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일은 취미생활?

여성 프리랜서에 대한 사회적 시선

손안지연 | 기사입력 2005/02/28 [22:59]

프리랜서 일은 취미생활?

여성 프리랜서에 대한 사회적 시선

손안지연 | 입력 : 2005/02/28 [22:59]
번역 프리랜서로 일을 한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프리랜서의 길을 걷기로 하고 번역이라는 일을 택하기까지 나는 꽤 오랜 고민을 거쳤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는 상하구조가 확실하고 권위적인 분위기였던 데다 성희롱까지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었다. 나는 회사 분위기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고 어떻게 버텨낸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들면 여자인 내가 설 자리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미래를 위해 어떤 직업을 택해야 할지 새롭게 고민을 시작했다.

새로운 직업을 택할 때 나는 몇 가지 조건을 생각했다. 그 조건은 대략 내 적성에 맞는 일이면서 어느 정도의 수입은 보장되어야 하며, 나이가 들어도 여자라는 이유로 일을 못 하게 되지는 않아야 하며, 최대한 조직 사회의 불합리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러한 조건들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번역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약간의 준비 기간을 거친 끝에 영상 번역 프리랜서로 일을 하게 됐다.

현실적인 고민 속에서 번역 프리랜서라는 직업을 택했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프리랜서에 대한 환상이 조금은 있었다. 내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도 있고 원할 때면 일을 접고 여행도 떠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이러한 환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2년간 일을 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고 일감도 꾸준히 받을 수 있게 됐지만 그래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은 지울 수가 없다. 일을 할 때마다 늘 하나하나 시험을 받는 기분이 들고 일이 며칠만 일이 없어도 금방 백수가 되는 기분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일이 많이 들어올 때는 무리를 해서라도 다 받아서 밤새 일을 하게 되고 일이 없을 때에도 혹시나 어디서 연락이 올까봐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프리랜서로서의 고충보다 나를 정말로 절망시키는 것은 내 일을 전문적인 영역으로 여겨주지 않는 사회의 시선이다.

나는 일에 대한 욕심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이고 무엇보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일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번역을 한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해도 번역을 하는 여자 프리랜서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생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여자가 하기에 괜찮은 직업’을 가졌다는 수준이다. 이러한 평가는 부모님이나 나이 드신 분들은 물론이고 또래의 젊은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내가 직업을 소개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여자가 하기에 좋은 직업이다’라는 말이었다. 나에게 일을 주는 업체의 남자들의 인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번은 나에게 일을 주는 업체의 부장 급 상사가 ‘이 직업이 여자들에게는 참 좋은 직업이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어서 남자들이 참 좋아한다. 나중에 결혼도 잘 할 거다’라는 말을 듣기 좋은 소리라도 되는 듯 한 적이 있다. 옆에 있던 젊은 남자 사원들도 수긍을 하며 ‘남자가 하기엔 수입이 불규칙하고 안 좋지만 여자가 하기에는 딱 좋죠.’하고 맞장구를 쳤다. 더 심한 경우에는 번역가의 실력이 비슷한 경우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 남자에게 우선적으로 일을 준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일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럴 때마다 맥이 빠지지 않을 수 없다. 프리랜서라서 수입이 불규칙하다거나 그래서 힘든 면이 있다는 건 당연한 부분이고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그 얘기와 덧붙여서 그래서 여자가 하기에 좋다는 말을 듣거나 남자 프리랜서에게 먼저 일을 준다고 얘기하는 사람을 만나면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는 내가 오히려 바보가 된 기분이다.

나는 생존을 위해 번역을 하고 있고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성취를 해 내고 싶어서 일을 한다. 그러나 사회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 내 직업에 대해 여자니까, 그래서 생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까 집에서 취미생활처럼 가볍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아직도 여성의 일에 대해서 ‘취미 삼아 사정이 될 때 잠깐 하는 것’ 정도로 치부하는 사회의 시선이 답답하고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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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ppy 2005/04/02 [10:23] 수정 | 삭제
  • 여성의 일과
    일하는 여성에 대한
    낮은 대우와 사회적 편견..
    지겨운 고리에요.
  • 그분 2005/03/02 [10:36] 수정 | 삭제
  • 기사 잘 읽었습니다. 동감 가는 부분이 많네요.
    저도 프리랜서 2년차인데, 가족 친지들의 시선이 어이없을때가 많습니다. 밥벌이는 되냐에서부터 가끔 백수취급까지. 그야말로 '여자가 결혼 전 잠시 하기에 적당한 일'정도를 가졌다 여기더군요.
    기사를 읽고 나니 나이, 일, 결혼 등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 들락거리네요.
  • 미누 2005/03/01 [23:41] 수정 | 삭제
  • 다 거짓이죠..
    프리랜서란 안정적이지 않은 일자리일 뿐인데..
    값싼 인력이기도 하고.
    그런 이미지.
    CF나 드라마가 조장한 이미지인 것 같기도 해요.
  • 정님 2005/03/01 [18:28] 수정 | 삭제
  • 저도 3년 동안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1년 동안 프리랜서를 했는데요, 책 교정교열과 원고집필을 했습니다. 일의 강도나 내용보다는 일을 시키는 분들이 약속을 쉽게 어기거나 언제든지 돈만 주면 써먹을 수 있는 인력인 것처럼 말과 태도에서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 힘들더군요. 매번 원고료에 대해 협상을 해야 하고 인간적인 친밀감 없이 늘 긴장하고 사업적으로 대해야 하고, 끝나면 관계도 끝나고. 다음 일은 언제 올지 기약없고. 주는 일은 다음을 생각해 일정에 무리가 와도 무조건 다 받아야 하고, 사회적인 아무런 보호나 보장도 없어 길바닥에 나앉아 일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상사 눈치 안봐고 조직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긴 하지만 일의 강도나 스트레스는 더한 것 같더군요. 그리고 부모님께 안심시키려고 지금 일한다고 말하면 "시집이나 가야지. 고생대로 하고 그깟 돈으로...' 하는 말을 들으면 참 화가 났습니다. 왜 노력해서 내 삶을 스스로 꾸려가는 노력을 당신들 기준으로 쉽게 무시해버리는 건지...
    그리고 일에 대해 돈을 주었으니 그 성과물은 당연히 일을 준 쪽에서 가져가버리는 것도 박탈감이 들었습니다. 어렵고 외로운 삶같애요. 프리랜서는. 이름은 화려하지만. 직장동료나 경험을 나눌 친구도 없어지고 고립된 방에서 일에만 쫓겨 외로움에 지치게되고...
    그래서 올해는 새로 취직자리를 구했어요. 무엇보다 좀더 맘맞는 사람들과 같이 고민하며 조직생활하며 활기있고 사회적인 접촉을 하고 싶어서요. 어쨌든 무얼하든 결혼이나 출산에 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일하고 사람들에게 이런 일한다고 말할 수 있는 여성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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