票心의 절반…‘여성 정치’ 봄날은 온다. (주간동아, 2003-12-30)
‘여성 우대냐? 흥행 우선이냐?’ (뉴스메이커, 2004-01-02) 4월총선 레이디 파워…전국 여성 50%’ (굿데이 2004- 01- 06) 기사 제목에 선택된 어휘부터 화려하다. 2004년 4.15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앞다퉈 비례대표 50%를 여성에게 내주겠다는 카드를 내민 것에 대한 언론의 반응이다. 물론 여성국회의원 수가 고작 5% 근처에서 머물고 있는 현실 속에서 비례대표 50%를 여성에게 내주겠다는 각 정당의 카드는 ‘뉴스거리’긴 하다. 그러나 여전히 남성 정치인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을 뿐더러 남성중심적인 정치문화가 흔들릴 기색도 없이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뒤로한 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구색 맞추기’ 식으로 여성들을 넣어주는 것을 두고 ‘여인천하’니 ‘우먼파워’니, ‘여성정치 봄날’이니 소란을 떠는 것은 ‘과대포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대포장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뻥뻥 터뜨리는 식의 보도를 접하고 있으면 정치권의 여성파워가 대단해지기라도 할 듯, 대단한 변화라도 보장된 듯 보인다. “2002년 대선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젊은 변화 주도세력이 제도권에 자리매김한 ‘사건’이었다면 2004년 17대 총선은 여성들의 정치세력화를 알리는 이벤트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04년 ‘4.15’총선은 여심의 위력을 검증하는 이벤트가 될 전망이다. 여심의 파괴력은 얼마나 많은 여성 국회의원을 배출하느냐로도 확인될 것 같다.” (주간동아, 票心의 절반… ‘여성 정치’ 봄날은 온다, 2003-12-30) 이 기사는 이번 총선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 국회의원을 배출하느냐’가 여성들의 정치세력화를 검증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여성 국회의원의 수가 많아지면 ‘여성정치’의 봄날이 올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여성정치’와 ‘여성정치인 수’의 개념은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단순히 여성이 많아진다고 여성정치-여성을 위한 정치, 여성주의적인 정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할당제의 실현만으로 여성들의 파워를, 정치권의 변화를 장담할 수는 없다. 여성정치의 봄날은 아직 멀었다. 50% 운운하며 여성정치인 숫자 채우기로 부각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확정된 것이 아니다), 사실 할당제는 여성정치세력화를 실현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 중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언론은 마치 여성정치의 시대라도 도래할 듯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언론의 이런 호들갑은 정치권의 의도와 맞아떨어진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서로 경쟁하듯 여성의원 영입을 서두르는 것은 여성들의 정치진출, 혹은 여성정치세력화에 대한 열망 때문이 아니다. 여성의원 영입을 통해 진보적인, 개혁적인 색깔을 입기 위한 제스처일 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왜 반(反)여성적일 뿐더러 보수적이기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나라당이 여성 ‘비례대표 50%’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긍정적으로 내밀었겠는가. 이번 총선을 기점으로 갑자기 가장 여성주의적인 정당이라도 됐단 말인가. ‘숫자’로만 본다면 한나라당의 여성평등지수는 여타 정당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진보적일 수도 있다. 숫자로 승부하겠다는 정당의 태도, 그리고 이 숫자에만 매달려 여성정치세력화를 논하는 언론의 태도. 실상 둘 다 여성의 정치세력화에는 별 관심도, 관점도 없어 보인다. '여성정치세력화'에 대해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는 현 언론들이, 막상 '여성정치'란 무엇인지, '여성정치세력화'가 가능하려면 어떤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점검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여성 정치세력화’는 정당과 언론이 그저 필요에 의해 선정적으로 선택한 이벤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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