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선, 한국가요계 전무후무한 댄싱퀸

한국 여성음악인 재조명-2

주문정언 | 기사입력 2004/03/08 [02:25]

김완선, 한국가요계 전무후무한 댄싱퀸

한국 여성음악인 재조명-2

주문정언 | 입력 : 2004/03/08 [02:25]
김완선이 한국 가요계에서 전무후무한 ‘댄싱 퀸’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댄스 아이돌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가요계에서도 소위 댄스가수가 여덟 장의 앨범을 내며 삼십 대 중반이 되도록 살아남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김완선을 이야기하기 어렵게 만드는 몇 가지 사건들이 최근 있었고, 그것이 마치 김완선이란 가수가 이제 한 물 갔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듯 했다.

사실 김완선에 대한 기억의 시작은 온전히 김완선의 음악과 춤에 대한 것은 아니다. 나도 여느 또래처럼 소방차와 박남정에 더욱 열광했었고, 당시 김완선은 그저 그들과 함께 자주 볼 수 있었던 여자가수였다. 거기다 당시 한국의 문화는 소녀들로 하여금 김완선과 같이 온몸으로(?) 노래하는 가수에 대해 그저 천박하다고 헐뜯기 쉽게 만들었다. 이선희처럼 단정한 이미지의 가수에 대해선 좋아한다고 말하기 쉬워도, 김완선에 열광하거나 그처럼 되고 싶다고 말하기는 곤혹스럽단 생각이 드는 보수적인 시절이었다.

17살 데뷔 후 6집까지 꾸준한 발전

1992년 갑작스런 은퇴선언이 있기 전까지 김완선의 행보는 ‘성실한 노력’ 그 자체였다. 1986년 이모 한백희가 매니저였던 가수 인순이의 백댄서 ‘인순이와 리듬터치’의 멤버로 데뷔해 여섯 장의 앨범을 내기까지 그는 쉴 새 없이 활동했다. 텔레비전을 틀기만 하면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든 디스크 본상을 4년 연속으로 수상했다는 것도 그의 활동이 얼마나 왕성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남자가수 중 가장 춤을 잘 추던 박남정과의 성 대결이라든지, 인기절정이던 소방차와의 공동무대는 김완선의 몫이었다.

그러나 유능한 매니저인 한백희의 안목은 그의 앨범 제작도 춤에 뒤처지지 않는 수준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데뷔 앨범에서 산울림의 김창훈이 만든 ‘오늘밤’을 부른 것도 그렇고, 이장희의 곡을 리메이크하거나 전인권의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등의 노력들도 그 연장선에 있다. 곡 선정, 편곡, 프로듀싱 면에서도 신경을 쓴 앨범들이었다.

데뷔 초반에는 격렬한 춤에 반해 가냘프고 비음 섞인 목소리나 짧은 호흡 등이 그를 ‘노래는 못하는 가수’라고 여기게 했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김완선은 그 자신에게 맞는 음역과 색깔을 찾는데 성공한다. 거기다 무대에서는 그저 연주하는 흉내만 내는 수준이긴 했지만, 댄스가수로서는 드물게 밴드를 대동한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실루엣’이란 이 밴드에는 손무현, 윤상 등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속해 있었고 단순하게 넘길 수 없는 음악적 열의가 분명히 담겨 있었다.

1집 ‘오늘밤’, 2집 ‘나 홀로 뜰 앞에서’와 ‘리듬 속의 그 춤을’, 3집 ‘나 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 4집 ‘기분 좋은 날’과 ‘싫어요’까지 이어오던 김완선의 앨범은, 그의 밴드 ‘실루엣’에서 작곡과 기타연주로 명성을 얻은 손무현과 작업한 ‘나만의 것’,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부터는 놀랄 만한 변화를 보인다. 1집부터 4집까지 음악들이 신나게 듣고 즐길 수 있는 곡들이었다면, 5집부터의 행보는 정말 ‘댄싱 퀸’의 역사를 쓸만한 음반이었다. 특히 그가 작사한 6집의 ‘애수’는 화려할 것만 같던 그의 쓸쓸한 내면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했다.

1992년 돌발 은퇴선언과 루머들

그러나 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으리란 기대와는 달리, 김완선은 조금 이해할 수 없는 길로 ‘튄다’. 1992년 돌연 은퇴선언을 하곤 한국을 떴다. 그리고 알란 탐과의 듀엣으로 홍콩 진출을 시도하다 대만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그곳에서 꽤 인기를 얻는다. 대만 대통령 선거에서 이등휘 대통령의 홍보참모로 활동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후에 기모노를 입고 ‘사요나라’란 노래를 불렀다는 비난을 받게 되기도 한다.

