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HD(활동성 및 주의력 장애)를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모습이 있다. 수업 시간에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장난을 치며, 교사의 말을 끊고, 복도를 뛰어다니는 ‘남자’ 어린이. 실제로 ADHD 연구와 진단 역시 오랫동안 이러한 모습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렇다면 소녀는, 여성은 ADHD가 적은 것일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활동성 및 주의력 장애’(ADHD) 진료 현황 자료(2021)에 따르면, ADHD 진료를 받은 어린이·청소년은 남성이 여성보다 약 3.5배 많다. 물론 성별에 따른 생물학적 차이가 일부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큰 격차를 온전히 생물학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혹시 사회가 ADHD를 발견하는 방식 자체가 이미 특정한 학생상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공간이 아니다. 학생들이 일상에서 큰 비중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교는 ‘좋은 학생’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가르치는 공간이기도 하다. 오래 자리에 앉아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 차례를 잘 지키는 학생,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 학생, 감정을 조절하는 학생, 교사의 지시에 순응하는 학생….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모범적인 학생이라고 배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학생다움’이 사회가 오랫동안 여성에게 요구해 온 ‘여성다움’과 상당 부분 닮아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ADHD를 진단 받은 사람 중 하나다. 그런데 어린 시절이 아니라 비청소년(성인)이 된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우울증 치료를 받던 중 담당 의사가 ADHD 검사를 권했고, 그제야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여러 경험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몸을 움직이고 싶다는 충동이 계속 올라왔지만, 교실을 돌아다니면 선생님에게 혼이 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혼나지 않으면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교실 뒤 사물함에 두고 온 물건이 있는 척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했고, 졸린다는 이유로 교실 한편에 있던 스탠딩 책상으로 가서 서서 수업을 듣기도 했다. 가만히 앉아 있기 어려운 나의 몸과 학교가 요구하는 규범 사이에서 나름의 타협점을 찾으려 했던 것이었다.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정말 어린 시절에는 ADHD 증상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학교라는 공간에서 문제 행동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그리고 ‘좋은 학생’이 되고 싶어서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조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많은 여성들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얌전해야 하고, 조용해야 하며, 참을 줄 알아야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뛰어다니면 “여자애가 왜 그렇게 산만하냐”는 말을 듣고, 자기 의견을 강하게 표현하면 “드세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기보다 참고,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진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규범 역시 비슷하다. 수업 시간에는 조용히 오래 앉아 있어야 하고, 교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며, 자신의 욕구보다 규칙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좋은 학생’에게 요구되는 덕목과 ‘좋은 여성’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놀라울 만큼 겹쳐진다.
여학생들이 ADHD 진료를 받는 비율이 적다고 해서, 그만큼 ADHD를 덜 경험한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소녀들은 자신의 산만함을 숨기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손을 들기보다 참고, 몸을 움직이기보다 손톱을 물어뜯고, 교실을 돌아다니기보다 머릿속에서만 생각이 흩어진다.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을 게으르다고 자책하고, 충동적인 행동 대신 완벽주의로 스스로를 통제하려 애쓴다.
최근 발표된 여성 ADHD 연구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마스킹(masking)’ 또는 ‘가면쓰기’라고 부른다. ADHD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교가 ADHD를 발견하는 공간인 동시에, ADHD를 숨기게 만드는 공간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성에게는 더욱 그렇다. 흔히 “여학생이 더 학교 생활을 잘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정말 소녀들이 적응력이 뛰어나서일까. 아니면 학교와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을 어기지 않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들여 자신을 통제한 결과일까.
‘정상성’이라는 이름의 교실
학교는 오래 앉아 있는 몸을 ‘정상’으로 만들고, 한국 사회는 얌전한 여성을 ‘이상적인 여성’으로 만든다. ADHD를 가진 여성은 이 두 규범 사이에서 자신의 몸과 행동을 끊임없이 조정하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ADHD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된다.
학교는 오랜 시간 한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고,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며, 같은 속도로 학습하는 것을 기본으로 설계되어 왔다. 물론 공동체에는 일정한 규칙이 필요하다. 그러나 학교와 같은 공동 배움의 장에서 요구하는 ‘좋은 학생’의 모습이 단 하나뿐이라면,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학생들에게는 가혹한 일이다. 그들은 자신의 몸과 행동을 끊임없이 교정해야 한다. ADHD를 가진 학생들이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학교가 ‘정상’이라고 여기는 기준과도 맞닿아 있다. 교육은 모든 학생들을 하나의 기준에 맞추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학생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배우고 경험하며,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필자 소개] 이은선 : 고등학생 시기 학칙 개정과 학생인권조례 제정 활동을 하며 청소년 인권 운동을 만났다. 청소년이 학교와 사회에서 그저 버티는 존재가 아니라, 부당한 순간에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시민이 될 수 있기를 고민하며 활동해 왔다. 현재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폭력에 반대하며 비건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는 청소년-시민입니다』, 『노키즈존 한국 사회』 등을 공저했고 청소년의 경험과 권리, 젠더화된 규범에 대해 글을 써왔다. 주변 존재들에 물들고, 물들이는 것을 좋아한다.
이 기사 좋아요 20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이은선의 ‘틀을 벗어난’ 칼럼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