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조차 잘 곳이 없다

노숙과 여성, 다중 배제의 구조

김홍수영 | 기사입력 2004/05/24 [01:32]

거리에서조차 잘 곳이 없다

노숙과 여성, 다중 배제의 구조

김홍수영 | 입력 : 2004/05/24 [01:32]
노숙의 공간, 여성에겐 전쟁터

공간을 소비할만한 경제력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공간 밖으로 밀려나는 과정을 경험해왔다. 1960년대 도심 내 하천 변에 즐비했던 판자촌은 1970년대 자본의 개발압력에 부응한 정부의 ‘정착지이주조성사업’을 통해 사당, 봉천, 상계, 신림과 같은 도심 외곽으로 밀려났다. 이후에도 공간의 상품화는 꾸준히 진행되어 19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도시 곳곳에서 이른바 ‘재개발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현재 주거 빈민의 터전은 도심 구석구석의 비닐하우스 촌으로 밀려나거나, 최저의 공간 상품인 지하셋방, 옥탑방 그리고 쪽방으로 분산되고 있다. 그러나 최하의 주거도 임대할만한 여력이 없고, 더부살이가 가능한 사회적 관계망마저 취약한 사람들은 도시의 사적 공간에 ‘정착’하지 못하고, 역이나 공원과 같은 공적 공간 사이를 ‘부유’할 수밖에 없다. 각 지역의 역(驛)내와 공원에서 마주치는 노숙인들은 바로 이러한 한계상황에 몰린 사람들이다.

그러나 어떤 노숙인들에게 있어서 노숙의 공간은 또 다른 종류의 위험이자 전쟁터다. 바로, 노숙인 여성들에게 그러하다. 여성이기 때문에 거리 곳곳에 산재한 물리적, 심리적 폭력과 성폭력의 표적이 되고 있는 까닭이다. 노숙인 여성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숙인 남성처럼 자신을 비교적 쉽게 노출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거리에서 간혹 만나게 되는 노숙인 여성들은 문자 그대로 ‘최극한’에 놓여있어서 더 이상 지킬 것도 없고, 지킬 수도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이하, 노다지)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4년 현재 파악 가능한 전체 노숙인(쉼터노숙과 거리노숙) 약 2천860명 중 여성은 170명(5.9%)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이 불균등한 결과가 나오게 된 연유는 노숙인 여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보이지 않기 때문’으로 해석해야 옳다.

여성이 노숙에 이르는 복잡하고 다양한 경로

노숙인은 지속적으로 거주할 주거가 없는 ‘쉼터노숙인’과 ‘거리노숙인’을 통칭하는 말이다. 여성들은 경제적 빈곤, 심각한 가정폭력과 정신장애 때문에 기존 주거나 시설에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도 ‘웬만하면’ 거리노숙은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견디고 또 견딘다. 여성에게는 거리노숙 이후에 겪게 될 심리적, 신체적 위협이 현재의 고난보다 더 고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척이나 친구네에서 더부살이를 하거나, 이도 마땅치 않으면 가정폭력 및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여성의쉼터 입소를 택한다. 그러나 여성의쉼터는 이혼절차를 밟거나 구직을 위한 일시 보호시설인데다, 입소절차가 다소 까다로운 편이다. 무엇보다 그 절대수가 수요에 비해 충분치 않다. 따라서 쉼터여성들은 일정기간 이후 또 다시 생활공간이 불안한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노숙인 여성을 위한 쉼터에는 ‘1366’이나 여성의쉼터를 거쳐 입소한 가정폭력 피해자 여성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2004년 현재, 전국 노숙인 쉼터 123개소(서울 56개소) 중 노숙인 여성이 입소 가능한 쉼터는 화엄동산, 본동복지관, 새날여성쉼터 3개소다. 단신노숙이 아니라 아동과 가족을 동반할 경우, 모자쉼터 내일의집 1개소와 가족쉼터 5개소에도 입소가 가능하다. 열린여성센터는 단신여성과 모자가정을 위한 쉼터로, 2004년 6월 11일 ‘공식’ 개소식을 앞두고 있다.

