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예측불가능한 ‘환상적 리얼리즘’ 세계로의 초대

다큐멘터리 감독이 추천하는 영화 〈행복한 라짜로〉

권오연 | 기사입력 2026/01/14 [16:31]

느리지만 예측불가능한 ‘환상적 리얼리즘’ 세계로의 초대

다큐멘터리 감독이 추천하는 영화 〈행복한 라짜로〉

권오연 | 입력 : 2026/01/14 [16:31]

1982년 이탈리아의 한 시골 마을에서 담배농장을 운영하던 귀족 가문이, 이미 폐지된 소작농 제도를 지속하며 농민들을 속이고 착취해 온 사실이 발각되었다. 이 사건은 ‘연초업계의 대 사기극’, ‘현대판 노예제’로 불리며 신문에 보도되었고, 농장주는 체포되었다.

 

과연 1980년대 이탈리아에서만 벌어졌던 일일까. 생산수단을 독점한 이들이 노동자의 취약함을 이용해 착취하는 형태의 ‘현대판 노예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모티브로 영화를 만든다면, 악독한 농장주에 맞서 현실을 고발하거나 착취당하는 농민들의 삶에 집중하는 이야기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행복한 라짜로〉는 이러한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 영화 〈행복한 라짜로〉(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 2018) 포스터 (출처: ㈜슈아픽쳐스)

 

이 영화는 ‘만약 그 마을에 성경 속 라짜로 같은 성자가 살고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농촌과 도시, 계급과 자본주의, 세속과 성스러움, 리얼리즘과 환상이 교차하며 펼쳐지는 이 작품은 현대의 전래동화 같다. 느리지만 낯선 감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만드는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이 보여주는 예측 불가능한 영화적 세계로 초대한다.

 

16mm 필름으로 전하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감각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이다. 그녀는 30대 이후 다큐멘터리를 통해 영화 작업을 시작했는데, 뒤늦은 출발이 무색하게도 첫 장편 〈천상의 육체〉(2011)부터 최근작 〈키메라〉(2023)까지 네 편의 장편 영화가 모두 칸영화제에 초청되었다. 한국에서는 봉준호 감독이 〈행복한 라짜로〉를 보고 세 번 울었다는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 알리체 로르바케르(Alice Rohrwacher) 감독의 사진. (출처: https://altreconomia.it/alice-rohrwacher-un-cinema-irresponsabile) Lisbon Film Festival 2019. ⓒIlya Mauter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로르바케르 감독은 어린 시절을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에서 보냈고, 부모는 양봉업에 종사했다. 그녀의 영화 세계관과 삶, 예술에 대한 인식에는 이러한 농촌의 기억이 깊이 스며 있다. 양봉농장을 운영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더 원더스〉(2014), 봉건적 소작농 제도가 유지되는 마을 인비올라타를 배경으로 한 〈행복한 라짜로〉(2018), 이탈리아 소도시에서 도굴꾼들의 삶을 그린 〈키메라〉(2024)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영화는 모두 흙과 풀, 노동의 리듬이 살아 있는 농촌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노동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하루의 일과, 노동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와 갈등, 낡고 닳은 연장과 흙 묻은 옷, 굵어진 관절 마디까지. 그녀의 영화는 농촌의 삶을 꾸밈없이, 마치 그 자리에 존재해온 것처럼 담아낸다. 이러한 미학의 근간에는 생태주의적 가치관이 자리한다. 실제로 그녀의 영화는 유럽에서 지속가능한 제작 방식을 실천하는 ‘에코 시네마’, 혹은 슬로우 시네마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된다.

 

영화 촬영 현장은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며 자원과 노동을 극대화하기 쉽다. 그러나 로르바케르가 지향하는 제작 방식은 농부가 농사를 짓듯 영화를 만드는 태도다. 양봉에서 벌을 통제할 수 없고, 농사에서 날씨를 통제할 수 없듯이, 촬영 현장에서도 모든 조건을 지배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 자율성과 우연 속에서 뜻밖의 결과가 탄생하기를 기다리는 태도가 그녀가 말하는 ‘영화적 수확’이다.