당시 김완선의 은퇴선언을 두고 국내에선 여러 가지 설이 떠돌았는데, 유명 여성연예인에게 한번쯤 따라다니는 ‘임신설’이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다. 또 ‘다이어트를 그만 두기 위해서’라는 어이없는 추측도 돌았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그가 유전적으로 뚱뚱한 체질인데 그 동안 몸매 유지를 위해 아이스크림 하나, 초콜릿 몇 조각으로 연명해왔다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김완선이 홍콩과 대만활동을 하던 시기에도 국내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공백기 동안 살이 얼마나 쪘을까’ 식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기도 했다.

내 주변의 지인은 김완선의 은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김완선은 가수로서, 댄서로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고, 그가 작사한 비비안 리 주연의 동명 영화를 연상시키는 ‘애수’의 주옥 같은 가사는 수준급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를 ‘치켜 올라간 눈’과 ‘가슴 사이즈’만을 부각시키며 ‘맹한’ 여성으로 취급했다. 그런 상황이 지겨워서 가장 인기가 있던 시기에 은퇴를 선언한 것이 아닐까?”라고.

두 번의 컴백, '탤런트'와 'S'

1995년 대만에서 1집 앨범을 발표한 김완선은 1996년에 7집 앨범인 <탤런트>로 컴백을 시도했다. 컴백 당시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성공하기 전에는 결코 한국땅을 밟지 않겠다던 나와의 다짐이 지켜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한 바 있다.

데뷔 초 자신의 로드 매니저로 매니저 수업을 하던 김광수가 조성모 등을 배출한 GM기획이라는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리고 그의 컴백을 돕기로 했다. 그러나 김광수와 방송국 연출자들간의 갈등으로 그의 컴백무대는 제작된 것들조차 보류되거나 방영되지 못하는 등 시련을 겪는다. 결국 7집은 미미한 활동으로 그친다. 그리고 공백기를 의식한 듯 너무 시류에 편승한 느낌을 주는 앨범과 무대는 당시 김건모나 서태지와 아이들에 눌릴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시작된 공백기에 그는 ‘오룡비무방’이라는 힙합댄스그룹의 제작자로 변신을 시도하지만 그 역시 여의치 않았다. 게다가 제작비용을 감당하기 위한 밤무대 활동을 하게 되면서 김완선의 무대를 나이트클럽에서나 볼 수 있는 썩 좋지 못한 상황이 연출된다. MBC 드라마 <여자대여자>나 KBS <슈퍼선데이>에서 연기자로서 변신을 시도하지만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는 등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는 정말 한 물 가는 듯 보였다.

2002년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8집 'S & Remake'로 컴백을 시도한 김완선의 저력과 끈질김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저 재기작이라고 하기엔 8집 앨범은 수준작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웹진 <가슴>의 편집장 박준흠은 이 앨범에 대해 “곡들이 균일하지 않다는 약점은 있으나 한국 댄스 씬의 역량을 집대성했다”고 칭찬했다.

“그의 춤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춤’이다. 그는 박남정과 더불어 댄스계보의 첫 장을 장식한다. ‘기계체조를 연상시키는 격렬한 춤’으로 말이다. 그의 웨이브는 아직도 많은 백 댄서들에게 경탄의 대상이다. 람바다 열풍이 불 때 그는 람바다 앨범을 내면서 섹시한 춤을 선보였고 ‘마카레나’ 열풍 때는 그 춤을 자신이 직접 대만으로 전파하기도 했다.

6집 앨범의 곡 ‘그대는 바람처럼’에서는 4인조 백 댄싱 팀과 ‘어깨춤’이라고 이름 붙인 격렬한 춤을 선보였다. 8집 컴백 당시 ‘S'의 드라마틱한 무대를 잊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사실 그와 자주 비교되는 마돈나도 분석가들에 의하면 춤 자체는 요가동작을 응용하는 등 단순한 안무라고 얘기되고,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춤도 철저하게 기획된 남성적인 군무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김완선의 춤은 안무 이전의 본능적인 부분이 있다. 격렬한 춤을 추는 많은 댄스 가수들이 존재하지만, 김완선의 춤이 주는 그 섹시하고 원초적인 느낌을 전달해내는 이는 드문 것 같다.

그런 춤을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김완선이 예전 십대 소년들의 성적인 판타지로 여겨졌던 것도 바로 그의 눈빛과 춤이 주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SM기획 이수만 대표는 보아를 기획할 당시 인터뷰에서 김완선에 대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지금까지 여자가수 가운데 댄스를 제대로 소화해 연출해 낸 가수는 거의 없었고, 김완선의 생명력은 그가 댄스와 무대매너를 완벽히 소화해 낸 결과였다”는 것.

