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 송년회를 맞아 2004년 <일다>의 한 해가 어떠했는가를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새해를 맞아 신년인사 겸 2005년 일다의 계획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지만 역시 뾰족이 떠오르는 얘기는 없고, 다만 만감이 교차할 따름입니다.
올해엔 좀더 편안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일다의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나누어봐야겠다는 생각에 ‘편집장 메일’을 쓰고 있습니다. 한창 일다 사람들과 송년회를 준비할 즈음 ‘일다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무거운 화제가 던져졌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란 이대로 지속할 것인가, 재충전의 기간을 가질 것인가, 혹은 폐간을 할 것인가의 논의입니다. 독자들의 자발적인 후원금에 의지하고 있는 일다의 운영은 예고된 재정난과 인력난과의 지속적인 싸움이었지만, 1년 반을 넘긴 이 시기에 드디어 막바지에 도달했다는 걸 알게 됐죠. 모 방송사 기자의 말을 빌리자면 “소형차라도 기름이 있어야 굴러가는 것 아니겠느냐”는 비유가 적절할 것입니다. 일다의 미래에 대한 질문에 마땅한 답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모두들 마음이야 일다가 지속되길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나 처음부터 모래밭에 쌓은 성을 무리하게 지탱해나가도록 결의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송년회 준비를 함께 하겠다고 자원해주신 독자들에게도 이 문제에 대해 약간 운을 떼보았습니다. 밖에서 보는 <일다>는 이제 자리가 확실히 잡혔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해 보인다고도 합니다. 인권을 이야기하기엔 더욱 척박해지는 사회에서, 여성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는 이 매체가 사라질 거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거라고들 했죠. 저는 지금 <일다>를 접는다 해도 일다의 실험과 그 내용과 정신은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나갈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론 몸도 마음도 형편도 어려운지라 잠시 일을 멈추고 오직 스스로를 챙기며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면 행복할 것 같다는 욕심도 큽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일다를 꾸려오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특히 어떤 연분도 없이 일다를 후원해주셨던 ‘일다의 친구’들과, 변변한 원고료도 없이 기사독촉을 해대는 일다 측에 지속적으로 글을 보내주셨던 많은 기자들이 눈에 밟힙니다. 그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지라도 일다 편집장으로서, 저는 그 모든 분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진 기분입니다. 그런 복잡하고 어두운 심정으로 일다 사람들은 송년회를 치렀습니다. 작년 5월 ‘일다 후원의 밤’에서도 그랬지만 송년회엔 일다를 아끼는 많은 분들이 격려 차 방문을 해주셨습니다. 새롭게 연대 제안을 해주신 외국인노동자들도 만나 뵈었고, 일다에 기사를 쓰고 싶다는 고마운 필자들도 만났고, 일다와 같은 매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얘기해주신 타 언론사 기자들도 계셨습니다.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송년회 후원금을 통해 일다를 운영할 수 있는 기간은 2~3개월 남짓. 그 때까지만 버티는 것으로 하자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었는데, 송년회에서 일다 독자들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고 나니 일다를 계속 운영해갈 용기보다 일다의 실험을 중단하는데 필요한 용기가 더 크다는 걸 알았습니다. 지금 일다는 계속 고민 중입니다. 아마도 선뜻 정할 문제가 아니고, 많은 조언과 많은 도움과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어떤 매체가 이런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할까 싶습니다만 일다는 처음부터 많은 독자들의 지지로 생겨났고, 오로지 그 힘으로 유지해 온 매체이기 때문에, 일다에 애정을 가져주시는 모든 분들께 솔직하게 일다의 상황을 전달해야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년인사 대신 이런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일다는 다이어리 판매 등을 통해 비축한 돈으로 조만간 ‘여성정치세력화’와 관련한 책을 출판할 계획에 있습니다. 재정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보다 싼 곳으로 사무실도 이전할 겁니다. 일다의 미래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해도 일다의 첫 출발이 독자들의 지지와 후원이었듯이, 지금도, 앞으로도 독자들과의 소중한 관계를 잊지 않고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일다는 세상의 주류가 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찾고 주류의 목소리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자 했고,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 시도가 앞으로는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 모르지만, 사회에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의 바람은 분명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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