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속 그들의 사정

만화리뷰-Masami Tsuda의 <그 남자 그 여자!>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4/05/16 [21:34]

가면 속 그들의 사정

만화리뷰-Masami Tsuda의 <그 남자 그 여자!>

김윤은미 | 입력 : 2004/05/16 [21:34]
<이 기사는 ‘쥬이쌍스 3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그 남자 그 여자!>는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주인공들이 서서히 자연스러운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전형적인 성장만화이자 두 주인공 아리마와 유키노의 로맨스를 다룬 순정만화다. 아리마와 유키노는 북영고교의 빼어난 인물. 둘 다 공부를 잘하고, 외모가 출중하며 성격도 좋다. 그러나 이것은 가면일 뿐이다.

상처가 다른 두 사람의 변화

유키노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칭찬이 가져다 주는 쾌감을 지나치게 학습했기 때문에 허영덩어리로 자라난다. 그녀는 밖에서는 청순한 미소녀로 행동하지만, 집에서는 머리를 질끈 묶고 라이벌 의식에 불타 공부하는 체육복 차림의 욕심쟁이라는 본 모습을 드러낸다. 자기밖에 모르던 유키노는 자신과 비슷한 가면을 쓰고 있는 아리마를 만나면서 가면을 벗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자신이 왜 가면을 쓰게 되었는지 과거를 기억해 내고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관계 맺는 법을 배운다. 사실 그녀는 밝고 성숙한 가족들 속에서 성장했기에 상처를 치유할 과거도 없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과 같아질 수 있다. 그녀는 이제 행복하다.

그러나 아리마는 다르다. 유키노가 점점 망가지는 것과는 달리 아리마는 여전히 심각하고, 성실한 미소년이다. 유키노가 가면을 벗고 진심으로 친구들을 사귀게 되는 것과 동시에 아리마의 어두운 얼굴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한다. 거울 속의 검은 아리마는 아리마를 바라보며 “불쌍하게도 행복해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라고 중얼거린다. 검은 아리마는 아리마의 본 모습이다. 아리마의 본 모습이 유키노와 판이한 이유는 가면을 쓰게 된 원인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아리마의 과거는 자신을 버리고 폭행한 부모님에 대한 애증, 자신을 괴롭힌 친척들에 대한 증오심, 부모님에게 버림받은 후 입양된 집에서 착한 아이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과 연결되어 있다. 상처를 보듬어 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손쉬운 방법은 망각과 무감각이다. 아리마는 가면을 써 버림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잊고, 감각을 죽인 채 행복하게 살지만 “마치 녹지 않는 얼음처럼 내 속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 “실은 언제나 혼자” 라고 중얼거린다.

그는 유키노와 함께 착한 아이라는 겉모습을 버리겠다고 다짐하지만 그 결과는 검은 아리마의 폭주였다. 왜냐하면 아리마에게 상처로 남은 역사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친척들은 여전히 아리마를 미워하고, 그를 버린 부모들은 얼굴을 내밀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리마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드디어 증오심을 드러내고, 서서히 악마로 변해간다.

순정만화 속의 남과 여

어쩌면 <그 남자 그 여자!>는 아리마와 유키노가 본 모습을 찾은 후 깔끔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는 만화다. 유키노와 아리마의 본 모습이 다르다는 암시가 거울 속의 검은 아리마를 통해 가끔 제시될 뿐, 12권까지 아리마의 어두운 모습과 그의 과거는 그 전모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 대신 유키노의 이야기, 그리고 8권 이후에는 유키노가 새로 사귄 친구들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그런데 유키노 친구들의 에피소드가 지나치게 길어서, 명랑한 분위기로 만화가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13권부터 다시 아리마의 이야기로 돌아오다니, 확실히 스케일이 커지면서 <그 남자 그 여자!>는 균형을 잃어버린 것 같다. 소년소녀의 성장이야기에서, 소녀들의 유쾌한 이야기, 그리고 소년의 복수와 상처치유라니, 지나치게 갈지자 걸음이 아닌가.

