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은 어떻게 건축 역사를 전유했나

건축역사가 베아트리츠 꼴로미나 강연

김이정민 | 기사입력 2004/10/25 [00:16]

남성들은 어떻게 건축 역사를 전유했나

건축역사가 베아트리츠 꼴로미나 강연

김이정민 | 입력 : 2004/10/25 [00:16]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는가?" 20여 년 전 여성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이 던진 이 질문은 여성미술가들이 배제된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주류 미술사 '체제 자체'에 도전하는 비판이었다. 미술뿐 아니라 모든 영역의 예술이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왜 위대한 여성건축가는 없는가.” 지난 15일 서울시립대에서 열린 건축역사가 베아트리츠 꼴로미나(Beatriz Colomina)의 강연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이런 이름이 적합하지 않을까.

여성 건축가의 이름이 ‘지워지는’ 과정

”Sexuality & Space”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강연은 꼴로미나 교수의 동명의 책이 한국에 번역, 출간되는 기념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E.1027 아일린 그레이 & 르 꼬르비제”라는 제목의 강연은 E.1027 House이 근대 건축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사람인 르 꼬르비제(Le Corbusier)가 벽화를 그린 곳이자 여성 건축가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의 작품인 주택 건축물이라는 사실을 통해 남성적 시선과 이데올로기를 근간으로 하는 근대 건축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었다.

이 강연은 바로 건축사에서 지워진 아일린 그레이라는 여성 건축가의 이름을 불러내면서 동시에 르 꼬르비제라는 남성 건축가로 상징되는 근대 건축의 남성중심적 사관과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여성 배제와 특정 방식으로의 여성 재현 등을 드러내고 있다. 꼴로미나 교수는 E.1027 House가 건축사에서 의미 있는 건축물이 아닌 '위대한 건축가' 르 꼬르비제(Le Corbusier)의 벽화가 그려진 장소로만 기억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일렌 그레이(Eileen Gray)의 작품 E.1027 House에 르 꼬르비제가 벽화 작업을 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면서 어떻게 아일렌 그레이를 ‘지우고’ 다른 의미들을 ‘덧칠’하면서 그 건축물을 자기의 것으로 전유했는지 그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는 근대 건축에서 여성 건축가의 존재가 어떻게 사라졌는가에 관한 하나의 대답이자 당시 건축사에서 누구의 작업을 어떻게 인정했는가, 즉 르 꼬르비제의 작업이 벌어진 E.1027 House에서 어떤 부분은 드러나고 어떤 부분은 덮여졌는지, 주류 건축사가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과 그 근저에 깔려있던 권력과 가치가 무엇인지 고찰하게 만든다.

여성을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적 시선

또한 꼴로미나 교수는, 르 꼬르비제가 알제리 여인들에 관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사실도 해석의 중요한 한 축으로 다루었다. 알제리가 프랑스 식민지이던 당시 알제리의 도시 건축 프로젝트에 관여한 경험을 가진 르 꼬르비제가 비서구 여성인 알제리 여성들에게 가졌던 서구 남성으로서의 판타지와 오리엔탈리즘 등이 그의 벽화에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E.1027 House에서의 르 꼬르비제의 작업에 대한 분석은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의 가치와 남성 중심적 건축이 만나는 지점을 탁월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토론을 맡은 한국여성연구원의 김영옥 연구교수는 당시 정치적, 문화적 배경과 알제리-프랑스의 관계를 좀더 살펴본다면 알제리를 바라보는 프랑스 지식인으로서의 르 꼬르비제의 시선을 보다 잘 분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것은, 프랑스로 대변되는 유럽에 대항하는 탈유럽적 시선, 탈서구인에 대한 열망인 동시에 민족주의를 답지하고 알제리 여인에 열광하는 서구 지식인의 태도로 읽을 수 있으며 결국에 그것은 서구(프랑스)의 시선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김영옥 교수는 “꼴로미나 교수의 작업은 아일렌 그레이라는 여성 건축가를 건축사에 ‘등록’, ‘기입’시키는 것뿐 아니라 아일린 그레이라는 ‘기표’가 어떻게 남성주체들의 건축사에서 통용되는가를 보여준다”고 의견을 표하며, 건축사의 주류 담론 자체에 균열을 내는 근본적인 도전을 하고 있는 꼴로미나 교수의 작업에 더욱 의미를 부여했다.

다른 토론자로 나선 이선영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항상 여성으로 은유되고 기호화되는 공간, 그래서 건축가 남성이 그곳에 들어가고 공간을 바꾸고 재구조화할 수 있다고 말해지는 공간 건축의 영역에 있는 여성들이 하고 있는 구체적인 실천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남성중심적으로 구성된 언설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면 다양한 행위자로서의 여성들이 어떤 행위성들을 만들고 있는지, 건축에서 그러한 행위성을 발휘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김영옥 교수의 마지막 질문을 되새기게 된다. 이 질문은 꼴로미나 교수에게 대답을 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바로 그러한 여성 건축가들, 즉 남성 건축가들이 전유하는 건축사의 근본적인 인식론과 토대를 문제 삼는 작업을 꾀하는 여성들, 그리고 그 여성들을 기억하고 의미 부여하는 우리들의 실천이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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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U 2004/10/26 [17:21] 수정 | 삭제
  • 내용이 전반적으로 좀 어렵네요..
  • 8마일 2004/10/26 [02:23] 수정 | 삭제
  • 특히 여성에게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 운영 2004/10/25 [14:54] 수정 | 삭제
  • 왜 좋은 강연회는 놓치고 내용도 없는 데만 가는지 모르겠네..
    괜찮은 강연회 있으면 미리 소식을 알려주심ㄴ 좋겠네요.
    일다라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 biscotti 2004/10/25 [09:36] 수정 | 삭제
  • 아일렌 그레이에 대한 얘기 보면서 아인슈타인의 아내들(일명 세익스피어의 누이들)이 떠오르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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