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여성총리시대는 다른가?

여성정치세력화와의 연관성에 대해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6/05/17 [17:11]

[논평] 여성총리시대는 다른가?

여성정치세력화와의 연관성에 대해

조이여울 | 입력 : 2006/05/17 [17:11]
<이 글은 이대대학원신문 52호에 기고한 글을 토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총리가 탄생하게 된 사실이 갖는 의미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게 됩니다. 여성의
 정치세력화와 맞물린 질문입니다. ‘이미지 정치’에 휘둘려 온 역사가 깊기에, 이 사안에 대해 합리적이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치 사안은 잠시 우리의 눈과 귀를 잡아 끈다고 하여 섣불리 판단할 일이 아니라, 솔직하고 공정한 평가를 내려야 합니다.

이해찬 전 총리의 후임으로 한명숙씨가 총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연합, 그리고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는 한명숙씨가 “새로운 여성정치의 전형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며 총리 임명을 “희망”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명숙씨의 정치적 소신이나 지금까지의 정치활동에 대해 “새로운 여성정치의 전형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내릴 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여성단체들이 책임지지 못할 주장을 하는 게 아닌가 우려가 됐습니다.

여성단체뿐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언론들이 여성총리의 탄생을 여성의 정치세력화와 연결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여성정치세력화에 대한 인식의 수준과 관심의 정도를 반영하는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성총리의 탄생과정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과연 여성정치세력화와 어떤 연관이 얼만큼 있는 것인지 조금만 깊이 들어가보자고 제안을 해보고 싶습니다.

애초 이해찬 전 총리의 후임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누구를 지명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 한나라당은 여성총리를 지명하라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은 “당 대표가 여성인 한나라당은 이 문제를 말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노무현 대통령은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을 새 총리로 발탁했고 국회의 비준도 무난히 거쳤습니다. 한명숙 총리는 취임 직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만나 여성들의 정치 참여에 박 대표가 “개척자 역할”을 해주었다고 말했지요. 인사성 멘트라고 하기엔 과도한 발언이었습니다. 박근혜씨와 ‘박씨 이외의 모든 여성들’의 정치참여 조건은 너무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성총리의 탄생은 이제 대한민국이 여성총리를 낼 때가 되었다는 정계의 합의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긍정적인 면을 읽어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여성정치세력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총리를 만드는 권력이 누구에게서 나왔는가를 살펴보았을 때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여성이 총리 자리에 앉는 것에 대해 거대 야당도, 여당도, 대통령도, 그리 불편해하거나 크게 다툴 소지가 없었습니다. 생활의 장에서, 지역 사회에서, 정당 내부에서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높은 벽에 부딪히고 있는 현실과는 달리 여성총리의 탄생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그 과정에서 어느 쪽도 이해관계에 있어 손실을 입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총리를 기용한 것이 ‘이미지 정치’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 혹은 우려가 총리 취임 이전부터 제기되어 온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재야운동권 출신이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여성부, 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한명숙 총리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지만 주로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온화한 이미지’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국정홍보처장이 정부 각 부처 별로 ‘한명숙 총리의 대외적 이미지를 올릴 수 있는 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한 사실이 모 일간지에 보도된 바 있지요. 한 총리는 스스로 “얼굴마담”은 되지 않을 것이라 공언했지만, 총리가 여성이라는 점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이미지 공략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해선 안 됩니다.

한명숙 총리와 여성정치세력화의 연관관계에 대해서 정작 주요하게 물어보아야 할 것은 바로 우리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여성총리에게 거는 기대, 혹은 여성총리를 낸 정치권에 거는 기대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철도공사가 KTX 여승무원들을 직접 고용하도록 하는 것인가요, 나아가 여성의 빈곤화와 맞물린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해나가는 것인가요,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방향타를 여성인권의 관점으로 돌려놓는 것인가요, 이번 지방선거에서 있어서 여성들의 공정한 정치참여가 가능하게 만드는 것인가요, 제2의 황우석 사태를 예방하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인가요, 쏟아지는 개발국책사업을 막고 생태계와 우리의 미래를 지켜내는 것인가요. 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과 일본의 군사적 동맹관계 속에서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개선하고 인권과 복지에 쓰일 예산을 확보하는 것인가요.

