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교정의 만화는 단번에 독자를 사로잡는 강렬한 매력은 없지만, 어느 순간 독자를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그녀의 그림체도 그렇다-처음 보면 눈이 크고 턱 선이 뾰족한 표준적인 순정만화 그림체이기 때문에 밋밋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자세히 보면 드러나는 펜 선의 세밀함과 데생의 꼼꼼함 때문에 정감이 간다.
권교정은 그 편수는 많지 않으나, 환타지와 역사물을 뒤섞은 <헬무트>, SF적 성격이 느껴지는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동화나 신화에서 등장한 서사를 차용한 <붕우>와 같은 단편집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그려 온 작가다. 그녀의 작품에서 대체로 느껴지는 인상은, 어떤 장르든지 해당 장르의 성격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등장인물의 내면 심리에 초점을 맞추어 그녀 특유의 감성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 감성은 타인에게 느끼는 거리감과 외로움, 내면의 교류에 대한 소망이다. 등장인물들은 장르물에서 꼭 나올 법한 전형적인 인물상이지만, 그들이 표현하는 감정들은 진부하지 않다. <어색해도 괜찮아>는 <정말로 진짜!>와 함께 권교정의 대표적인 학원물이다. 이 작품 역시 인물 구성 자체는 고전적인 학원로맨스물의 공식에 따른다. 평범하지만 나름대로 귀여운 매력이 넘치는, 여성독자들의 자기 대입이 쉬운 여자 주인공 긍하와 잘생긴 외모의 남자주인공 한강. 그리고 자유분방한 매력을 풍기는, 역시 잘생긴 남자 소현민과 강하고 차가운 인상의 예쁜 여자 최정언, 긍하의 단짝친구 현정 등이 있다. 긍하는 피아노를 아름답게 연주하는 한강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한강 역시 긍하의 노트를 우연히 발견해서 그녀의 소설들을 보면서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이들의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작가는 이들의 줄다리기 과정을 기존의 학원물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그러낸다. <어색해도 괜찮아>는 한강과 같은 ‘킹카’ 남자가 정말로 현실 속에서 평범한 여성인 긍하에게 관심을 보이면,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진전되면 좋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나름의 소박한 상상을 바탕으로 답변한다. 보통의 학원로맨스물이 우연한 사건의 연속과 연적들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계속적인 긴장감을 자아내고, 아울러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은근한 스킨십으로 여성독자들의 시각적인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데 비해 <어색해도 괜찮아>는 그렇지 않다. 서로에 대한 예정된 호감과 우연한 만남의 연속이라는 설정은 같지만, 이들이 서로에게 친밀함을 느끼는 과정은 학원로맨스물의 공식과는 다른 것이다. 긍하와 한강은 책을 나눠보고, 관심 있는 행사에 함께 가고, 서로의 집에 방문하면서 친해진다. 이 과정은 외면이 아닌 내면의 교류를 통해 친해지고 싶다는 여성독자들의 소망에 부응한다. 시각적인 욕망만큼은 아니지만, 나만의 이야기를 알아 줄 것 같은-자기 동일시를 할 수 있는-대상에 대한 욕망 역시 10대 여성독자들에게 부응한다. 비교하자면, <어색해도 괜찮아>는 강경옥의 <현재진행형>에서 등장했던, 나레이션으로 깔리는 10대 소녀의 내밀한 고백이 외부로 나왔다는 인상이다. 소녀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도 알아줄 것 같지 않다는 외로움에 휩싸이지 않는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책을 나누고 자신의 매력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내면의 교류를 통한 친밀함에 대한 욕구와 ‘자기만의 것’을 획득하겠다는 소망은 긍하와 한강, 정언이 서로에 대한 앎을 통해 글을 쓰겠다거나, 작곡을 하겠다는-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계속 하겠다고 결심하는-부분에서 잘 보여진다. 긍하는 보통의 학원물 같으면 질투를 느껴야 할 대상이었을 정언에 대해, 정언이 자신이 배울 점을 지닌 단단한 내면의 소유자라는 점 때문에 그녀와도 친해지기를 원한다. 긍하와 한강이 지닌 꿈이나, 한 명 두 명 친해지면서 긍하가 느끼는 기쁨은 소박하지만 공감의 여지도 크다. 여기에 어머니가 일찍 죽은 후 아버지와 소원했던 한강의 이야기와 한강과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타인에 대한 거리감을 강하게 느끼는 정언의 이야기 등이 첨가되면서 보는 재미가 더해진다. 이를테면, <어색해도 괜찮아>는 1990년대의 내밀함을 원하는 여성독자들에게 잘 부합한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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