‘댄싱 퀸’의 역사는 현재진행형

최근 김완선은 누드집을 내면서 앨범을 제작하기로 한 기획사와 소송문제가 불거지고, 누드집 역시 실패했다. 그 뒤에 들려오는 누드집 기획자와의 열애설은 1992년 은퇴선언 4개월 만에 번복할 당시 “너무 지쳐서 쉬고 싶었다”고 말했을 때 느꼈던 연민을 다시 일으키게 했다. 이런 식의 스캔들은 분명 그의 활동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테지만, 그렇다고 김완선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확실한 것은 그가 여전히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인데 이제는 김완선의 아름다움만을 칭송하기엔 뭔가 많이 미흡하다. 그저 그런 스캔들로만 우리 곁에 돌아오는 ‘지나간 인물’이 되어가기엔 아까운 무엇인가가 분명 존재한다.

영국에서 잠시 지내던 때 나는 카일리 미노그란 가수를 알게 됐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인기 있는 가수가 아니었지만, 호주 출신의 그는 자그마한 체구에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영국의 국민가수로 인정 받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카일리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나는 댄스가수가 저렇게 인정 받고 성공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결정적으로 2002년 시드니 올림픽 폐막식에서 ‘댄싱 퀸’을 부르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아바의 명곡이 아닌 카일리 자신을 노래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그 때 떠오른 이가 김완선이다. 누군가와 굳이 비교를 하는 것은, 김완선에 대한 평가가 아쉽기 때문이다. 시대를 앞서가던 ‘댄싱’의 여왕 김완선이 아니던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19년 한 길을 걸어온 그다. ‘예쁘고 춤 잘 추는 가수’라는 평은 어린아이에게나 어울릴 법한 얘기다. 예쁘다는 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외모와 음색, 춤 잘 춘다는 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하고 화려한 무대는 그런 겉도는 칭찬이나 쓸데없는 스캔들에 비할 바 아닌 내공을 지녔다.

나는 기대해 본다. 김완선이 1980년대 가요사를 쓰기 위해 할애되는 추억의 이름으로서가 아니라, 더욱 발전하고 강해져서 지금의 시기에도 진정한 ‘댄싱 퀸’의 자리를 거머쥘 그런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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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삐에로2020 2020/02/16 [14:34] 수정 | 삭제
  • 2020년 요즘 구글 덕분에 많이 들 좋아 합니다.
  • 후훗~ 2004/03/10 [19:57] 수정 | 삭제
  • 어릴적 김완선을 무지 좋아했었죠.
    동생과 저는 민혜경이 좋다,김완선이 좋다,며 편을 갈라 다툼을 하곤 했어요 ^^
    저만의 기분일까요.
    언제부턴가 쇼프로에서 김완선의 모습이 짠하게 느껴지는게..
    최근 소송에도 휘말렸다는데;;
    당당한 모습으로 컴백했음 좋겠네요.
  • 대중 2004/03/09 [20:52] 수정 | 삭제
  • 이 기사보고 다시 지난 추억들에 젖어보네요..
    김완선이란 가수는...아마 물건(?) 이었으면 특허나... 아님..오래되었더라면... 문화재쯤은...ㅎㅎ 20년 대된걸로 ㅇㅏ는데... 참,,대단하군요...
    이 기사쓴 기자분 생각에 동의 합니다.
    장덕 기사도 그렇고... 장덕씨도 참 아까운... 몇안되는 여자가수중에 ㅎㅏ나였는데... 그녀의 음악을 더 듣지 못해서 아쉽기도 했는데...
    왜 우리나라는... 고인이 된 가수... 또는 땐스가수.. 거기다 여자가수.. 거기다 활동한지 ㅇㅗ래되었다는... 늙은것 같은(?)가수는 터부시 하는지..
    저도 타일리 ㅁㅣ노그나..마돈나... 그런 가수들보면서 김완선 생각 많이 했는데...
    어찌보면 김완선이 우리나라에 태어난게 본인으로는 아쉬운거겠죠..또 어찌보면 대중들은 김완선이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다행이겠죠... 대중의 변덕이 너무심한건 아닌지... 조금은 아니 많이 ㅇㅏ쉽네요...
  • 이삭 2004/03/09 [20:34] 수정 | 삭제
  • 저는 어렸을 때라 김완선 언니 예전 음악들은 잘 모르구요. 굉장히 인기가 있었는데 은퇴했던 건 기억해요.
    컴백할 때 댄스의 여왕이 돌아왔다고 해서 기대가 됐는데 잠깐 나오고 말았죠.
    저도 김완선 언니 컴백했을 때 본 방송이 기억 나는데요.
    컨셉이 몰래카메라라서 별로 기분이 안 좋았어요. 그런데 중간에 잠깐 갑자기 춤을 추라고 해서. 그것도 요즘 힙합에 맞춰서 추라고 했는데 너무 섹시하고 완벽하게 춤을 추는 거 보고 그 때부터 완선이 언니 좋아하게 됐거든요.
    지금은 데뷔 때부터 모습 알게 돼서 더 좋아요.
  • 섬마을 2004/03/09 [02:02] 수정 | 삭제
  • 김완선 씨를 볼 때마다 무엇인가 목에 걸리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이것이었군요.