13권부터 계속해서 아리마의 폭주와 그의 과거가 집중적으로 밝혀지고, 아리마는 냉담함을 드러내며, 유키노는 점점 걱정에 빠져든다. 하지만 악마가 되어가는 아리마를 다시 보듬어 안는 것은 결국 유키노이다. 어린 시절 자신을 폭행한 어머니에 대한 애증 어린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두려움에 떠는 아리마를 유키노는 상냥하게 안아주고 괜찮다고 말해준다.

<그 남자 그 여자!>의 결말은 이제 예상 가능하다. 아리마 역시 자신의 상처 입은, 어린 본 모습을 인정하고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왜 본 모습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걸까? 아무래도 순정만화의 공식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보통 순정만화의 여주인공은 유키노처럼 귀엽고 순진하며, 저돌적이긴 하지만 심각해질 만큼 생각이 깊지는 않다. 한편 ‘냉미남’으로 불리는, 검은 머리를 지닌 남자 주인공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나중에는 부모님으로부터의 버림이나 실연, 애인의 죽음 같은 상처임이 밝혀진다)어떤 상처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이 아픈 듯하고, 그래서 여주인공은 그를 보듬어주고 싶어한다.

현실 속의 아리마와 유키노는?

<그 남자 그 여자!>는 아리마의 상처를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며, 때문에 전형적인 순정만화의 구도에서 벗어나는 측면이 있다. 물론 아리마의 어머니를 비롯한 아리마의 상황은 작위적이고 과장된 설정이라는 인상을 주며, 때문에 <그 남자 그 여자!>가 초반과는 달리 전형적인 구도에서 벗어난 것이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는 갈지자 걸음의 지나치게 균형을 잃어버린 이 만화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어설픈 느낌에도 불구하고 아리마가 느끼는 외로움과, 건강한 심성의 유키노에게 느끼는 소외감이나 질투심에 대해 꽤 공감이 간다. 그러나 아리마가 유키노를 바라보는 그 시선은 자꾸 상처를 가진 나이 든 남성이 어린 여성을 내려다보는 구도를 연상시켜서 거슬리기도 한다. 아리마는 유키노에게 한없이 친절했다. 심지어 거짓말까지 하면서 유키노에게 어울리는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했다. “너와 있을 때가 진짜 내 모습이야”라는 아리마의 대사는, 그의 진심 때문에 슬프기도 하고, 그 기만성 때문에 밉기도 하다.

만일 유키노가 아리마의 속사정을 알았을 때, 그를 보듬어 안기보다는 그의 기만성에 화를 내고 떠났다면 어땠을까. 만화 속 유키노는 그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지만 그래서 아리마는 변했지만, 현실이라면 그렇게 쉽게 변하지 못할 것이다.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 현실 속의 아리마는 유키노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진심을 드러내기 보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유키노를 내려다볼 것이고, 유키노는 웃다가도 그런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볼 것이다. 그래서 <그 남자 그 여자!>를 읽으면 만화 속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의 그 남자, 그 여자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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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티헌터 2009/05/01 [10:57] 수정 | 삭제
  • 애니메이션은 가이낚시라고 불렸던 작품 ㅎㅎㅎㅎㅎㅎㅎ
  • 독자였던 2004/05/19 [10:39] 수정 | 삭제
  • 그 남자 그 여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가면을 들추어낸 이 만화.. 그래서 다들 어느 정도씩 공감하고 그래서 재밌게 봤던 것 같아요. 그 여자의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아찔했었습니다. 둘다 마찬가지로 위선덩어리였지만요. 그래도 사랑스럽다니, 다행이죠. ^^ 음. 정말 재밌었는데.. 그러나 처음 몇 권이 제일 재밌었고 나중엔 갈수록 집중도가 떨어지더군요. 너무 많은 걸 담아내려고 하다보니 그랬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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