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인 친구가 다소 고민이 되는 얼굴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다. 한 학생이 규칙을 어겨 혼을 내는 와중에 자신도 모르게 다소 과잉 대응을 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학생이 분명 잘못을 하긴 했지만 교사인 자신의 대응도 그리 적절했던 것 같지 않아 사과를 하려 했더니, 동료교사들이 말리면서 “사과하면 애들이 기세 등등해진다. 만만하게 보여선 안 된다”고 조언을 하더라는 것.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인간관계의 원칙임에도 그것이 교사-학생의 관계라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사실 초임교사들이 현장에 발 딛자마자 가장 많이 듣는 조언 중에 하나가 “초기에 애들을 잡아라, 절대 만만하게 보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단 교사들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언뜻 학창시절을 떠올려봐도 학생들에게는 ‘만만한 선생’과 ‘만만하지 않은 선생’이 존재한다. 착하고 민주적인 교사는 자칫 ‘만만하게’ 보이기 일쑤다. 엄하고 무서운 교사에게는 ‘알아서 기지만’, 순하고 물렁해 보이는 교사에게는 한없이 ‘잔인해지는’ 학생들의 생리 역시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동료교생이 수업을 마치고 교생실에 들어오자마자 펑펑 울기 시작했다. 도대체가 학생들이 “통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얼굴이 크다”느니 “어느 대학 나왔느냐”면서 수업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툭툭, 내뱉으며 수업분위기를 잔뜩 흐리니 당황한 교생은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결국 동료 교생들이 수업참관을 통한 대대적인 감시에 들어갔고 ‘점수 깎기’(학교현장에는 벌점제도가 존재했다) 위협 등을 통해 애들 ‘기 죽이기’에 돌입해야 했다. 수업을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애들 기 죽이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왜 끊임없이 교사와 학생 간에는 팽팽한 ‘줄다리기’가 존재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교사-학생’ 관계가 ‘인간 대 인간’으로 정립되기 어렵게 만드는 우리나라의 권위주의적이고 단체주의적인 교육시스템 때문은 아닐까. 자신의 욕구나 의도와 관계없이 한 교실에 삼사십 명씩 빼곡히 들어앉아 있는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생들이나, 이 많은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상대할 수 없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통제’해야만 수업을 운영할 수 있는 교사들이나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다음은 서로 ‘통제하기’와 ‘벗어나기’의 계산만 작동할 뿐, 평등하고 민주적인 인간관계 형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현실 속에서 교사가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 ‘권위’만을 내세울 때 학생들에게는 ‘복종’이냐, ‘반항’이냐의 선택밖에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길들여져 버린’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정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사의 역할과 판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란 권력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고민하던 친구는 결국 학생에게 사과를 했다고 했다. 잘못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교사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사과를 하는 것이 더욱 ‘교육적인 행위’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학생은 그 사과를 받고 교사를 만만하게 봤을까. 다행히도 그 학생은 사과를 받고 다소 놀라는 듯 하더니, 이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학생들이 교사를 만만하게 보느냐, 아니냐를 계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학생의 신뢰관계 형성에 있어서 어떤 것이 더 교육적으로 올바른 것인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교사의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사 좋아요 2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교육환경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소수자 시선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