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출생신고체계 허점 유기ㆍ유괴ㆍ살해돼

윤정은 | 기사입력 2005/10/11 [02:41]

법상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출생신고체계 허점 유기ㆍ유괴ㆍ살해돼

윤정은 | 입력 : 2005/10/11 [02:41]
출생신고체계의 허점으로 인해 방치되는 아동의 문제가 심각하다. 2000년 유엔아동기금(UNICEF)는 전세계 5천만 명에 가까운 어린이들이 출생신고가 안된 채로 살고 있다고 보고했다. 전체 아동의 40%가 넘는 수치다. 특히 아프리카 등 최빈국들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아동인권 문제지만,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출생신고는 아이의 출생 후 부모나 친족을 포함한 신고의무자가 1개월 이내에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혼외 출생과 같은 비혼자에 의
한 출생, 입양이나 가정의 생활고 등의 사유로 인해 태어난 아이가 출생신고 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출생신고는 태초의 권리”

대안가정운동본부의 김명희 사무국장은 “최근에도 2건을 접했다”며 출생신고 체계의 문제를 짚어볼 만한 사례를 이야기했다. 가정위탁 아동 중 6살이 될 때까지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한 보육시설에서 뒤늦게 출생신고를 해 호적을 갖게 된 아이의 사례와, 한부모 가정의 한 아동이 취학 직전에야 비로소 출생신고가 된 경우다. 출생신고 되지 않은 아이들은 신고 전까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은 아이”로 살게 된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은 사회적 존재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을 소지가 있다. 유니세프는 “출생신고는 태초의 권리”며, 출생신고가 되지 않는 아동의 문제를 중요하게 보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출생신고 되지 않은 아이들은 아동학대나 유기, 유괴, 살해 등의 범죄에 노출되기 쉽고, 법적 구제나 사회적 안전장치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출생한 아이가 아직 출생신고 되지 않은 채로 보호자로 인해 직접 살해되거나 방치돼 죽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고, 이 때 사망사실이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고 ‘영아사망’ 통계에 집계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동의 현실에 대해 우리 사회는 무지하거나 경각심이 부족한 형편이다. 한국에선 신고의무자가 출생신고를 뒤늦게 하더라도 1~5만원 정도의 과태료를 무는 정도의 경미한 처벌을 받는다.

장기미아 대부분 허위실종신고

한국은 강한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소위 “정상가정”에서 출생, 양육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여러 가지 아동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혼외 출생의 경우에 아동인권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상가정에서 출생하지 못했다’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출생신고를 꺼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여기엔 출생신고를 할 때 아동의 부모에 대해 필요 이상의 많은 정보들을 기입하게 하는, 아직 바뀌지 않은 호적제도의 문제가 맞물려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장기미아추적전담반 최윤길 반장은 “1990년대 이후에 신고된 장기미아 28명 중 서울시 장기미아추적전담반이 1년 6개월 동안 활동해 15명의 소재를 파악했는데, 대부분 친부모나 친족에 의해 허위로 실종신고가 된 경우였다”고 말했다. 특히 “장애아동을 유기하고 허위 신고한 사례도 몇 건 되고, 입양시킨 경우도 세네 건이 됐다”고 밝혔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이유는 아이를 유기하거나 입양시켜서 현재 보호, 양육하고 있지 않는데, “아이가 6, 7세 되면 취학통지서가 교육청에서 발급되니까 부모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허위로 실종신고를 한다”는 것이다.

입양된 아이는 대부분 새로 출생신고 되어 새로운 호적을 가지고 살고 있다. 몇 만원 가벼운 과태료를 물면 아이를 새로 자신의 친자식으로 출생 신고해서 호적을 만들 수 있고, 입양사실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한 한국사회 정서 상 국내 입양의 경우는 입양을 하는 사람들이 입양사실을 숨기고 싶어하기 때문에, 대부분 출생신고의 허점을 이용해 허위 출생신고를 하고 있다.

정확한 ‘출생통계’가 아동복지의 요건

김명희 사무국장은 “국내입양 역사가 50년이 넘는데 합법적인 입양절차를 따르는 사례는 아주 극소수”라며, “입양부모들이 합법적인 절차를 모르고 있거나, 입양기관조차 합법적인 입양절차를 무시하고 허위출생신고 방법을 권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관례들 때문에 친부모가 양육하지 못하고 입양을 해야 할 경우, 해당 아동은 출생신고에서 누락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처럼 허위출생신고가 쉽다는 사실은 ‘아동유괴’의 경우 더욱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유괴한 아이에 대해 유괴범이 얼마든지 새로 출생신고를 하고 친자식인 것처럼 호적을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경찰이나 보호자가 아이를 되찾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의 출생신고체계에 대해 박정한 교수(대구카톨릭대 의과대학 학장)는 “우리 나라는 OECD 회원국으로서 제공해야 할 각종 통계자료인 영아사망률이나 모성사망률조차 정확한 자료를 제시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각종 보건지표와 인구동태 분석의 근간이 되는 정확한 출생통계를 구하기 위해서 일단 출생한 신생아는 모두 신고가 되도록 출생신고체계 개선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가 제시하는 것은 “의료기관이 직접 신고를 하는 시스템 도입”이다.

대안가정운동본부 김명희 국장 또한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동들의 상황과, 아동복지정책을 위해 ‘출생통계’는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미국처럼 “병원을 통해 출생되는 아이는 보호자의 신고가 아닌, 병원 측에서 출생등록이 되도록 하는 방안 등 최선의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도록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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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irl 2005/10/12 [10:29] 수정 | 삭제
  • 허위출생신고가 입양의 관례처럼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꼭 자기 자식으로 해야만 한다기보다도 아이가 컸을 때 받게될 사회적 차별이라는 것도 걱정되니까요. 그치만 정상가족 중심의 관례는 이젠 깨야할 것 같아요. 법이 만들어졌음 철저히 시행되어야 하는 것인데, 태어난 아이의 출생에 대한 것도 저렇게 허술하다니 대한민국은 멀었던 생각이 드네요. 인권후진국--
  • 표범 2005/10/12 [00:05] 수정 | 삭제
  • 정상가족 중심의 사고..뭐든지 '대부분의 경우'로 덮어버리는 관행들에 무기력해지지 않는 것 .. 왜 일케 힘들어야 할까..
    병원측 출생등록으로 바꾸는 게 뭐 어렵다구. 인권 사각지대라는 말이 첨에는 강력했는데 너무많은, 너무 다양한 사각지대가 계속 발굴되어 충격도 무뎌가는..
  • ..... 2005/10/11 [19:41] 수정 | 삭제
  • 갓 태어난 아기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죽어도 죽은 셈 치지도 않을 수 있다는 게..
    아동권리란 게 한국에선 진짜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들만큼이나 인식이 덜 되어있다는 생각 든다..
  • 메텔 2005/10/11 [16:18] 수정 | 삭제
  • 얼마나 애타고 인생 무너지는데.. 유괴나 유기하는 경우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 R 2005/10/11 [15:06] 수정 | 삭제
  • 장기 미아가 중 상당수가 허위 실종 신고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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