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부칠 문제가 따로 있지

KBS ‘100인 토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4/02/15 [21:30]

찬반 부칠 문제가 따로 있지

KBS ‘100인 토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윤은미 | 입력 : 2004/02/15 [21:30]
토론과 논쟁이 중시되면서 이전에는 푸대접을 받았던 전문 토론 프로그램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각 방송사에서 간판으로 내거는 토론 프로그램이 하나씩 있다.

KBS의 <100인 토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는 ‘직접 참여하는 토론’을 내걸고, 다른 프로그램과는 달리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100명의 사람들이 토론 전과 후에 특정 사안에 대해 표결한다. 토론하는 전문 패널들은 각자 찬성과 반대쪽 득표수를 늘리기 위해 제한된 시간 동안 논지를 짧게 요약해서 제시한다.

무작위로 추첨된 ‘배심원’들이 표결하는 것은 얼핏 보기에 민주주의적이고, 사회적 여론의 향방을 한 눈에 보여주는 괜찮은 행위로 여겨진다. 게다가 토론 전과 후 득표수의 향방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집중된다. 그 때문일까? <100인 토론>은 다른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 비해 시청률이 높은 편이다.

찬성/반대 단순화가 갖는 위험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모든 이슈가 표결로 인해 찬성, 반대로 요약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사회적 사안들 가운데는 찬성과 반대로 쉽게 요약할 수 없는 상황이 많다. 예를 들어 작년 4월 8일 방송된 ‘외국인 고용 허가제 도입 논란’의 경우, 찬성/반대만 언급하여 정부에서 시행하는 고용허가제 자체가 가진 한계점을 조명하지 못했다. 정부는 작년 8월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 제정 후 4년 이상 체류한 이주노동자에 대해 강제추방을 단행하겠다고 밝혀, 오히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샀다.

특히 찬/반을 부각시켜선 안 되는 문제들이 있는데, 소수자의 문제가 그러하다. 2월 8일 방송된 ‘동성애, 청소년에게 유해한가’ 편에선 지난 4일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 유해 매체물 심의기준에서 동성애 부분을 삭제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표결을 붙였다. 찬성 쪽은 사회적 개방성과 더불어 청소년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반대 쪽은 동성애에 관한 정보를 차단하지 않으면 왜곡된 성적 가치관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100인 토론>은 동성애 자체에 대해 존중하고 있다는 뜻을 표명하기 위해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홍석천씨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전문가’로 섭외된 패널들에는 동성애자가 한 명도 없었고, 따라서 토론 자체가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만 간주한 채 전개돼 이들을 다시 소외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소수자의 문제를 표결에 부친다?

또한 ‘동성애가 청소년에게 유해한가’ 여부를 투표에 부치는 행위는 마땅한 일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소수자가 ‘소수자’라고 명명되는 것은, 이들이 사회적으로 소외 받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수결’은 가장 피해야 할 방식이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이슈가 무기명 투표 위에 올랐을 때, 당연히 다수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특정 제도의 도입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해 찬성, 반대를 하는 것 역시 아이러니다. 동성애가 청소년에게 유해한가라는 이슈는 결국 동성애자들 자체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인데, 엄연히 존재하는 동성애자들에 대해 찬성과 반대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작년 6월 29일에 방영된 ‘찬반논쟁-혼전 동거’는 소수자 문제는 아니지만, 결국 현실적으로 동거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찬성, 반대 표결을 붙이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토론 프로그램은 특정 사안에 대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심화된 의견들이 제시되는 자리다. 그 의견들을 통해 사회적 갈등 지점과 권력관계, 각 집단의 정치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100인 토론>은 ‘사회적 개방성, 인권 존중 대 사회 혼란 및 시기상조’로 문제를 찬/반으로 단순화하고, 표결이라는 형식적인 절차에 집중한다. 이 같은 단순화와 형식적 절차를 강조하는 것은 마치 모든 문제에서 두 가지 근거가 동등한 위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이게끔 한다.

상황의 단순화를 통해 그 갈등을 둘러싼 사회 집단들의 권력 관계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은 ‘보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전개하는 방식의 특징이다. <100인 토론> 역시 그러한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세정 2004/02/17 [09:27] 수정 | 삭제
  • 오타가 있어서요

    헤드를

    찬반에 '부칠' 문제가 따로 있지

    로 바꾸어야 하지 않나요 -_-;; 트집잡아서 죄송해요

    너무 열심히 읽다 보니까요
  • 지나다 2004/02/16 [14:12] 수정 | 삭제
  • 시사 토론하면서 '찬/반'으로 표결하는 거 말입니다.
  • 윌리 2004/02/16 [03:14] 수정 | 삭제
  • 그런 토론회 왜 하는 걸까요? 안 하는 게 훨씬 낫잖아요. 결국 청소년한테 문제있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요? 100인 토론 다시 봤네요. 예전에 유승준 관련한 토론도 웃겼는데..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