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규정, 강간죄 규정 틀 바꿔야

[논평] 트랜스젠더 성폭력 사건을 둘러싼 문제들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6/02/07 [08:19]

성별규정, 강간죄 규정 틀 바꿔야

[논평] 트랜스젠더 성폭력 사건을 둘러싼 문제들

조이여울 | 입력 : 2006/02/07 [08:19]
성확정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여성을 ‘성폭행’한 자에 대해,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째 숫자가 ‘1’이라는 이유로 경찰이 강간죄가 아닌 강제 추행죄를 적용해 입건했다는 사건보도를 접했습니다. 지난 1995년에도 성확정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가 집단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법원은 이를 강간죄가 아닌 강제추행죄로 판결한 바 있습니다.

피해자가 강간을 당했고 가해자가 강간을 했는데, 법의 집행과정을 거친 결과는 강간죄가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현실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얽혀
 있습니다. 트랜스젠더의 호적정정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문제가 있고, 우리 형법이 ‘강간죄’를 성기 삽입중심으로 규정하고 있는 데에 문제가 있으며, ‘강간죄’의 대상을 ‘부녀’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 또한 문제입니다.

트랜스젠더 호적정정 인정해야

1995년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우리 법정에서 헌법의 기본정신인 ‘개인의 존엄성’이 기타 다른 요소들로 인해 어떤 식으로 침해 받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어릴 때부터 정신적으로 여성에의 성 귀속감을 느껴왔고 남성의 내.외부성기의 특징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으며 외견상 여성으로서의 체형을 갖추고 성격도 여성화되어 개인적으로 여성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다” 할지라도, “성염색체의 구성이나 본래 내.외부성기의 구조, 정상적인 남자로서 생활한 기간, 성전환수술을 한 경위, 시기 및 수술 후에도 여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은 없는 점,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 일반인의 평가와 태도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사회통념상 여자로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리수씨의 등장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의 폭은 확장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호적정정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원이 “인간의 성별은 성염색체와 생식 여부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과 “성은 출생과 동시에 부여 받는 것으로 인위적으로 변경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구성원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 것보다, 성염색체와 생식능력을 토대로 사람의 성별을 판별하고 구분하는 것이 법원의 판단에서 더욱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웨덴이나 덴마크, 미국 등에서는 성확정 수술을 원하는 트랜스젠더에게 수술비용까지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최근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 권고안에서 성확정 수술에 있어서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성을 사회가 임의로 남성이다, 여성이다라고 규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 이들이 누려야 할 법적 지위와 인간의 존엄성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성확정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에게 호적정정을 허가하는 것은 이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헌법상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며, 그것이 법 집행기관들의 본래 역할입니다.

강간죄 대상 ‘부녀’로 한정해선 안돼

한편, 군대 내 동성간 성폭력 범죄에 대한 실태보고가 국가기관에서 진행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이 ‘강간죄’의 대상을 ‘부녀’로 한정하고 있으면서 남성성기 삽입중심(성교행위)으로 판단 내리고 있는 것은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녀를 대상으로 성기삽입을 한 행위에 대해서만 ‘강간죄’로 구분하고 있는 이유는, 성폭력 범죄를 인간의 성적자기결정권 침해가 아닌 ‘부녀에 대한 정조권 침해’ 또는 ‘재생산권 침해’의 문제로서 중하게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또한 법원이 ‘부부강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성폭력이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인권을 침해한 심각한 범죄행위라는 사실을 우리 법이 인정한다면, 남성성기 삽입을 기준으로 범죄를 규정하거나 성별을 이유로 피해자 대상범주를 제한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실제 현실에서 성폭력 범죄 유형의 심각성이나 폭력성의 정도가 남성성기가 여성성기에 삽입됐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을 뿐 아니라, 피해대상자의 성별이 피해사실이나 가해사실 유무 혹은 그 정도를 결정짓는 요인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피해자의 인권을 존중한다면 성폭력 피해경험을 토대로 성폭력 범죄가 구성되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우리 법이 과거 인습인 성별 통념에 갇혀서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인권의 개념을 반영하지 못한 채, 성폭력을 성폭력 아닌 것으로 둔갑시키고 형평성에 어긋난 행보를 계속할 것인지 갑갑할 따름입니다. 우리 법이 보수성을 무기(?)로 차별적 시선을 고수하는 동안, 평등과 인권을 지향해야 할 기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법을 통해 개선해나가야 할 사회적 통념이 오히려 더욱 강화된다는 점에서 그 여파는 개별 사건의 피해자에 한정되지 않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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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kh 2006/02/15 [16:16] 수정 | 삭제
  •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죠.
    동성 간에도 피해를 겪는 일들이 많은데도, 성폭력 법률이 아직도 피해자들을 구제하지 않고 있다는 게 답답하네요.
  • 경희 2006/02/09 [14:21] 수정 | 삭제
  • 그런데도 남성에게서 여성이 당한 성폭력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적으로 심각한 범죄가 아닌 게 되어 있어서, 그런 허술한 법망을 틈타서 더 동성 간 성폭력이 번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성적인 대상이 되는 경우에도, 아기를 낳는 여성의 몸이 아니라는 이유로 성적으로만 대상화되고 여성으로서 인정은 받지 못하는, 그런 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도 너무 안타깝네요.
  • elle 2006/02/08 [18:05] 수정 | 삭제
  •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남의 일이라고 무심하게 생각하거나,
    변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런 판결을 내리는 게 아닐까 합니다.
    트랜스젠더의 성전환 수술에 대해서 건강보험 적용해주자는 것에 대해서도 세금아깝다고 하는 여론이 거세다고 하더군요.
    성전환 수술과 호적정정이 트랜스젠더들에겐 생존의 문제라고 합니다.
    무료 수술도 아니고 보험 적용마저 아깝다고 하는 사회가 무척 각박하고 차갑게 느껴집니다.
  • 2006/02/07 [18:36] 수정 | 삭제
  •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민등록증을 보고 강간을 하는 것도 아닌데, 강간을 당했어도 민증이 1이라서 강간이 아니라니, 썩어빠졌어요.

    그리고 트랜스젠더에 대해서 심문하다가 성희롱하는 경찰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 저 따위로 나오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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