HIV감염인이 아니었다면’, ‘내가 건강한 젊은이였다면’이라는 숱한 말들도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말들이다. 이러한 부당한 가정, 부당한 질문들이 다시 당사자에게 비수로 돌아와 꽂히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도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성진의 삶은 충분히 설명될 수 없고, 재현될 수 없다. 왜 성진이 끝까지 파트너를 열악한 환경에서 돌보려고 했는지 이해될 수 없다. 혼인, 주거, 복지 제도가 만들어져도,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여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면, 그로 인한 차별은 더욱 강력해진다.

 

성진은 파트너의 일상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아파도 제대로 아프지 못했다. 한편으로 이 돌봄 책임이 성진의 삶을 추동하는 동력이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돌봄의 매 순간은 중단되지 않았다.

 

이제 성진의 파트너는 떠나고 없다.(파트너의 가족이 시신인수와 장례를 포기한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커뮤니티에서 모금을 진행했다. 남은 비용은 또 다른 장례비 지원을 위해서 기금으로 남았다. https://socialfunch.org/plmemorial) 혼자 남겨진 성진은 돌봄이 필요한 또 한 명의 존엄한 사람이다. 우리 사회는 성진의 돌봄 노동에 대해서 감사하고, 성진에게 마땅한 주거권과 돌봄권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한때 종로 게이 업소를 주름잡으며 화려한 게이 인생을 펼쳤던 성진에게 또 다른 환희와 기쁨의 순간이 어떻게 찾아왔는지, 그리고 그 순간을 함께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후일담을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필자 소개] 나영정(타리). 가족구성권연구소,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 퀴어팔레스타인연대, 연구모임POP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책 『가족신분사회』, 『수용, 격리, 박탈』, 『시설사회』,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Crip Genealogies』 등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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