여성총리의 탄생 ‘의의’가 무엇인가는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았을 때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여성총리의 탄생과 관련해 그저 여성이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 이외에 구체적인 어떤 변화도 기대하지 않았다면, 혹은 남성총리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들을 여성총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여성총리의 탄생이 여성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반대로 우리가 여성총리 시대를 맞아 평등과 평화,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향해 위에 열거한 바와 같은 구체적인 실천과 변화의 조짐을 기대했다면, 지금 한명숙 총리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과 그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은 상당히 우려되거나 벌써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이상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총리가 탄생하게 된 사실과 여성정치세력화와의 연관성에 대한 솔직한 평가와 생각들입니다. 여성정치세력화의 목적은 여성들에게 공정한 정치를 실현시키는 것에 있으며, 결코 소수 여성들이 정계에 진출하여 성공하는 정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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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자 2006/05/30 [16:02] 수정 | 삭제
  • 어찌 제맘을 그리 잘도 글로 표현하셨는지 감사할따름입니다. 선거로 이레 저레 바쁜 사람들을 보며, 끼지 못하고 뻘쭘하는 저는 능동적이지 못한 행동을 어찌 풀어내야 할지 몰라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잘도 정리 해주셨군여. 선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절 볼때 마다 '여성주의적 관점'이란 무엇인가 자꾸 되묻게 되더군요. 하지만 주위에서 해주는 말은 충만한 만족과 대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난 정말 여성주의적인가??
  • 릴리슈슈 2006/05/25 [07:47] 수정 | 삭제
  • 여성정치세력화란 말이 무색합니다.
  • 이미현 2006/05/21 [04:02] 수정 | 삭제
  • 그렇죠.. 핵심을 찌르는 질문들을 해주셨네요..
    여성이 총리가 됐다 해서 헤벌레 좋아라 할게 아니라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적절히 질문해 보는 비판의식이 정말 필요하걷느요.. 많은 여성들이 기존의 남성위주의 정치판에 시각을 맞춘 채로.. 이거 아니면 저거 식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여성의 관점을 어려움없이 반영할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 의지와 추진력이 있는 그런 "새로운" 정치권이 되어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지켜보는게 지금 많은 여성들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 열불나 2006/05/20 [06:13] 수정 | 삭제
  • 원래 한명숙 이미지가 너무 부드러워 애초부터 기대도 않했죠.
    그 자리에서 욕 먹지 않는 부드러운 이미지란
    결국 강자에게 빌붙고 아부하고 약자는 내동댕이 치겠다는 뭐 그런식...
    강금실도 마찬가지..
    속에서 열불나요. 그 사람들이 가진 여성어쩌구 는 상징성도 없어요.
    그저 남성 권력에 빌붙어 살아남는것밖에는..
  • 소희 2006/05/20 [01:37] 수정 | 삭제
  • 벌써 패턴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정당이 망해갈 때 여성들을 들러리 세우는 것 같아요.
  • lovemind 2006/05/19 [21:29] 수정 | 삭제
  • 동감합니다. 퍼 갈께요.
  • zzang 2006/05/18 [18:12] 수정 | 삭제
  • 여성총리 나왔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나요?
    우리 나라도 이제 여자총리 한 명 나왔다고 얘기하는 것 정도밖에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 맞아요 2006/05/18 [02:52] 수정 | 삭제
  • KTX비정규직 여승무원들 문제를 노무현이 말한대로 순순히 잘 처리(?)하는 거 보니 그냥 무늬만 여성정치인 인듯 하더군여. KTX언니들이 그렇게 여성경찰 손에 끌려가는거 보는데,전 정말 절절히 느꼈습니다. 여성경찰이 연행하면 답니까? 여성정치인 나왔다에 뭐 그리 다들 호들갑인지 정말 한심. 한총리 출신 여고 앞에 플랜카드 걸렸더라고요. 축 총리 탄생 머 그런거, 멀 축하한다는 건지. 옛날에 독재정권에 맞서고 그랬다 암만 그거 들먹거려야 머하겠어요, 현재가 중요하죠. 한명숙씨가 총리가 되었다고 한꺼번에 여성문제가 모두 해결 수 없다는 건 당근인데, 뭐 좀 바뀌면 안되나여? 그렇게 돼서도 안되나니, 그말은 틀리신거 같아요. yeoia님, 안그래요? 아니 그렇게 다들 여성총리에 대해 거는기대가 큰데, '여성'정치인이란 말로 득 봤으면, 뭐 여자들한테 돌아오는 것도 있어야 당3이죠,, 여성의 비정규직화 문제는 조금의 진전은 커녕, 오히려 퇴행했다고 봐야 옳죠
  • yeoja 2006/05/17 [23:35] 수정 | 삭제
  • 지금까지 국무총리를 지낸분들은 보통 사회적으로 도드라지거나 문제시 되지 않는 덕망 있어 보이는 분들이 총리를 지냈다고 봅니다 (실제로 덕망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무난한 사람) 국무총리는 겉으로 보기엔 대통령 다음인거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대통령의 권력보다 십분의일도 안되고 국무총리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국정을 좌지우지 할 처지가 거의 없는거 같습니다

    한명숙 총리는 열린우리당에 있던 사람으로 당의 정책을 특별히 반대하지 않고 대통령의 정책의지를 보좌해야하니까 개인적으로 정부의 정책들을 180도 돌려놓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정책의지를 보좌하고 여당눈치보고 야당눈치보고 적당히 무난하게 정부정책들을 교통정리하는 역할밖에 없습니다

    한명숙씨가 총리가 되었다고 한꺼번에 여성문제가 모두 해결될 수도 없고 그렇게 돼서도 안됩니다 총리가 그런 막강한 권력도 없지만 만약 권력이 있다면 내각제 형태가 돼야하겠지요

    한명숙 총리가 여성들에게 기여하는 점은, 정부정책에서 여성에 해당하는 정책들을 좀더 강도높게 추진할 수 있고 여성총리로서 양성평등한 권력구조에 한걸음 더 나갔다는 점도 있습니다, 여성의 비정규직화 문제, 여성 정치할당제, 아동보육의 사회화는 조금씩 진전될 여지가 있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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