반면, 쉼터 정보를 접하지 못했거나 쉼터 규율을 꺼리는 노숙인 여성들은 난장을 치기(거리노숙)보다는 찜질방, 만화방, 고시원, 쪽방 등 임시 거주공간이나 숙식을 제공하는 식당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 노숙인 여성 집계에도 잡히지 않아 그 수를 추정할 수 없다. 철저하게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 여성들이다. 이들은 어떠한 사회적 지원도 없이 수입의 60-70%에 육박하는 숙박비 마련을 위해 하루 종일 육체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결국 이렇게 단계적으로 걸러져, 우리가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노숙인 여성들은 대부분 임노동이 불가능하거나, 사회적 관계망이 부재한 중장년층, 정신장애, 지체장애 여성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노숙인 쉼터나 여성보호센터 같은 기존의 부랑인 시설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장애로 인해 공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진 퇴소를 하거나 쉼터에서 이들을 감당하지 못해 강제퇴거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

노숙인 단체들에서는 저녁마다 현장상담(아웃리치)을 통해 노숙인 여성을 쉼터로 인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특수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거리의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이 부족해 중장기적인 보호는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열린여성센터 공식 개소 앞두기까지

노숙인 여성쉼터 중에 특히 열린여성센터는 난장을 치고 있는 정신장애 여성들을 향해 거의 유일하게 ‘열려 있는’ 공간이다. 열린여성센터는 2003년 3월 1일 노다지에서 개원한 여성전용 드롭인센터(drop-in center) 열린집을 그 전신으로 한다. ‘드롭인센터’란, 노숙인의 생활을 존중하면서 노숙현장 가까운 곳에서 취침, 간단한 식사, 세탁, 목욕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운영 ‘이용시설’을 말한다.

이들은 기존 노숙인 복지 시스템이 통제가 불가피한 ‘수용시설’인 쉼터 일색으로 운영되는 데 문제를 제기하면서 등장했다. 2004년 현재까지 열린여성센터(서울역)와 노숙인 남성 드롭인센터인 구세군드롭인센터(서울역), 햇살보금자리(영등포역), 옹달샘드롭인센터(영등포역)를 포함해 총 4곳이 운영되고 있다.

열린여성센터는 여전히 과거 열린집처럼 드롭인센터로 기능을 담당하고 있긴 하지만, 4월 1일부터 정부인가 쉼터로 그 기능을 전환했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뼈아픈 사연이 있다. 2003년 연말, 열린집이 심각한 재정적자로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열린집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재원을 제공하는 공모사업에 재정지원을 신청했다. 그러나 ‘노숙인’ ‘여성’ 쉼터라는 애매한 존재위치 때문에 지원순위에서 밀려났다.

다행히 이후 여성쉼터 운영을 위해 신청한 사단법인 노숙인복지회가 정부인가를 받아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게 됐다. 열린집을 ‘사수’하려고 5년 동안 근무한 노다지에 사표를 낸 열린여성센터 서정화 소장은, “이번 공모사업으로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여성의집이 많이 설립된 것은 진실로 반길 일이지만, 한편으로 노숙인 여성에 대한 여성 진영의 무관심을 실감할 수 있어서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라고 당시를 술회했다.

2004년 4월 1일부터 실질적으로 문을 연 열린여성센터는 단신여성만이 아니라 모자가정과 정신장애여성 모두에게 그 문턱을 최대한 낮추고 있다. 노숙인 여성의 사각지대를 축소시키기 위해, 쉼터와 드롭인센터 기능을 혼용하고 입소자격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특히 노숙인 복지 영역에서 3중의 배제를 당하고 있는 ‘정신장애 노숙인 여성’이 설 수 있는 자리는 거의 없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공간 확보는 열린여성센터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다.

현재 열린여성센터에는 18명의 단신여성과 모자가정 1가정이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이중 70%가 우울증에서부터 정신분열, 망상에 이르는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다. 실무자들은 초기에 정신장애 여성들이 약을 먹으려 하지 않아서 무척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나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여성들도 고혈압 등 지병이 있어서, 결국 쉼터 식구 전체가 서로에게 낙인을 찍는 일 없이 자연스럽게 약을 찾아먹게 됐다.

