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다양한 목소리 드러내

KBS 1TV 수요기획 <노인, 노인을 말하다>

오김승원 | 기사입력 2005/05/10 [02:20]

노인들의 다양한 목소리 드러내

KBS 1TV 수요기획 <노인, 노인을 말하다>

오김승원 | 입력 : 2005/05/10 [02:20]
지난 4일 KBS 1TV 수요기획에서는 <노인, 노인을 말하다>를 방영했다. 얼핏 어버이날을 앞두고 전형적인 기획프로로 보이지만 그 내용은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노인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다양한 의견과 시각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노인들의 삶’은 무엇인가

스스로 혹은 타인들이 느끼는 노인의 변화와 특성들에 대한 인터뷰로 방송은 시작됐다. 외모에서부터 자의식에 이르기까지 노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다양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디를 데리고 나가면 완전히 할머니 취급을 하는 거야. 천천히 걸으라는 둥, 계단을 오를 때도 조심하라는 둥, 붙잡고 난리를 쳐서…”

“새로운 문화를 접할 때 좀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호기심이 떨어져. 내가 앞으로 얼마나 살겠냐는 이런 잠재의식이 있는 거 같어”, “엄마 좀 쉬어, 이제 그러는데 그 쉬라는 얘기가 너무 막연하더라고. 그냥 쉬는 거야. 근데 나는 아침이면 뭔가 해야 할 거 같애요. 내가 뭐 하는 일이 있었는데 라는 그런 생각…”

그 동안 노인들의 감성과 감정은 쉽게 접하기 힘들었다. 그저 같이 사는 가족이자 이웃일 뿐 그들이 느끼는 실제 삶의 느낌들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 부양, 그 이면의 이야기

지금까지 노인관련 보도는 주로 가족주의와 ‘효’ 차원에만 머물러왔다. 여전히 저녁 뉴스는 “젊은 시절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해 온 노인들이 이제는 남은 생마저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식의 보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족들을 위해 희생했으니 이제 그 노년을 가족이 거두라는 얘기다. 그러나 실상 사람들의 삶은 그런 틀을 벗어난 지 오래다.

“고부간의 갈등만 있는 건 아니에요.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도 참 거북한 거에요. 따지고 보면 자연스럽지가 못하거든. 편하지가 못하거든.”

많은 노인들이 독립해서 살기를 원한다. 서로 싸우면서도 붙어서 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효와 전통적 의미의 가족 관계란 건 이미 자식에게도, 부모에게도 거추장스러운 게 된지 오래다. 방송은 ‘같이 안 살고 안 키운다’ 파트에서 자식과 떨어져 사는 노인들과 손주 양육의 문제를 보여주었다.

“저 혼자서 아들(손주)을 한 1년 키우니까 돌 거 같아요”, “얼마나 힘들었는데 또 손주까지 보면 할머니되라구?”, “처음에는 며느리들이 미안하니까 옷이라도 사주고 화장품도 채워주고 이러더니, 조금 있으니까 아주 당연히 시어머니가 하는 걸로 그렇게 생각할 때는 섭섭하더라구.”

그런가 하면 손주를 키우면서 삶의 보람을 느끼고 사는 재미를 느끼는 노인들도 많다. “내 인생을 찾아야지 왜 애보냐구?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이해가 안 된다구요. 이게 더 보람 있는 일 아니에요? 애 키우는 게? 늙은이들 나가봤자 관광차나 타고 놀러나 가고 별거 있어요? 그런 건 1년에 한번씩만 가면 돼요.”

노인의 성, 사회금기를 깨다

부모를 직접 모시지 않고 시설에 보내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그것은 ‘불효’라고 낙인 찍힌다. 가족주의와 효라는 전통적인 관습에 억매여 있기 때문이고, 공적 영역의 역할을 등한시한 탓이다.

“집에 모시는 게 더 불효하는 거 같아요. 집에 모시면서 짜증내고. 옛날 생각으로 불효한다는 거지. 이렇게 편하게 모시는데. 세월에 따라서 이런 게 불효하고 생각 안 해요. 편하게 모시는 게 좋잖아요”, “지금 자식들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돼요? 며느리도 싫고 딸도 싫고 그래서 여기 보내달라고 내가 졸랐어요.”

반면 서운함을 느끼는 노인들도 분명 있다. “그래도 집이 좋지. 여기가 편한 게 뭐가 있어요. 그냥 밥 먹고 앉아 있는 거밖에 없으니까 편하기야 편하죠.”

요양시설에 대한 편견과 더불어 또 한가지 금기가 있다면 그건 노인의 ‘성’이다. “늙으면 그냥 그럭저럭 살다가 인생 끝마치면 되지.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해. 그것이 젊은 사람들이 잘못된 거야. 지금까지 노인들은 그런 속에서 억누르면서 자기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늙었지만. 성적인 표현도 못하고 젊은 사람 못지않게 정열과 충동도 있지만 그런 것을 억누르면서 살아왔어요.”

노년의 로맨스, 어떤 이들은 주저 없이 선택한다. “젊을 때의 감정보다도 더 강하면 강했지. 외로움이 쌓이니까.”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재혼을 꺼린다. “내가 시집을 가면 딸이 셋인데, 시어머니 계시고 번듯하게들 사는데. 너희 어머니 시집 가셨대더라. 말들이 좀 있겠어?” 이처럼 노인의 성은 여전히 인정 받지 못한다. 성에도 나이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고정관념일 뿐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의 모습

지금까지 노인들이 사회적 이슈로 다루어지는 경우는 주로 저출산과 사회 고령화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 곁다리로 끼는 경우가 많았다. 노인들의 존재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공표나 마찬가지다. 노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가장 첫걸음은 현시대 노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 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방송은 말하고 있다. 저출산을 우려하기 보다는 저출산의 원인을 보다 깊이 있게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고,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노령화 현상에는 그에 맞게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눈을 바꿔야 한다는 것.

“지금 젊은 세대가 자기 나이 65세 되면 저보다 더 비참한 꼴을 봅니다”, “나이를 먹으면 여기에 오게 돼. 죽지 않으면 여기 와. 너희가 그 경지에 반드시 오니까 니가 그 경지의 삶의 조건을 개선시켜 놓고 노인들이 의미 있게 보람 있게 살 수 있게 하면 니가 거기 와서 영화를 누리게 돼. 너희가 안 만들어 놓으면 고생해. 우리처럼.”

<노인, 노인을 말하다>는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우리 사회 노인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줬다. 전통적인 의미의 효와 가족주의가 남긴 것, 재혼과 경제력 문제, 노인의 성을 둘러싼 금기와 요양시설에 대한 편견에 이르기까지. 분명 이 시사프로는 노인의 문제가 결코 노인계층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게 해주었다. 노인의 문제는 우리 전체 사회 문제의 축소판이자 가장 가까운 미래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인의 삶이 하나로 정의될 수 있다거나 단편적인 정책으로 쉬이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것을 인식해야 하며 특정 계층에 편중된 의견이 아닌 다양한 시각들을 수렴한 후에야 제대로 된 비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이 프로그램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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