    그녀가 대중으로부터 받았던 것이 '큰 인기'였음을 부정할 수 없으며 그것의 가치 또한 폄하할 수 없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녀에게 걸맞는 몫을 주지 않은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가끔 보이는 그녀는, 추억이라는 이름 안에 가두기엔 현재와 미래를 얘기하기에도 부족할 만큼 크나큰 무엇을 안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자였기에, 지금과 다른 시대였기에' 라고 변명하기에는 그녀는 아직 너무나 젊고 아깝지 않습니까.

    지금 그녀는 우리가 안겨 준 빈 접시를 보고 어쩌면 허망함에 아주 작아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마저 접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역사에서나 문화에서나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참 보기 드문 민족이라는 생각을, 김완선 씨를 보면서 다시 한 번 하게 됩니다.

    불연듯, 김완선 씨의 무대를 꼭 다시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그녀의 능력이 아깝다는 것과 더불어, 적어도 그 누군가는 제대로된 평가를 받는, 그런 나라의 국민임을 확인하고자 하는 작은 바람 때문에.

    김완선 씨가, 여자라는 이유로 장막 뒤로 사라졌던 '허난설헌'이나 '나혜석'과 함께 머릿속에 떠오느는 일이 정말로 없기를 .....동시대인으로서 기원합니다.
  • 둘리 2004/03/08 [20:29] 수정 | 삭제
  • 손무현이 김완선 밴드에서 컸군요....
    조금 기억이 나려고도 하는군요.
    '나만의 것'은 대중음악사에 남을만한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덕 기사도 그렇고.. 여성음악인 인물사를 훑어보는 것같은 기분이 드네요.
  • 가위 2004/03/08 [15:02] 수정 | 삭제
  • 김완선씨. 80년대 단연 돋보였던 가수죠. 10대때 오늘밤을 부르는 모습은 진짜 파격적이었어요. 저도 그 때 10대였는데 열광했죠. 요즘 가수들보다 그 때 가수들 중에 더 실력있던 가수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댄스도 굉장하지만 목소리가 독특해서 요즘에도 감각이 뒤지지 않을 것 같아요. 이번 앨범도 괜찮은 평이던데 많이 뜨지는 못했죠.. 저도 사보지는 않았는데 기사보니까 한 장 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바라기로는.. 소방차나 이수만처럼 프로듀서로 여자가수들 키우는 위치에 계신다면 더 좋겠지만요.. 여성뮤지션들한테는 그럴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쉽지 않을 겁니다. 아마..
  • harmons 2004/03/08 [13:50] 수정 | 삭제
  • 김완선이 컴백했을 때 TV에서 라이브쇼를 보여줬었어요.
    댄스도 여전하고 노래도 정말 잘 하고.
    저는 아무래도 나이가 있어서 실력이 좀 떨어졌을 줄 알았거든요.
    그거 보면서..
    10대 가수들이 판을 치고 있는 가운데서도 30대인 김완선이 뭔가를 보여주기를 기대하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탤런트'라는 곡은 제가 듣기엔 별루였어요.
    좀 실망도 하고...
    이번에 'S' 나왔을 땐 저도 놀랐거든요?
    김완선은 진짜 저력이 있구 노력하는 사람 같아서 더 애정이 가요.
    그리고 인터뷰 같은 데 잠깐 보면 자신감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후배들한테 존경받는 선배라는 얘기도 어디서 본 것 같구요.
    근데 김완선에 대한 평가가 아쉽다는 데 동의해요.
    댄싱퀸인데 별로 대우를 안해준다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누드집 때문에 맘고생도 많을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구..
    이번 음반도 좋은데. 흑..
    완선이 언니! 끝까지 살아남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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