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성매매

클럽 밖에서도 이용당하는 여성의 성

지금, 기지촌은 어디로 가고 있나-끝

한영희

| 기사입력 2004/09/27 [00:49]

사회 >성매매

클럽 밖에서도 이용당하는 여성의 성

지금, 기지촌은 어디로 가고 있나-끝

한영희

| 입력 : 2004/09/27 [00:49]

<일다는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www.pinks.or.kr)와 공동기획으로 ‘지금, 기지촌은 어디로 가고 있나’ 기사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필자 한영희님은 '연분홍치마' 활동가이며, 기지촌의 성산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편집자 주>

“나는 러시아에서 결혼을 했고 남편과 함께 지냈어. 그런데 결혼하고 5년 동안 생기지 않던 아이가 생겼는데 임신이 잘못돼서 아이는 유산이 됐고 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거야.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해야 한다는데 돈이 엄청나게 든다고 했어. 돈을 벌려고 여러 나라를 떠돌았어. 그랬는데 남편은 나를 속이고 다른 여자를 만났고 결국 이혼을 했지. 난 아이 때문에 돈을 벌러 다녔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한국에 와있나 싶어. 지금은 그냥 돈을 많이 벌 거야.”

한 러시아 여성의 이야기다.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도 평범한 생활에서 시작했다. 그녀는 너무 절실히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대부분 기지촌에 거주하는 이주여성들은 돈이 필요해서 한국에 왔다. 가난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을 하고, 동거하던 남자친구와 헤어져 남겨진 자녀를 가르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그들의 평범한 삶은 한국에 와서 달라졌다. 매일같이 늦게 일어나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일상으로 바뀌었다. 오후 늦게 일어나 방을 치우고 음식을 해먹으며 시간을 보낸 뒤, 화려한 불빛의 클럽으로 출근을 한다. 손님을 맞고 주스를 팔고 2차를 나가면서 이루어지는 생활은 새벽까지 계속된다. 그녀들의 단조로운 일상은 고요한 낮 시간의 기지촌과 시끄러운 음악이 쟁쟁거리는 밤시간의 기지촌을 가로지르며 이어진다.

“나는 바보같은 주스걸”

돈이 필요해서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은 맨 처음 자신의 일이 섹시댄스와 주스판매라는 것에 당황해 한다. 군산에서 만난 필리핀 여성은 한국에 온 첫날 비키니 차림으로 무대와 손님들 옆에서 춤을 춰야 한다는 사실에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거부할 수는 없었다.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일을 해야 했고 춤을 추거나 주스를 팔아야 자신의 수입을 챙길 수가 있었다.

여성들은 주스판매에 어느 정도의 적응과정을 거쳐 익숙해지면 적극적인 판매전략을 갖기도 한다. “처음에 손님이 들어오면, 그 손님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해야 해. 만약에 손님이 놀기 좋아하고 신이나 있으면 나도 그에 맞추어 소리도 지르고 적극적으로 놀아야 해. 만약에 손님이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면 그 손님의 얘기를 듣고 호응해야 하고, 만약에 손님이 대화상대를 원하면 그에 맞춰서 손님이 원하는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해. 사람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조금 이야기를 해보면 이 사람이 다시 나를 찾아올 사람인지 아닌지를 잘 알 수 있어.”

한 이주여성은 손님이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알아채고 손님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만 주스를 많이 팔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손님이 단골손님이 될 수 있을지 없을 지도 안다고 했다.

여성들은 자신의 일에 있어서 철저했다. 철저히 고객임을 파악하고 고객으로 대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클럽 주스걸이 쉬운 일인 줄 알아. 그런데 그렇지 않아. 20살짜리 어린 미군 애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얼마나 짜증스러운 지 알아?” 이주여성들은 자신들의 클럽에서의 일을 직업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주스를 파는 것이 쉽지 않는 감정노동이라고 강조했다. 이주여성들이 표현하는 직업으로서의 ‘주스걸’은 명확하게 자신을 다른 성매매 여성과 구분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성매매 여성’과 ‘주스걸’이 어떻게 다른지 물어보았다. “성매매 여성은 자신의 몸을 팔지. 자신의 몸을 전시하고 몸으로 표현하고 몸으로 장사를 해. 그러나 우리는 달라. 우리는 머리와 입으로 장사를 해.” 한 이주여성은 미군손님에게 자신의 몸을 전시하고 몸에 대한 값을 지불 받는 것이 아니라, 주스를 통해서 자신의 언변과 재미를 판매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엔터테이너’로서의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직업을 ‘엔터테이너’로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이주여성들은 ‘주스걸’로 불리는 것을 무척 꺼려했다. “얼마나 바보 같아. 주스는 정말 멍청한 짓이야. 미군에게 가서 주스 사달라고 말하는 게 너무 창피해.” 이주여성들은 매번 미군들에게 주스를 사달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수치심을 느끼기도 했다. 주스판매 과정에서 다양한 성적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주스판매에 나서는 것이 여성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만나본 많은 여성들은 스스로를 ‘성매매 되는 여성’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특히 주스판매를 직업으로 받아들이는 여성들의 경우, 여성들은 자신을 ‘엔터테이너’로 인식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무리 포장하려 해도 클럽에서의 여성들의 위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한국에서의 생활을 보장 받기 위해서 주스를 팔고 2차를 나가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주여성들의 클럽생활에서 ‘자발적’이라 말할 수 있는 선택이나 대안은 거의 없다.

