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스포츠는 무엇인가? 호신도 예쁘게 해보려는 여성들, 100m 경주를 할 때에도 빠르게 뛰는 것보다 예쁘게 뛰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여성들. 이러한 여성들에게 스포츠는 “자유로움과 모험, 그리고 즐거움을 찾는 활동”이 아니다. 이들에게 스포츠는 “자신감과 자기확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다. 반대로 ‘여성스러움’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활동’일 뿐이다.
지금까지 스포츠가 남성들의 경험과 사고 속에서 정의되고, 종목이 개발되고, 규칙이 정해지고 한 결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스포츠에 대한 편견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은 바로 근대 스포츠를 올림픽을 통해 부활시킨 쿠베르텡에 의해서다. 조성식 박사는 발표문에서 올림픽 창시자인 쿠베르텡(Baron Pierre de Couberting)은 ‘올림픽 회고록’에서 “소위 문명화된 인간들이 고대 올림피아 광장에서 벌거벗고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을 올림픽으로부터 몰아내야 한다”(1896년)고 하였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제2회 올림픽 이후 쿠베르텡은 더 노골적으로 반 여성적인 태도를 표명하였는데, 1908년 여자 스케이팅을 보고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장 추한 광경”이라고 하였고, 1912년에는 “올림픽 경기는 남성을 위한 것이라야 한다”고 하였고, 1924년 올림픽 대회부터는 여성을 올림픽으로부터 영원히 추방하도록 IOC에 제안하였다. 이러한 여성 스포츠에 대한 편견은 ‘올림픽 정신’과 함께 수십년 동안 그대로 이어져 내려와, 1952년부터 1972년까지 20년동안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애버리 브런디지(Averry Brundage)는 “여자들은 수영, 테니스, 피겨스케이팅, 펜싱 등 여성에게 어울리는 운동만 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조미혜 교수는 전한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2003년 우리나라의 엘리트 체육계의 남자 선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수십 년 전의 이러한 편견이 그대로 우리 주변에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인숙 전 이화여대 교수는 ‘여성 스포츠와 페미니즘의 의미 있는 평등 실현과 참다운 스포츠 본질을 위하여’라는 논문의 말미에 우리나라의 남자 선수들이 실제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저는 여자가 운동을 했을 때 격한 운동보다는 조금 섬세한 운동을 했으면 합니다. 여자는 여자답게 운동해야 한다고 봅니다” (펜싱선수) “성차별이란게 없어져야 하겠지만 스포츠에서는 성차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와 근육 자체도 다르고 남자보다 대부분 몸이 약한데 격한 스포츠를 한다는 것은 내가 볼 때 한편으로는 존경하고 한편으로는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투기종목(복싱, 레슬링, 태권도, 유도) 같은 경우 솔직하게 말해서 시집이나 갈 수 있을까? 몸을 많이 부딪히다 보니 상처도 많을 것이고 외모도 영향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근대 5종 선수) “여자들이 복싱을 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과격하고 힘든 운동이라서 여자들이 감당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복싱은 맞고 때리는 운동인데 청순하고 순수한 여자들이 서로 주먹으로 때리면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그 여자의 이미지를 나쁘게 볼 것 같습니다”(복싱 선수) “난 여성이 스포츠를 하는 것은 적극 찬성한다. 여성이 스포츠를 함으로써 아름다운 몸매를 만들고 가꿀 수 있다”(수영 선수) 이러한 스포츠에 대한 가부장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스포츠가 여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수단으로 존재하기는 어렵다고 김경숙 교수(이화여대 체육학)는 경고한다.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운동을 하는 것이 여성성이나 여성다움을 상실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바꾸는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스포츠가 여성의 전통적 성 역할이나 성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는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스포츠는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에 도전하고 잠재적인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모험과 즐거움 그리고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권리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기본권으로서의 스포츠를 이해할 때 스포츠는 더 이상 남성들의 전유물도 아니고 재능을 타고난 ‘선수’들이나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스포츠를! “모든 개인은 스포츠를 할 권리를 가진다” 1975년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스포츠 각료회의에서 채택한 “Sports for All" 헌장 제1조의 내용이다. 스포츠를 누구나가 누릴 기본적 권리로 인정한 것이다. 이 헌장을 통해 스포츠는 ”여가로 누릴 자유롭고 자발적인 신체적 활동“으로 규정하고, 각 나라의 공공 기관은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지원하여야 한다고 국가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서의 스포츠권은 1978년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체육 및 스포츠에 관한 국제 헌장”에서 더 구체화되었다. “모든 사람은 그의 인격의 충분한 발달을 위하여 불가결한 체육, 스포츠의 기회에 대한 기본적 권리를 가진다. 체육, 스포츠를 통하여 신체적, 지적, 도덕적 능력을 신장시킬 자유는 교육제도 및 사회생활의 다른 측면에 있어서도 보장되어야 한다”라고 이 헌장은 시작한다. 여기서 스포츠는 “인간의 신체 활동 그 자체로서 자아 실현과 인간의 복지를 위한 포괄적인 인권”이다 (최환용, “기본권으로서의 스포츠권에 관한 소고” 한국여성체육학회지, 13권 2호, 1999, 279) “모든 사람에게 스포츠를!”의 철학을 가장 잘 구체화시켜 나온 곳은 북유럽이다. 북유럽에서는 스포츠를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누려야 할 권리로서, 국가가 보장해야 할 복지 서비스의 한 영역으로 보고 있다. 노르웨이가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노르웨이는 스포츠가 국민복지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 노르웨이의 국민체육 정책은 자생적인 스포츠 모임을 정부가 지원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노르웨이 전체인구 가운데 약 1/3인 170여만 명이 학교, 직장, 지역사회 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스포츠 모임에 회원으로 가입되어 활동하고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스포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노르웨이에서 스포츠에 대한 일차적 가치는 경쟁이 아니다. 일상 생활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스포츠의 목적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공동체적 유대감을 가지는 것,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학습함으로써 사회적 정의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데에 있다.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기본권으로서 스포츠를 보는 노르웨이에서는 스포츠 참가자의 능력에 따라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분리하여 장애인만으로 구성된 스포츠 조직과 활동을 지양하고 비장애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생활체육 정책의 주요한 과제 중의 하나로 삼고 있다(임번장, “스칸디나비아 국민체육” 한국스포츠사회학회보 제9호. 1996). 노르웨이의 국민체육의 특징은 국민의 체육활동이 일상 생활의 한 부분으로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 체육이 이러한 생활 체육의 기반에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기업의 프로팀과 국가 대표팀 등 엘리트 스포츠에 집중해 있는 우리나라의 체육 정책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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