서정화 소장은, “눈에 보이는 상처는 없지만 노숙인 쉼터에서 생활하는 가정폭력 피해자 여성에게도 상담과 치유의 과정은 절실하다”며, “노숙인 여성복지와 정신보건시스템과 지속적인 연계체계가 확충되어야 하고, 특히 노숙인 남성 위주로 구축되어 있는 현 노숙인 의료보호체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운동 진영의 적극적 관심과 연대 필요

노숙인 여성 쉼터의 복지 서비스는 사회적 관심의 부족으로 인해 여성복지 분야 중에 가장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낮 시간대에 식구들과 퀼트나 수지침 등 취미생활을 함께 할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고, 이미용 서비스를 해줄 자원 활동가들이 있었으면 좋겠고, 여성잡지나 책들도 있었으면 좋겠고. 식구들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부업거리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고….”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서정화 소장은 이와 같은 ‘작은 소망’들을 꼽았다.

노숙인 여성 쉼터는 여타 여성쉼터에 비해 경제적 후원이나 자원활동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노숙인 여성 문제에 있어서 시급한 과제는,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실존하고 있는 쉼터와 거리 노숙인 여성들의 다양한 생활실태를 면밀히 조사하고 자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계계층 여성에 대한 다각적인 이해와 고민, 나아가 여성운동 진영의 적극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열린여성센터: (02) 704-5395

  • 도배방지 이미지

  • Ghana 2004/05/26 [16:13] 수정 | 삭제
  • 저도 한 번 거리에서 쓰러져있는 여성노숙인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여성노숙인을 위한 쉼터가 생긴다니 반갑지만, 지역별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여성이 노숙에 이르는 경로가 복잡하고, 남성과 또 다르다고 하셨는데 짐작이 가기도 하고, 더 알고 싶기도 합니다. 거리에서조차 잘 곳이 없다니, 너무 비극적인 일입니다.
  • 철학가 2004/05/25 [15:48] 수정 | 삭제
  • 심각하다 못해 너무나 위험속에 방치된 여성 노숙자의 심각성을 제시한 기사 맘에 듭니다...다른 어떤 쓰잘데기 없는 정치적인 여성정책보다 인도적인 여성정책이 최우선시 되어야할 문제인거 같군요..더군다나 남자 노숙자같은경우 하다못해 인력시장으로 노가다를 해서 수입이 있을수가 있지만(물론 수입이 없는 노숙자가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여성 노숙자경우 거의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수입원이 전무후무한 상태인거 같습니다.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수 있는 방안이 검토되었으면 좋겠군요..그렇다고 꼭 여성만이 아닌~~~노숙자란 포괄적인 접근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rainy 2004/05/25 [15:02] 수정 | 삭제
  • 역시 일다에서 기사를 볼 수 있게 되네요. 정말 잘 읽었어요.
    노숙자들 많이 늘면서 역마다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이죠. 여성노숙자들도 꽤 있다는데 그 분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걸까, 저렇게 남자들만 있는데서 살 수 있을까 정말 걱정이 많이 되었었거든요.
    그리고 정신지체로 보이는 여성들만 거리에서 한두 번 보게되고, 그 여성들이 너무 무방비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어요.. 내가 도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생각에 무력해지기도 했구요.
    기사로나마 상황을 좀 알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반갑구요. 쉼터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네요.. 사람들에게 홍보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 2004/05/24 [09:26] 수정 | 삭제
  • 헤드라인 보고 기분이 좋아 덧글 먼저 답니다.

    예전에 학부에서 노숙자 관련 세미나를 했는데
    누군가 노숙자는 왜 남자가 대부분인가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열심히 짱구를 굴렸지만
    알 수가 없었거든요.
  • 현현 2004/05/24 [07:21] 수정 | 삭제
  •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후속기사가 나오길 기다리겠습니다
  • 딜레마 2004/05/24 [05:13] 수정 | 삭제
  • 풀기 힘든 문제인것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풀수 없는 문제는 절대 아니죠.
    여성 그 자체가 가지는 사회적인 약점을 국가는 보호해주어야할 마땅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더이상 뺏어갈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남성에게 없는 또하나의 재산을 갖고 있다는 것이죠...
    그게 바로 여성입니다.
  • 딱정 2004/05/24 [04:19] 수정 | 삭제
  • 기사 정말 정말 잘 봤네요..
    막다른 한계 상황도 남녀가 다르다는 걸 생각하게 해주는 기사였습니다. 거리에서조차 잘 곳이 없다는 말이 가슴 미어지게 만드는 군요.
    여성노숙자들을 거두어들이는 손길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