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디바의 존재증명, 박영미

한국 여성음악인 재조명-6

주문정언 | 기사입력 2004/04/04 [23:38]

한국 디바의 존재증명, 박영미

한국 여성음악인 재조명-6

주문정언 | 입력 : 2004/04/04 [23:38]
박영미를 떠올리면 중학교 때 내 짝이 생각난다. 그 친구에게 가장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단연 박영미였고, 나는 그의 박영미 예찬론에 귀 기울여야 했다. 그러던 사이 나도 박영미를 좋아하게 된 듯하다. 짝이 연습하던 ‘대단한’ 창법의 노래 ‘이젠 모두 잊고 싶어요’도 좋았지만, ‘나는 외로움, 그대는 그리움’의 가슴 설레게 하는 간주도 좋았다. 뒤이어 2집이 나왔고 짝의 연습목록에 ‘이제는 너와 함께’가 올라왔다. 박영미 특유의 힘 있고 드라마틱한 창법은 그 친구가 따라 하기엔 사실 무리긴 했지만.

박영미의 외모는 꽤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데, 거기에 대해서 어쩌면 불문학을 전공한 그가 텔레비전에 나와 부르던 샹송도 한 몫 했고-그때 당시 박영미가 부르던 ‘빠담 빠담’은 정말 훌륭했다- 1집에 수록된 ‘그리스에서 온 편지’ 탓인지도 모른다. 박영미의 1집과 2집은 나의 음반목록에 ‘주목할 가수’칸으로 분류되어 꽤 오래도록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곤 그를 꽤 오래 잊고 있었다. 텔레비전 출연이 드물었던 탓도 있고 그 뒤를 쭉 잊던 디바들의 연이은 데뷔와 컴백 때문이기도 했다. 신효범, 박미경, 김태영 등 디바들은 무척이나 화려하게 나타났다가 또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했다. 내가 다시 박영미를 만난 것은 <상두야 학교 가자>라는 드라마에서였다. 비의 눈물연기가 가슴을 에이게 하던 드라마였던 <상두야...>에 낯익은 목소리가 언뜻 들려왔다. 그 곡 ‘Someday'의 목소리는 분명 박영미였다.

강변가요제서 ‘대형 여가수 탄생’ 신고

1989년 MBC강변가요제에서 ‘이젠 모두 잊고 싶어요’로 대상을 수상한 박영미는 1990년 1집 타이틀로 당시 꽤 인기 있던 가수 김성호의 곡 ‘나는 외로움 그대는 그리움’을 발표했다. 당시 박영미에게 쏟아진 찬사는 바로 ‘대형 여가수의 탄생’이다. 그러나 1집의 타이틀 곡이 표절시비에 휘말리면서 박영미의 활동도 주춤 하는 듯 했다. 하지만 ‘꿈에서’나 ‘멈추지 않는 댄스’등의 1집의 다른 곡들도 묻혀버리기엔 아쉬울 만큼 꽤 인상적이다. 또한 1991년 상하이 아시아 가요제에서 ‘이제는 너와 함께’로 금상을 수상했다. 이 곡은 박영미 특유의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강력한 고음 발성이 돋보인다.

1992년 2집 <추억조차 없던 때로>를 발표할 당시에도 박영미는 대학생 신분이었고 활동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1집과 2집 사이의 변신은 상당히 큰 폭으로 진행됐다. 1집이 편안한 발라드 위주라면 2집은 1집의 긴 치마를 입고 철길에 앉아있던 생머리의 청순함과는 다른, 강하고 퇴폐적인 사진의 앨범 재킷에서 느낄 수 있는 힘 있고 세련된 음악과 강한 보컬로 변신했다.

