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해야하는 질문은 무엇인가

줄기세포 논란 진위해명만으론 안된다

하정옥 | 기사입력 2005/12/27 [06:03]

지금 해야하는 질문은 무엇인가

줄기세포 논란 진위해명만으론 안된다

하정옥 | 입력 : 2005/12/27 [06:03]
<이 글을 기고해주신 하정옥님은 그간 한국에서 체외수정 기술의 전개과정에 관해서 연구를 해오셨으며, 올해 12월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논문으로 "한국 생명의료기술의 전환에 관한 연구"를 쓰셨습니다. -편집자 주>

 
지난 11월 중순 한 방송사의 ‘난자 의혹’이 방영되면서 그리고 12월 말 진위 논쟁이 일단락되고 허위의 구체적 사안이 거론되면서 ‘난자 (공급의) 윤리성’이, 그 동안 한국에서 논쟁의 핵심이었던 ‘배아 (실험의) 윤리성’을 제치고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난자 ‘공급’이 부각된 것은 2004년 5월 <네이처>지가 연구원의 난자 제공을 문제 삼으면서 시작됐다. <네이처>가 연구원의 실명을 거론하면서까지 ‘폭로’한 것을 계기로, 한국생명윤리학회는 2004년 5월 22일 발표한 공개 성명서에서 난자의 출처를 비롯한 몇 가지 사항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1997년 복제양 돌리의 탄생으로 촉발된 한국의 과학기술 ‘생명윤리’ 담론에서 2004년 이전에는 단 한번도 난자가 논쟁의 중심이었던 적은 없었다. 논쟁의 이슈는 단연 배아, 즉 배아의 인간으로서의 지위와 배아의 실험규제 여부였다. 과학기술부의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2001년에 내놓은 생명윤리기본법(가칭)도, 보건복지부가 2002년 제안하여 2003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도, 주되게 다룬 것은 인간 배아의 생성과 실험을 허용할 것인지의 여부였다. 난자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난자의 남용을 방치한 측면도 없지 않다.

2004년 황우석, 문신용 교수 등의 <사이언스> 논문 발표 이후, 외국의 연구자들이 “수천불을 지급해도 우리는 몇 개밖에 구하지 못했는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수백 개의 난자를 연구에 사용할 수 있었는가”하고 의아해 했고, <네이처>지가 직접적으로 난자의 ‘출처’를 문제제기하자 한국사회 논쟁의 장에서도 소위 인간복제와 난자와의 연관성이 인지되기 시작해 난자가 윤리적 논쟁의 핵심으로 부상한 것이다.

‘윤리’에 갇힌 난자, 사라지는 현실의 여성들

그런데 난자가 주목을 받게 되면서 규정된 틀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배아 (실험의) 윤리성’의 확장에 다름 아니다. 2004년 난자의 ‘출처’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으로부터 받았는지 그리고 다른 지원자에게서도 적합한 동의절차를 받았는지 하는 연구 윤리의 문제였고, 2005년 매매 난자의 사용에 대한 문제제기는 논문에 자발적 기증이었다고 기술한 것에 배치되는 정직성의 문제였다.

‘윤리적 우려’에 갇혀 있는 2004~2005년 한국 상황은 사실 낯설지 않다. 한꺼번에 여러 난자를 성숙시키는 과배란제는 체외수정기술을 먼저 개발한 다른 나라에서도 초기부터 논란이 된 바 있다. 여성의 몸에 미칠 수 있는 위험도 간혹 지적되었지만, 논란의 주 핵심은 다수의 난자 채취가 결국 여러 배아 창출로 이어지고, 여러 배아를 자궁에 이식하였을 때의 ‘배아 유실’(embryo loss)의 가능성(및 그것과 낙태와의 유사성) 그리고 소위 ‘비정상’ 배아의 폐기 문제였다.

이러한 우려를 담은 1979년의 한 논문에서는(LeRoy Walters) 당시 예상으로는 수정과 착상에서의 기술적 진전이 이루어지면 당연히 과배란제의 사용이 줄어들 것이라 내다보았지만, 오늘날 그 진전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과배란제 사용은 여전하고 임신에 사용되고 남은 것은 “어차피 폐기될 것”이라며 연구에 사용된다. 이러한 점에서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이 불임클리닉을 ‘배아생성의료기관’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히려 더 솔직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와중에 난자 매매의 ‘윤리성’을 고발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당사자의 우편함을 뒤지는 일을 서슴지 않으며 연구원 난자 기증의 ‘대가’를 고발하는 인터넷 신문은 거의 실명을 거론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윤리성’ 지적에, 한국에서만도 이미 20여년 가까이 된 과배란 및 난자채취에 대해, 갑작스럽게 위험성이 부각된다.

