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전형 기준을 의심하라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감독 후기

윤고은 | 기사입력 2004/11/21 [20:12]

대입전형 기준을 의심하라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감독 후기

윤고은 | 입력 : 2004/11/21 [20:12]
<필자 윤고은님은 경기도 상우고등학교 교사입니다. -편집자 주>

떨렸다. 수험생들의 예비 소집일에 교사인 나 역시 감독 연수를 받았다. ‘감독 유의사항’이라고 적힌 인쇄물을 받아 들고 각 교시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교육받았다. 이상하게도 7년 전 내가 수험생이었을 때보다 더 떨렸다.
 
전국 70만 수험생들이 초중고 도합 12년의 학업성과를 단 하루에 평가 받는 자리이니만큼 교사는 단 한 치의 실수도 해서는 안 된다는 무게감. 특히 4교시 탐구영역의 경우 처음으로 선택형 시험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절차가 다소 달랐고, 그 과정에서 혹 수험생들의 긴장을 가중시키는 감독관의 행동은 절대 불가였으므로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수능 당일. 교문 앞에는 뉴스화면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그 광경이 재현되고 있었다. 차를 타 주고 큰 소리로 화이팅을 외치는 고등학생들과 초조한 얼굴로 발을 동동거리는 학부모들. 감독관들은 7시 30분에 다시 한 번 전체 회의를 통해 유의사항을 확인했다. ‘수험생들을 최대한 배려할 것’, 이것이 핵심사항. 수험생이 화장실에 간다고 할 경우, 부정행위가 감지될 경우, 마킹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답안지가 누락되었을 경우 등 모든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요령을 전체 감독관이 단단히 주지시켰다.

 
그리고는 드디어 감독 실전 돌입.

인생을 포기한 학생?

다양한 학생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험문제를 열심히 푸는 학생이 대부분일 거라 예상하지만, 특히 수리영역의 경우 아예 포기하고 답을 모두 찍은 채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

 
소위 최상위 레벨에 속하는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은 열심히 집중하지만, 하위 레벨에 속하는 학생의 경우 모르는 문제가 태반이기 때문에 아는 문제를 모두 푼 후에는 찍을 번호를 열심히 고른다. 그나마 이러한 과정도 생략하고 대충 마킹한 후 잠을 청하는 학생들, 외국어 영역을 감독할 때 한 학생이 그러했다.

일찌감치 마킹을 끝내고 한 시간 내내 엎드려 잠을 자는 그 학생을 보면서 생각했다. 중고교 시절이 그 학생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하고. 국영수 위주로 돌아가는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속에서 그 학생은 수업시간에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 감독관이니 물어볼 수도 없고.

'하면 된다', 전국 70만 수험생들의 책상 앞에 한 번쯤은 붙어 있었을 구호다. 하지만 이 말은 구체적으로 '국영수 공부하면 대학 간다'는 뜻이다. 제2외국어 영역을 선택하지 않았을 경우 400점 만점에 국영수가 300점을 차지하는 수능시험, 이 시험을 통과해야 미래로 가는 길이 열린다.

 
기준이 왜 하필 국영수인가. 음악, 미술, 가정이면 안 되는 이유는? 나는 기준의 상대성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이미 수차례 지적되어 온 바이지만, 계속되어야 하는 것은 국영수라는 기준에 대한 문제제기다.

입학 당시에만 반영될 뿐 대부분의 학생들의 실생활에 있어 별다른 소용이 없는 것들을 중고교에서는 당연하게 가르치고 있으며, 이 과잉정보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재미없어 하며 학교를 다닌다.

 
국영수를 잘 하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 속에서 소외된 학생들을 위한 적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기는 한가. 시험 자체를 포기하고 한 시간 내내 잠을 자는 학생의 성실성을 의심하기 전에, 그 학생이 갖고 있을 그 무엇인가에 대한 욕구를 현 학교 체계가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언어영역에서, 사고력의 측정이란?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달을 따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남자는 달을 따다 주었다. 그 여자는 다시 별을 따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남자는 별을 따다 주었다. 어느 날 여자는 ‘당신의 부모님의 심장을 갖다 주세요’ 라고 부탁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남자는 결국, 부모님의 심장을 꺼냈다. 심장을 들고 여자를 향해 달려가던 남자는 그만 언덕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심장이 언덕을 굴러 내려갔다. 일어난 남자가 심장을 주워 들자 흙투성이가 된 심장이 이렇게 말했다. ‘얘야, 어디 다치지 않았니?’”

위 이야기는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는 ‘어느 날 심장이 말했다’라는 시나리오에 나오는 것이다. KBS 드라마 <학교>의 한 에피소드인데, 주제는 ‘부자간의 갈등과 화해를 통한 가족애’라고 참고서에 나와 있다.