연애인가, 성매매인가

우리가 만난 이주여성들 중엔 클럽에서 생활하는 동안 5명의 미군으로부터 청혼을 받았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그 중 한 미군과 결혼을 했지만 그 미군은 결혼을 한 다음날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왜 그 남자와 결혼을 했냐고 물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그때 남편은 내게 잘해줬어. 항상 잘해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잘해줬어. 남편은 내가 결혼을 안 해주면 자살하겠다고 하고 막 울고 그랬어.” 답답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얘기는 아니었다. 어려운 클럽생활 속에서 나에게 잘해주고 내 말을 들어주는 미군을 믿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에게 버려졌다.

기지촌 성매매의 특이할 만한 점은 이주여성들의 클럽생활에 연애와 사랑이 개입된다는 점이다. 20대 초반의 미혼남성이 다수인 미군은 자신들의 생활에서 안정적인 파트너를 원하게 되고, 그것은 자주 가는 클럽의 이주여성에 대한 구애로 이어진다. 기지촌에서는 청혼을 하거나 구애를 하기 위해 반지를 구입하는 미군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예 미군들의 월급날이 되면 반지를 전문적으로 파는 보따리상이 클럽이나 상가 앞을 전전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여 커플들이 청혼을 하고 구애를 하는 공간이 클럽이다.

따라서 이주여성들은 비교적 쉽게 남자친구와의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여성들의 입장에선 오히려 클럽에서 여러 명 손님을 상대하기보다는 안정적으로 남자친구가 자신의 주스와 2차비용을 계산해주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연애관계는 이주여성 스스로 자신의 클럽에서의 일을 ‘성매매’가 아닌 ‘사적인 관계 맺기’로 변화시키는 주문인 셈이다. 그래서 이주여성들은 이 연애관계에 더욱 매달린다. 미군을 자신을 돌봐주는 유일한 지지자로 생각하고, 어쩌면 그런 지지자인 미군과 결혼을 하여 생활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꿈꾸기 때문이다.

업주와 매니저의 관계 속에서 불안정한 한국생활을 기대하기보다는 차라리 남자친구와 결혼을 해 안정적인 체류자격과 지지 망을 선택하고자 함이지만, 이것은 여성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미군 남자친구들은 대체로 1년간의 한국 체류기간 동안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파트너만을 바랄 뿐이며, 이주여성과 결혼을 생각한다고 해도 배우자 연금을 추가로 지급 받기 위한 것이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예외’이며, 전적으로 운에 맡겨진 것이다.

클럽생활에서 동거/결혼생활로 변하는 계기는 이주여성들의 연애다. 연애의 시작은 바로 여성들의 일과 사랑, 그리고 결혼이 구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일에 철저하던 여성도 연애에선 달라진다. 그러나 이주여성들이 연애에 매달리는 것만큼 그 연애가 이주여성들에게 보상해주는 것은 거의 없다. 기지촌에는 미군 남자친구나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이주여성들이 많이 있다.

떠난다는 말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버린 남편을 뒤로하고, 여성들은 한국에 남아있다. 함께 생활하고 수많은 사랑고백을 주고받았다고 해도 여전히 바뀌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 여성들의 현실의 문제는 여전하다. 자신의 지지자라 생각했던 미군들 역시 이주여성들을 단지 필요에 따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주스걸’ 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주여성들의 몸과 시간은 클럽뿐 아니라 클럽 밖에서도 여전히 남성들의 필요와 이해에 따라 이용당하고 있다.

여성의 몸 위에 선 기지촌

주스판매는 기지촌 성매매를 마치 성매매가 아닌 듯 보이게 하지만 실제 여성의 시간을 통해 여성의 몸에 대한 점유권을 판매하는 성매매의 한 유형일 뿐이다. ‘단지 여성이 손님에게 다가가 주스를 사달라고 했고 주스를 사주는 것뿐인데, 그것이 어떻게 성매매인가?’라고 반문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주스판매는 기지촌의 성매매 시스템의 일부다.

업주들은 주스판매의 실적으로 이주여성을 평가하며 2차를 내보내는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손님들은 주스를 사며 클럽여성들과 대화를 하면서 2차를 나가게 하기 위한 미끼를 던진다. 반면 이주여성들은 주스를 마시는 동안 최대한 2차를 나가지 않으려고 정중하게 거절하려는 눈치를 업주 몰래 손님에게 보낸다. 주스를 사고 주스를 마시는 동안에는 여성들과 업주와 손님과의 미묘한 긴장감이 흐를 수밖에 없다. 이주여성들은 손님과 업주 사이에서 2차를 두고 줄다리기를 한다. 주스를 통한 이러한 시소 게임은 이주여성들의 클럽생활에서 매일같이 벌어진다.

연애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성관계도 성매매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주여성의 연애는 결코 관계를 시작하거나 끝내는데 여성에게 선택권이 없다. 관계의 시작도 끝도 미군에 의해 주도된다. 이러한 관계도 연애고 로맨스일까? 여성들은 미군의 성적 욕구와 이해관계에 맞추어져 이용된다. 미군들은 여성과의 연애를 위해 지속적인 주스판매와 2차매매와 같은 지불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심지어는 업주와 매니저로부터 여성의 계약을 사기도 한다. 한국 체류기간 동안 사용할 여성을 얻는 과정이다.

불균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여성을 매매하여 이윤을 얻을 수 있게 조직화된 시스템이 성 산업이다. 클럽과 주스는 그 일부다. 기지촌이란 공간은 미군을 위한 여가와 유흥을 위해 한국정부의 배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 공간에서 여성은 구매자의 목적에 맞추어 계속해서 누군가에 의해 점유되고 사용된다. 클럽 안에서의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를 막는다 해서 이주여성들의 성적유린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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