‘드림팀’으로 불릴 만큼 내노라 하는 음악인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신해철과 신촌 블루스의 엄인호, 김현철, 심상원, 조규만, 조규찬, 정원영 뿐 아니라 당시 작사가로 이름을 날리던 윤상의 콤비 박창학과 명로진도 참여했다. 신해철이 편곡까지 담당한 ‘쉽게 말하지만’과 엄인호가 작곡한 ‘비 오는 토요일의 해후’는 그들 특유의 색깔과 박영미의 목소리가 맛깔 나는 조화를 이룬다. 박영미의 2집은 지금 들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현대적인 감각과 세심한 제작이 돋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드림팀’들과의 작업이 그다지 큰 반향을 얻지 못했던 이유는 데뷔 당시 기대와 달리 박영미의 보컬 역량이 스스로 자신의 색깔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유의 보컬특성 살리기 위한 노력

본격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가수로 전업하며 만든 앨범은 1995년의 3집이다. 이 3집은 미국 내쉬빌에서 녹음 작업을 했고 프로듀서는 국내 가수 이은미, 하덕규와도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는 스티브 대디(Steve Dady)가 맡았다. 3집의 타이틀 곡인 ‘그대를 잊는다는 건’은 진한 소울 풍의 절제된 창법으로 박영미 특유의 매력을 찾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한 All For One의 공연에 오프닝을 담당하면서 이 곡이 더욱 인기를 끌기도 했다. 3집 앨범에서는 박영미가 직접 ‘네가 찾는 세상’과 ‘마지막 나의 노래는...’이란 곡에서 작사를 시도했다.

3집은 박영미 특유의 색깔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은 동시에, 당시 미국적 유행과 국내 정서상에서는 약간 괴리가 있는 것 같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럼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 3집에서 그가 가진 보컬적 역량이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1997년에 나온 4집 <파혼> 앨범 역시 미국 내쉬빌 스튜디오에서 스티브 대디와 함께 작업했다. 박영미는 ‘파혼’을 앨범의 제목과 타이틀로 정하고는 꽤나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가수는 노래처럼 된다는 말에 박영미의 가족들이 ‘파혼’을 타이틀로 정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파혼’이란 곡의 가사가 상대적으로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박영미의 발전상과 비추어 볼 때 끊임없이 변신하고 노력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긍정적인 해석도 분명히 가능할 것 같다.

4집은 박영미 특유의 발라드보다는 R&B적인 곡들로의 변신을 꾀했고, 3집과 유사한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사운드가 많이 달라져 있다고 평가 받았다. 그리고 예전 앨범들에 비해서 R&B나 펑키 등을 위주로 한 팝 발라드 곡들을 보여주면서 앨범을 전체적으로 비슷한 톤으로 정리했다.

주목할만한 것은 이 앨범을 박영미와 함께 작업한 신인 여성 작곡가 이현정이다. 이기찬의 ‘플리즈’를 작곡하기도 한 이현정은 이 앨범에 참여하면서 박영미의 R&B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간결한 편곡으로 박영미의 보컬특성을 살리려고 애썼다. 이현정과 박영미가 공동으로 직접 작곡에 참여한 ‘아무말 하지마’는 발랄한 리듬이 신선했고, ‘서툰 사랑’이나 ‘체인징 게임’도 기존의 박영미의 곡들과는 색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가수이기도 한 박기영이 작사한 ‘슬픈 약속’도 이 4집에 들어있다.

이 앨범에서 가창력 있는 가수들이 주로 범하는 실수인 자신의 가창력을 과시하려는 듯한 기교 대신, 각 노래가 갖는 감수성을 최대한 살렸다. 내지르는 박영미의 창법이 3집부터는 절제된 내성으로 변하더니, 4집에서는 그만의 독특한 음색과 자유로운 애드립으로 발전했다. 소위 ‘드림팀’과의 작업도 박영미 스스로의 역량을 찾아내는데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했지만, 이현정이란 여성 작곡가와의 작업은 박영미의 여성보컬로서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게 해주었다.

듀엣, 뮤지컬, 드라마곡 등 활약

또 다른 재미있는 사실은 박영미의 4집 앨범에 있던 ‘서툰 사랑’이 바로 빅 마마의 ‘거부’와 동일한 곡이란 것이다. 작곡가 이현정이 각각의 두 가수들과 함께 작업을 했고, 작사와 편곡만 바뀌었다. 다만 빅 마마의 버전이 좀 더 리듬이 빠르고 세련됐다고 볼 수 있다. 이 ‘거부’란 곡이 빅 마마의 히트곡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때 당시 박영미 역시 상업가수로서의 성공을 분명 점쳐볼 수 있었을 것 같다.

