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감성이 매력적인 만화

만화리뷰-릴리스의 <얌생이>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4/05/03 [04:32]

삐딱한 감성이 매력적인 만화

만화리뷰-릴리스의 <얌생이>

김윤은미 | 입력 : 2004/05/03 [04:32]
릴리스(lilith)의 <얌생이>는 ‘화장실에서 혼자 보는 만화’라는 캐치를 내걸었지만, 화장실 구석에 처박혀 있을 법한 얇은 종이에 막 찍어낸 싸구려 만화라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물론 ‘혼자 보는’ 만화라는 표현처럼 많은 사람들이 돌려볼 것 같지는 않다. 그 대신 세상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선호하는 소수의 독자들(특히 여성들)이 혼자서 피식 웃으면서 볼 것 같다.

흥미로운 캐릭터, 고도와 다마

처음 이 만화가 잡지 <윙크>에 펑크 원고 대용으로 간간히 연재되기 시작했을 때 준 느낌은 ‘신선하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잡지에 연재됐기 때문에 신선함이 더 컸을 것이다. <윙크>는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가 주 독자층이고, 특색 있는 만화들이 간간히 등장하지만 순정만화 잡지인지라 주류는 학원 로맨스물이고, 잡지 곳곳에서 사랑을 나누는 꽃미남 꽃미녀 여주인공들이 쏟아진다. 그런데 그 사이에 끼어있는 <얌생이>는 시니컬하기 짝이 없으며 엽기적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만화다.

이 만화는 3, 4컷의 짧은 만화로 무표정한 두 여자 캐릭터 고도와 다마가 나와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는다. 때문에 이 만화의 핵심은, 고도와 다마가 주고받는 몇 줄의 문장에 있다. 이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소위 상대방을 ‘갈구는’ 말을 한다. 그림마저 종이인형으로 오려도 될 만큼 선이 굵고 단정해서 캐릭터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대화는 굵고 못난이 동물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다마가 “사람들은 자신과 닮은 것을 좋아한다”는 이론을 언급하면, 고도가 “다행이다. 이 인형들 다 네 거잖아”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계단에 기름칠을 해놓고 사람들이 미끄러지는 것을 보며 “재미는 노력 없이 얻어지지 않는다”고 대답하는 고도나, 아기 돌보기 봉사활동을 하자는 고도의 제안에 대해 “난 널 돌보고 있으니 이미 의무를 다했다”고 말하는 다마는, 여느 순정만화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흥미로운 캐릭터들이다.

유머와 냉소의 미학

어떤 것이든 곱게 넘어가지 않고, 삐딱하게 나오는 감성은 이 만화책의 첫 장부터 시작된다. 첫 장에서 고도가 “얌생이가 무슨 뜻이야?”라고 묻자, 다마는 결코 곱게 대답하지 않고 “사전에서 찾아봐”라고 대답한다('얌생이’는 사투리로 ‘염소’라는 뜻이다). 양로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귀찮게 해서 수면제를 먹였다는 식의 삐딱한 대화는, 처음에는 ‘엽기다’라는 효과를 내지만, 계속 반복되는 패턴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슬슬 웃게 된다.

“넌 학교가 학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예산을 투자했다는 얘기,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 있니?”라는 다마와 “학교 담벼락이 무너져 내렸다는 얘긴 들어본 적 있어”라고 대답하는 고도의 모습은, 사회에 대한 냉소로서 지적인 코미디라는 냄새마저 풍긴다. 물론 이 같은 냉소적이고 삐딱한 감성은 순정만화에서는 낯설지만 다른 장르에서마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만화를 관통하는 삐딱이들의 감수성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며, 대답이 예상 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저기 고도 자리도 있어”라고 고도 얼굴의 별자리를 가리키는 다마에게, “이건 악몽이야”라고 대답하는 고도의 모습이 그러하다.

그러나 ‘아기 돌보기’를 “사랑과 정성 보단 해탈의 경지에 오른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고 정의하고, ‘애완동물’을 “가끔 가출을 하는 걸 보면 이들에게도 저항정신이 있다”고 설명하는 등 재치 있고 신선한 부분도 자주 눈에 띈다. ‘사랑의 반대말’에 대해 “사망”이라고 정의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안 좋게 헤어지면 그 인간을 영원히 보내버리고 싶기 때문”이라는 고도의 설명은 꽤 그럴싸하다.

최근 <윙크>에서 연재되는 <얌생이>에는 등장인물이 2명 더 늘었으며 4컷의 형식에서 벗어나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기대가 된다. <얌생이> 특유의 그럴싸한 유머와 냉소가 더 발전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삐딱한 감성은, 기존의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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