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로 제17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끝났다. 여야가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규명, 사립학교법 개정, 언론개혁법 등 이른바 ‘4대 개혁법안’을 둘러싸고 공방을 계속하며 진행된 이번 국정감사에서 과거사 청산 문제 역시 ‘색깔 논쟁’으로 불거졌다. 특정 의원의 족보가 거론되는 등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정치적 공방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과거를 덮어두려는 권력층의 움직임도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진정한 과거사 청산’의 방향과 방법은 오리무중이다. 과거사 규명의 시기를 어디서부터 볼 것인지, 어떤 문제들을 대상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단체들에서도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많은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의 중요한 쟁점인 ‘정신대’(일본군 성노예 제도를 포함한)와 관련된 부분은 정작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생존자들이 10년 넘게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청하며 싸우고 있지만 한국정부는 늘 “공감한다”고 하면서도 어떤 적극적인 움직임도 취하지 않는 현실이다. 여기서 과거사의 구성 자체가 여성들을 배제하고 있다는 의혹을 던져볼 수 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아직도 민족주의적인 담론에 갇혀 당사자들의 존재와 이들이 겪은 경험이 ‘과거 우리 민족의 수치’로만 환원되기 일쑤다. 과거사 청산의 취지는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 잡아서 알리고, 억울한 희생자들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에게는 바로잡을 역사 자체가 기록되거나 알려져 있지 않다. 있다 해도, 왜곡된 시각에 의해 남겨진 것이 대부분이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 역시 그러한 일들이 사실로 인정되고, 알려지는 데만 해도 지난한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아직도 부인하는 이들도 있다. 과거의 일들이 재구성되는 과정에서도 할머니들의 증언은 ‘역사적 자료’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근로정신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정신대”에 대한 편협한 인식과 낙인 때문에 근로정신대로 끌려갔던 사람들은 “위안부”로 오해될 것이 두려워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과거사 청산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과거사 안에서도 배제된 역사들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기득권층에 의해, 자신들의 정치적 전략을 위해 이루어지는 과거청산은 의미가 없다. 21일 민주노동당은 여당의 개협법안은 ‘개혁’으로 볼 수 없다며 독자적인 법률안을 발의했다. 민노당은 과거청산과 관련해서 일제강점기 사건, 군의문사 사건 등을 포함시키고 진상규명 기간을 최장 8년으로 연장했다. 친일반민족진상규명특별법과 일제강제동원진상규명특별법을 그대로 두고, 법으로 진실규명이 어려운 경우에 대해 조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는 단순히 정치적인 색깔논쟁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과거사 규명의 의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외교통상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한 할머니의 증언이 있었다고 한다. 통일외교통사위원회는 이날 `일본군 위안부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한 역사관 건립'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는데, 진정 문제의식이 있다면 역사관 건립뿐 아니라 적극적인 과거사 규명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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