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각상에 표현된 ‘과거의 정신세계’

<목인(木人), 세속에서 얻은 성스러움>전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6/07/25 [17:25]

목조각상에 표현된 ‘과거의 정신세계’

<목인(木人), 세속에서 얻은 성스러움>전

김윤은미 | 입력 : 2006/07/25 [17:25]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상상하고 재구성하기 위해 우리는 사료에 의존한다. 지배층의 경우에는 문자로 기록된 자료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평범한 민중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들이 먹을 때 쓴 도구나 입은 옷, 집의 재료와 모양 등 일상을 구성한 사물들이 더욱 중요하다.

예컨대 민중들이 손수 만들어서 죽은 이를 보내는 상여를 장식하는 데 사용한 목조각상은, 그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상여는 죽은 이를 장지까지 운구하는 가마로, 산 사람들은 상여의 장식을 통해 죽은 이에게 마지막으로 정성을 바쳤다. 그래서 상여의 장식에는 산 자들이 생각하고 염원하는 바가 가감 없이 표현되어있다.

7월 5일부터 8월 15일까지 서울 종로에 위치한 목인박물관에서는 상여 장식용 목조각상을 중심으로 “목인(木人), 세속에서 얻은 성스러움”전이 열리고 있다. 목인박물관은 사람과 각종 동물의 모습을 조각한 목조각상 3천5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목조각상 전문박물관으로, 이번에는 조선시대 후반에서 해방 이후까지 상여를 장식하는 조각을 중심으로 특별전을 열었다.

죽은 이를 장사 지내는 상례문화는 해방 이후 급격히 변하여 지금처럼 개별적으로 장사를 지내는 형태로 정착했다. 과거에는 마을 단위로 상여를 구비하여 몇 십 년 동안, 길게는 한 세기가 넘도록 공동으로 사용했다.

상여에는 다양한 형태로 나무를 깎아 정성껏 색칠한 목조각이 장식됐는데, 상여를 사용할 때는 조립할 수 있고 의례가 끝나면 분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사람인형의 경우에는 머리와 몸통을 분리할 수 있으며, 새의 날개에는 경첩이 달려있어 접을 수 있다. 상여에 장식하는 목조각상으로는 일반적인 남성과 여성인형이 있는가 하면, 죽은 이가 저승에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저승과 이승을 잇는다고 여겨지는 학, 금조와 같은 새들의 조각도 있다.

목조각상을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알록달록한 색채와 대담한 표현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물론 민화를 위시한 민속예술들은 대체로 화려한 색채와 유머러스한 표정이 특징으로 꼽혀왔다. 그러므로 목조각상이 기존의 민속예술과 질적으로 다른 특징을 지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목조각상에는 나름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학이나 봉황 같은 새들은 현대적인 장신구처럼 과감하고 화려한 문양과 색채로 표현되어 있으나, 그 얼굴만큼은 무표정하고 몸통은 간소하다. 심지어 어떤 학 조각의 경우, 날개가 생략된 채 구부러진 나무토막 하나에 표현될 만큼 담백한 모습이다.

사람들 또한 의상이 화려하나 얼굴과 팔, 다리는 몸통에 붙어있거나 밖으로 조금만 튀어나오도록 조각되어있다. 얼굴 표정은 새들처럼 무표정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화를 내거나 슬퍼한다. 도깨비를 제외하면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 거의 없다.

아마도 새와 같은 동물이건 사람이건 그 정체가 무엇인지, 사람일 경우에는 어떤 신분인지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 옷이나 몸통을 강조하고 표정을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이들의 무표정은 오히려 인상적이다. 마치 삶에 대해 그 어떤 화려한 문구도 쓰지 않겠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2층 상설전시장에 전시된 목조각상을 보면, 그런 인상이 더욱 강해진다. “본처와 첩”이라는 제목의 목조각은, 말을 탄 남성과 젊은 여성이 왼쪽에 있고 한참 떨어진 오른쪽에 ‘본처’로 보이는 여성이 서 있다. 아마 남성의 옆에 앉아있는 여성이 ‘첩’일 것이다. ‘첩’의 경우 저고리를 입고 있지 않아서 그녀가 남성에게 ‘성적인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처’는 눈이 찢겨질 정도로 화와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처럼 목조각상은, 이들 여성의 상황에 대해 핵심을 놓치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해방 후에 그려진 ‘국군’ 목조각상 또한 포악함과 두려움, 어안이 벙벙함을 한꺼번에 담고 있어, 화석화된 군인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당시 전쟁 때 군인들이 어떤 분위기를 풍겼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 외에도 남사당패의 모습을 담은 목조각상,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표현한 목조각상 등 다양한 작품들이 많다. 얼굴이 삼면에 조각된 상처럼 표현의 대담함과 세련됨을 보여주는 목조각상도 있다. 지금은 깔끔한 박물관의 흰 벽에 전시되어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과거 신당이나 상여, 혹은 집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을 목조각상의 모습이 더욱 기대된다.

사람들이 당대의 일상적인 문화와 그 정신 세계를 솔직하게 담은 사물을 직접 제작하여 생활 공간에 두는 행위란, 그때나 지금이나 환영할 일이다.

관람안내: 02-722-5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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