난자를 둘러싼 논란이 ‘윤리’로 문제 설정되는 상황은 난자가 주인공이 되면서 마치 여성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현실의 여성은 지워질 우려가 있다. 대가 없이 난자를 기증하는 ‘성스러운’ 여성과 돈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몸을 ‘매매하는’ 여성의 대조 속에서 여성들이 어떠한 복잡다단한 동기 속에서 난자를 기증하겠다고 나섰는지 20,30대 여성들의 경제적 상황을 규정지은 노동시장의 문제는 무엇인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합리적 배아관리 기구?

현재 한국여성민우회와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실에서는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과는 별도로 불임클리닉 등의 임상을 관리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며, 그 내용 중에는 관리 기구로서 ‘인공생식시술관리청’ 혹은 ‘국립배아관리센터’를 잠정적 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영국의 인간수정및배아발생기구 (Human Fertilisation and Embryology Authority)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우선 그 동안 연구에 가려 잊혀졌던 임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점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난자와 배아의 ‘합리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할 때에는 시스템부터 갖춰놓고 시작할 것이 아니라, 과연 그 관리는 무엇을 위한 것이며 그 관리체계는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에 대해 좀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영국의 인간수정및배아발생기구라는 제도적 결과를 들여오기에 앞서, 이 기구가 성립하기까지 제도설립 과정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이 기구가 설립된 직접적 계기는 1990년 인간수정및배아발생법률(Human Fertilisation and Embryology Act)이었지만, 영국에서는 법률이 제정되기 전부터 전문가 집단(왕립산부인과학회와 의학연구재단)이 자체적으로 라이센스 기구(정식 명칭은 Voluntary Licensing Authority, 법률이 제정된 1990년 이후 Interim Licensing Authority)를 설립하여 임상 처치와 연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1985년), 영국에서 이루어지는 임상 및 연구 현황에 관한 보고서를 6차례 발간한 바 있다(1986년~1991년). 영국 인간수정및배아발생기구는 “우리는 완전히 무에서 작업할 필요 없이 우리에게는 ILA라는 원천이 있었다”며 그 성과를 계승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지금 만일 한국에서 이와 같은 기구가 만들어진다면 그 기구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전문가 집단의 내부 동의에 기반한 역할을 수행하기는 힘들어 보이며, ‘외부 개입’이라는 행정 부서의 권한을 위임 받은 형태가 될 듯하다. 그러했을 때 현재의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에서와 같이 정부의 행정 부서가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는 것과 어떤 차이를 보이게 될지 의문스럽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좇아왔는가

‘사태’로까지 불리는 현재의 상황은 정말이지 이토록 엉망인 진실이 아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그야말로 하나의 계기가 될 만한 징조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이익집단이 아닌 책임지는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단초를 보여주는 과학자 사회가 형성된 것, 그리고 내부자 감싸기가 아니라 철저한 진실규명의 의지를 보이는 대학의 조사위원회 등은 최근 몇 년간 숨가쁘게 달려온 것을 멈추고 우리가 과연 무엇을 좇아왔는가를 질문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첫째, 한국은 어떻게 배아로부터의 줄기세포 추출에서 세계 선두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둘째, 우리는 과연 이 연구를 계속해야 하는가?

한국의 불임클리닉은 이미 알려진 바 여러 곳이 각기 고유의 배아 줄기세포를 갖고 있으며, 그리고 세계줄기세포허브 또한 한국이 맡게 될 주된 역할은, 클로닝이든 ‘잉여’든, 배아 줄기세포의 공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분명 인간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 경쟁력은 국가가 연구비를 지원하기 이전부터 이미 갖고 있었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리고 과연 이 경쟁력을 자랑스러워해야 하는지, 즉 이 분야를 ‘국가적 기획’으로 주력해야 하는지도 질문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아니 이 질문은 한국의 과학계를 넘어 전 세계를 향해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 배아로부터의 줄기세포 추출에 우리의 자산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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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나나맛 2005/12/31 [13:03] 수정 | 삭제
  • 생각해봐야 할 것들을 둘러주셨군요.
    난자와 배아관리 관련해서 책임자들의 잘못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지금까지 안한 일과 못한 일에 대한 반성도 있어야 한다고 생가합니다.
  • 하우엘 2005/12/27 [18:03] 수정 | 삭제
  • 끔찍한 장면이 떠오르네요.
    산부인과에서 임신을 하려고 하는 여성들 눕혀놓고
    채취한 난자들을 통해
    배아줄기세포 만드는 기술 계발하고
    그래서 줄기세포 추출 1위라고.
    의사들은 어떤 생각 가지고
    양심 하나도 안 찔리고 그렇게하는지.
    한국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해야하는데
    국익이라고 좋아만 하였군요.-_-
    갈수록 불임률은 높아진다는데 걱정입니다.
    연구윤리도 확실히 만들고 지켜야하지만
    인공수정시술부터 어떻게 좀 해야할 것 같아요.
  • 2005/12/27 [16:37] 수정 | 삭제
  • 신기루.
    아직도 매달리고 아직도 현혹되고 아직도 호도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낙이 없었나 돌아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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