 

슬로우 시네마와 함께 그녀의 또 다른 정체성은 필름 작업이다. 로르바케르는 데뷔작부터 프랑스의 여성 촬영감독 엘렌 루바르와 함께 16mm 필름 촬영을 고수해왔다. 이미 디지털 시대에 영화를 시작한 감독으로서는 이례적인 선택이다. 디지털 촬영이 제공하는 속도, 경제성,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비효율적이고 느린 필름을 택한다. 흉내 낼 수 없는 질감과 잡티,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는 필름의 물성이 그녀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영화 속 세계는 느리고, 낡고, 순수한 것들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과거의 기억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듯 보이지만 회고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감각과, 이 시대에 새롭게 발명해야 할 상상력을 제안한다. 〈행복한 라짜로〉를 통해서 로르바케르의 영화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가보자.

 

한 폭의 풍경화를 닮은 영화

 

▲ 젊은 커플이 청혼식이 끝난 후 포옹을 하고, 인비올라타 마을 주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백열전구 하나가 어두운 방을 밝히고 있다. (출처: Filmgrab)


영화의 배경은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 인비올라타이다. 어두운 밤, 열댓 명의 소녀들이 한 방에 모여 백열전구 하나를 돌려가며 불을 밝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당에서는 젊은 남성들이 서툰 악기 연주에 맞춰 청혼의 세레나데를 부른다. 이 소란스러운 청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라짜로에게 끊임없이 심부름을 시킨다. “라짜로, 할머니 좀 옮겨줘.” “라짜로, 이 닭 좀 잡아 닭장에 넣어.” 라짜로는 마을 사람들이 마음대로 부려먹어도 불평 한 번 않는 착한 청년이다.

 

이 마을은 귀족 올폰시나 데 루나 부인의 소작농들이 담배잎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곳으로, 부인은 소작농을 착취해 귀족적 삶을 유지하고, 관리인 니콜라는 생필품을 팔아 빚을 지운다. 인비올라타는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현실과 과거가 뒤섞인 공간처럼 묘사된다.

 

로르바케르의 영화는 회화로 비유하자면 풍경화에 가깝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처럼 인물과 배경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화면에 공존한다. 이 영화 역시 라짜로를 클로즈업하기보다 그가 속한 풍경, 즉 그를 둘러싼 ‘환경’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속의 인물들은 자신의 환경에 저항하기보다 그 안에 스며들며 흘러간다.

 

〈행복한 라짜로〉에는 두 개의 상반된 환경이 등장한다. 전반부는 담배 수확이 한창인 여름의 인비올라타다. 후반부에서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고립된 마을이 경찰에 의해 발견된다. 경찰은 주민들에게 소작 제도는 이미 오래전에 금지되었고, 노동에는 임금이 지급되어야 하며, 아이들은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얘기를 해준다. 그제야 우리는 이 영화의 배경이 중세가 아니라 현대임을 알게 된다. 주민들은 오랫동안 속은 채 고립된 마을 안에서 소작농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경찰은 주민들을 마을 밖으로 인도하지만, 주민들은 익숙한 삶의 터전으로부터 이주해야 하는 한 무리의 길 잃은 양떼처럼 어리둥절하게 강변에 서 있다. 경찰이 이 물을 얕으니 건너와도 안전하다고 설명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 빠져 죽은 사람들도 있다며 강을 건너기를 두려워한다. 이 장면에는 탈출이라는 의미도 없고, 구원이라는 의미도 없다. 마을 사람들은 그저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이주하는 것에 불과하다.