 
얼마 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이 드라마를 시청한 후 99% 같은 내용의 소감쪽지를 써냈다. ‘새삼 부모님의 사랑을 느꼈다. 앞으로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 학생들이 감동 받은 부분도 거의 일치했다. ‘얘야, 어디 다치지 않았니’라는 내레이션이 음악과 함께 조용히 깔리는 부분. 다들 찡했다고 한다. 물론 찡했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것은 학생들의 ‘붕어빵성’이었다.
 
교과서 집필자의 의도대로 ‘효’에 대해 생각한 학생들, 자유롭게 솔직하게 써내도 좋다고 했는데도 그러했다. 다르게 쓰고 싶었지만 틀렸다고 할까봐 못 그랬다는 학생들이 몇몇 있었다. 슬프게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에 만약 이 시나리오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문제가 출제된다면 정답은 ‘가족애’다. 그것이 바로 출제자의 의도다.

 
하지만 문학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행위이므로 작품의 어느 부분이 독자에게 와 닿는지를 객관식 시험으로 측정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보편적 주제가 있다 하더라도 독자 개개인의 창의적 감상법을 막아서는 곤란하다. 이미 증명된 셈이다. 이 나라의 교육이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99%가 같은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걸까.

주인공인 흥수가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끔 도와준 유진이라는 친구, 다른 친구들이 모르는 흥수의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이 직접 만든 빵 안에 위의 ‘심장’ 이야기를 넣어 건네 주고 그 결과 흥수와 아버지의 화해를 유도한 중요인물, 이 인물이 남성이라고 한들 위 시나리오의 주제가 ‘흥수에 대한 유진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아니라고, 그것은 틀린 답이라고 단정할 수 있으랴.

 
내가 본 이 주제도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글의 주제는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고, 자신만의 관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그게 바로 창의성이라 이름 붙여질 수 있다고, 그걸 평가하는 게 대학수학능력시험이었으면 좋겠다고, 이것이 내가 학생들에게 하고픈 이야기였다.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장장 10시간 동안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이 단 하루를 위해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국의 학생들. 이 날을 위해 한국의 일과는 한 시간 늦춰지기까지 한다. 우리나라의 수험생들에게 국영수는 필수이고 특히 국어의 경우 정답이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소위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 즉 국영수의 정답을 찾지 못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되나?

 
그림은 이미 그려져 있다. ‘선택된 소수와 배제된 다수’. 가만, 교육이 소수의 학생들을 위한 것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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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jlee 2009/12/14 [12:04] 수정 | 삭제
  • 잘 읽고 갑니다~ 저두 수능 공부할 때 시의 주제를 왜 외워야 되나 불만이 많았었어요ㅋ
  • Diana 2004/11/26 [20:19] 수정 | 삭제
  • 저런 우화가 무섭죠.
  • 2004/11/25 [17:58] 수정 | 삭제
  • 학교와 수능, 대입 시스템은 소수의 학생들을 위한 것이 되어버렸죠.
    공감 많이 가는 내용이네요.
    수능 컨닝했다는 학생들 얘기로 매일 떠들썩한데, 그런 것만 보지 말고.
    이런 문제도 한 번 점검해봤음 하는 소망이 있네요.
  • 레이첼 2004/11/23 [12:41] 수정 | 삭제
  • 아직도 저런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구나.
    이런 게 교과서에 실렸다고요?
    부모의 심장을 갖다달라는 여자.
    여자에게 모든 걸 다 갖다주는 남자.
    자식사랑에 목매는 부모?
    거기서 감동을 얻고 교훈을 배우라니 징그럽다.
  • 콜라병 2004/11/23 [02:51] 수정 | 삭제
  • 하하! 국어는 정답이 없다는 말에는 100% 동의하고,
    어차피 객관성을 찾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소수를 위해서는 그 소수가 수능 이외의 다른 방도의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일게다.
    다양성이 지나치면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어느정도 획일성도 필요하니 너무 소수,소수 하지 마라.
  • 자이언트 2004/11/22 [14:30] 수정 | 삭제
  • 시험 본 학생들은 고생이 많았고 좋은 결과를 바래요.
    고3수험생은 귀족 대접도 받지만 인간처럼 못사는 것두 사실이니까 안쓰럽고 그렇네요.
  • 자이언트 2004/11/22 [14:29] 수정 | 삭제
  • 아직 많이 미흡한 건가 보다.
  • 독자 2004/11/22 [13:05] 수정 | 삭제
  • 음... 재밌게 봤습니다.
    심각한 내용이긴 하지만요..

    인생이 수능을 인해 성공하고 실패하고..
    그렇게 된다는 게
    우스꽝스럽죠.
    그게 현실이지만ㅇ.
  • may 2004/11/22 [03:30] 수정 | 삭제
  •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장면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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