비록 박영미를 텔레비전에서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박영미의 활동이 미미했다는 의미가 될 순 없다. 1995년에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여주인공 마리아 역할을 맡았고, 1998년에는 뮤지컬 <라이프>에 출연했다. 그 외에도 코러스나 듀엣으로서의 박영미의 주가 역시 높다. 변진섭 4집 앨범에서 함께 한 ‘우리가 잊은 하늘’, 정선연과 부른 ‘영원한 사랑’, 고한우 1집의 ‘또다른 하루’, 윤종신과의 듀엣인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이 있었고, 최근엔 장나라나 Free Style의 코러스로도 참여했다.

또 <아주 특별한 변신>이라는 영화의 주제곡 ’그대를 영원히‘, 외화인 <러브레슨2>의 주제곡, MBC드라마 <국희>의 주제곡인 ’배려‘, SBS드라마 <러브스토리>의 ’그때까지만‘과 SBS아침 연속극 <엄마의 노래>에서는 ’그리운 얼굴‘을 불르기도 했다. 뮤지컬 <별주부해로>의 주제곡 'Wish', <록키호러픽쳐쇼>의 주제곡들 등도 박영미의 목소리이다. 2000년에는 O2music 통해 ‘그대와 내가 만나기 전처럼’을 새로 발표했다. 박영미가 직접 작사를 했고, 녹슬지 않은 박영미 특유의 팝 발라드적 기량을 발휘한 곡이다. 2002년에는 월드컵과 관련해 붉은 악마 공식응원앨범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다이나믹 코리아’를 불렀다. 그리고 최근 KBS 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의 ‘Someday’까지 이어진다.

그 외에도 박영미의 곡들이 수록된 무수히 많은 컴플레이션 음반들이 있다. 박영미의 독집을 구하기 힘들어 아쉽지만 이 컴플레이션 앨범에서 박영미의 대표곡들을 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박영미의 초창기 곡인 '이젠 모두 잊고 싶어요'는 Fly to the sky와 김조한의 조인트 라이브 공연과 앨범에 리메이크돼 다시 불리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박영미는 1997년과 1998년에 자신의 라이브 콘서트를 가졌고, <열린 음악회>의 단골 출연자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 ‘얼굴 없는 가수’ 또는 ‘이름만 남은 가수’라고 까지 불렸지만, 박영미에 대한 진실한 평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가수’가 맞다. 어떤 이들은 강변가요제의 대상 수상자이면서도 그때 당시 은상을 수상했던 또 다른 걸출한 여가수인 박선주에 비해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박영미와 박선주란 이 두 가수는 함께 1989년 강변가요제의 안목을 보여주는 당대의 여성 가수들이라고 평가 받아야 더 정확할 것 같다.

진정한 디바로서의 생명력

우리에게도 '디바‘라 불렸던 많은 여가수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순간 그들 스스로 디바의 자리를 걷어찬 듯 줄곧 상업적 성공과 이미지 메이킹에 매달리곤 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어느 날 그들의 노래는 다이어트의 성공과 달라진 외모, 격렬한 안무와 더불어 짧고 거친 호흡을 동반하는 변화를 보였고, 사람들은 더 이상 ‘디바’란 칭호를 그들에게 붙이기 애매하다고 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 역시 박영미에 대한 아쉬움과 맥을 같이 한다. 없는 것이 없다는 인터넷에서도 박영미의 앨범을 구하기란 정말 힘들다. 박영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을 네 장의 독집 앨범의 곡들은 이제 들어보기도 쉽지가 않다. 우리의 ‘디바’들은 이런 현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했을 것이다. 디바들의 생명을 지속시키기에 부족했던 것은 음악계의 시스템과 통로의 다양화와 더불어 자본을 끌어올 수 있는 대중의 관심이다.