 

▲ 인비올라타의 주민들이 마을 어귀의 강을 건너기 위해서 모여있다. (출처: Filmgrab)


영화의 후반부는 이로부터 몇 십 년이 흐른 이후, 새로운 환경인 현대의 도시에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다 무너져가는 컨테이너 같은 집에 모여 살면서 도둑질과 사기로 푼 돈을 모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농사지을 땅을 떠나온 농부들은 도시에서는 할 일이 없었고, 인비올라타를 벗어난 이들은 갈 곳이 없었다. 소작농이었던 사람들은 부랑자가 되어서 도시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로르바케르 감독의 영화는 사람들을 둘러싼 풍경을 그려내는 것에 몰두한다는 점에서 ‘풍경’에 대한 영화이자, ‘환경’에 대한 영화이다. 그 환경은 때로는 자연환경이고, 때로는 사회적 환경이고, 때로는 가족이고, 때로는 예술이다.

 

닫힌 세계 속의 열린 인물, 라짜로

 

▲ 마을 어귀에 있는 절벽 위에 라짜로가 홀로 서 있다. (출처: Filmgrab)


이 풍경 속에서 라짜로의 존재는 생존과 적응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넘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감독은 “만약 성스러운 존재가 지금 우리 곁에 있다면, 우리는 그를 알아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인비올라타에서 안토니아를 제외하면 누구도 라짜로의 성스러움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의 순수함과 선함을 이용할 뿐이다.

 

라짜로는 현실을 부당하다고 판단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편견이 없기에 신분이나 계급에 대한 인식도 없다. 소작농이든 후작 부인의 아들 탄크레디이든 라짜로에게는 모두 같은 사람이다. 그에게는 인간이 가질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는 절벽에서 떨어졌다가 다시 살아나고, 시간이 흘러도 늙지 않으며, 성스러운 음악이 그를 따라다니는 비현실적인 존재다. 그러나 무엇보다 환상적인 것은 그의 편견 없는 순수함 자체다.

 

라짜로는 인비올라타에서도, 도시에서도 완전히 소속되지 않은 존재다. 가족도, 친구도, 머무를 집도 없는 존재.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기에, 라짜로는 더욱 환상적으로 느껴진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이 영화를 평범한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이러한 환상적 인물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환경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은 라짜로의 시선으로 본 세계는 어딘가 어긋나 있고 우스꽝스럽다. 사람들은 그를 착취하면서도 그에게 다정하고, 폭력적이면서도 친절하다. 라짜로라는 ‘다른 위치’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기에, 우리는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인식하게 된다.

 

▲ 라짜로가 뜨거운 여름 햇빛을 받으며 서 있다. (출처: Filmgrab)


감독은 어린 시절, 차 뒷좌석에서 잠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경험이 인상 깊었다고 말한다. 영화란 바로 그런 감각, 즉 새로운 위치에서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환상적 리얼리즘은 다른 자리에서 세계를 바라볼 때 더 열린 마음으로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한다. 예측 가능한 자극이 넘쳐나는 콘텐츠의 시대에, 느리지만 예측 불가능한 상상력을 품은 이 영화와 함께 새해를 시작해보길 권한다.

 

[필자 소개] 권오연: 2024년부터 ‘연분홍치마’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에 대한 대화를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 〈X에 대하여〉와 한국과 일본에 사는 네 명의 페미니스트의 우정을 그린 〈순간이동〉을 공동연출했다. 10.29 이태원 참사 미디어팀으로 활동하며 다큐멘터리 〈별은 알고 있다〉를 제작했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소개] 2004년 설립된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소통과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다큐멘터리·극영화·웹 콘텐츠 등 다양한 미디어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pink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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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리 2026/01/16 [00:11] 수정 | 삭제
  • 소작농과 같은 계급사회와 현재까지도 내면화한 계층 인식을 전면 비판하는 방법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대하는 나짜로 같은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구나!
  • 룽이 2026/01/15 [14:56] 수정 | 삭제
  • 나도 이런 생각 많이 해봤는데.. 예수가 지금 여기 있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할지. 감독이랑 나짜로 이미지가 약간 비슷해보이는 것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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