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스러운 시선들

여성의 몸을 검열하게 만드는 문화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5/08/29 [21:49]

뻔뻔스러운 시선들

여성의 몸을 검열하게 만드는 문화

김윤은미 | 입력 : 2005/08/29 [21:49]
얼마 전 친구가 겪은 불쾌한 일을 들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고 친구는 티셔츠에 평범한 바지를 입고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런데 낯선 중년 남자 한 명이 친구를 계속 지켜보기 시작했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뚫어지게 쳐다보는 남자의 시선에 친구는 기분이 나빠져서 빨리 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친구는 이 불편함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헛갈렸다. 즉 남자가 자신을 성적으로 바라본다고 ‘오버’해서 해석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남자의 시선이 성희롱적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판단이 헛갈리는 가운데 친구는 자신의 몸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순간적으로 자신의 몸을 검열하게 됐다. 이윽고 친구가 남자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자, 남자는 “아가씨, 몸매 좋은데~”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제야 친구는 자신의 불편함을 확신했다.

사실 시선은 그 자체로 충분히 권력구도를 반영함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일로 간주되지 않는다. 특히 한국 사회는 상대를 구경거리로 삼는 노골적인 시선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주로 시선을 받는 대상이 되는 사회적 약자들은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판단을 확신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을 검열하게 된다. 예를 들어 거리에서 여성의 가슴 부위를 뚫어지게 쳐다볼 경우, 시선을 받는 ‘나’는 기분이 나쁘지만 동시에 내 몸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경우 불쾌함에 대해 항의하거나, 뻔뻔한 태도에 대해 사과를 받기도 어렵다. 쳐다 본 쪽에서 그냥 봤다는 식으로 나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몸을 성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스스로도 자신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닌지, 내 몸의 상태가 지금 어떤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성희롱의 판단 기준 가운데 유독 ‘시선’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시선’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인 영역이라는 반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은 타인(특히 여성)의 신체를 유심히 바라보는 행위에 대해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관행을 뒤집어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를 “정상적인 여성”의 이미지에 비추어 무의식적으로 검열하게 된다.

사실 낯선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 여성들의 몸에 쏟아지는 시선이 반드시 성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머리스타일이 특이하거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등 “정상적인” 여성들의 모습과 조금만 달라 보이면 낯선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지기 일쑤다. 끈 나시처럼 많은 여성들이 여름에 입는 평범한 옷도, 입고 나면 지하철에서 쏟아지는 뭇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이제는 상대를 뻔뻔스러울 정도로 쳐다보는 데 익숙해진 사회적 관행에 문제 제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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