박영미는 미국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에 비유되곤 했는데, 그것은 그의 보컬이 갖는 ‘감성’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의미에서다. 그는 단지 내보이기 위한 가창력이 아니라 영혼을 울리는 소리를 가진 가수다. 박영미는 상업성과 맞서서 끊임없이 여성 보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음악인으로서의 활동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엎치락 뒷치락하는 가요순위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것과 텔레비전에 얼굴도장을 찍는 것만이 가수로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아닐 것이다.

사실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디바는 많지 않다. 그렇지만 돌아보는 순간마다 그 자리를 지키던, 단연코 꼽을 수 있는 디바는 바로 박영미다. 가창력이란 재능은 어쩌면 흔해졌을 수 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그 능력을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는 그리 흔치 않다는 사실을 박영미의 음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cool 2004/04/08 [20:00] 수정 | 삭제
  • 노래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따라부르려고 해봤지만..

    "이젠 모두 잊고 싶어요"는

    정말 정말 부르기 힘들더군요.

    그래서 얼마나 잘부르는지를 오히려 더 잘알게 되었슴다...ㅎㅎㅎㅎㅎ




    정말 박영미씨 노래 좋아하긴 했는데..

    점차 잊혀지는것같아 아쉬울뿐이었는데.

    아직도 죽지않고(?)고 살아있다니..

    반가울뿐이군요.
  • 마임 2004/04/07 [23:52] 수정 | 삭제
  • 곡 제목은 모르겠는데요. Seven Daffodils를 번안해서 박영미가 부른 곡이 있어요. 저는 그 곡이 참 좋더라구요. 양희은씨가 번안해서 부른 곡이 왜 유명하잖아요. 그 느낌과는 많이 다른 곡이었어요.
    박영미의 보컬은 확실히 매력이 있어요. 이젠 모두 잊고 싶어요에서도 그렇고, 꿈에서라는 곡에서 고급스러운 보컬을 마음껏 뽐냈던 것 같아요. 저도 많이 따라불렀는데 가창력이 좋은 사람들이 많이 연습해야 제대로 부를 수 있는 곡이죠.
  • 숲사이 2004/04/06 [14:16] 수정 | 삭제
  • 저는 한국여성음악인 재조명이 너무나 재미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가수들만 소개해 줘서 그렇지요.
    박영미, 너무 좋아했어요.
    인기는 많이 없었지만. 진정한 디바는 자신의 영혼을 울리고 타인의 영혼을 울리는 사람이겠죠. 계속 이 코너 기대합니다.
  • 골뱅이 2004/04/05 [16:07] 수정 | 삭제
  • 이 노래는 제가 90년대 중반까지 제일 좋아했던 노래에요. 우리 학교에 노래 제일 잘 부르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이 노래를 시도하더라구요.
    진짜 맛을 살려서 부르려면 굉장히 어려운 노래죠.
    가사도 참 좋았구요. 다시 듣고 싶네요. 박영미를 처음 알게 해 준 노래인데.
    제가 아는 분이, 음악하는 분이데 그러더라구요. 뮤지션은 스텝을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구요. 이현정씨랑 같이 작업한 얘기 보니까 그 생각이 났어요.
    박영미 앨범은 전반적으로 곡이 좋아서 소장할 만 하죠.
    테잎만 있어서 2집같은 경우 다 늘어졌는데.. 다시 들어보고 싶네요.. 정말..
  • 2004/04/05 [14:23] 수정 | 삭제
  • 그녀를 좋아합니다.

    한때 내지르기만 하면 노래 잘 하는 가수라고 추켜줬던 적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타입으로 신효범이란 가수 별로 안 좋아했어요..)
    진정한 디바는 언제나 박영미였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독특한 창법이 있고 그걸 조절할 줄도 알고..
    그게 음악성이겠죠..

    그녀의 음반 많이 들었고, 참 많이 아낍니다.
    상두야 곡도 반가왔는데..
    앞으로도 새 곡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