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퇴거에 저항, 대추리는 지금…

평화를 위한 삶은 현재진행형

김디온 | 기사입력 2006/08/23 [03:58]

강제퇴거에 저항, 대추리는 지금…

평화를 위한 삶은 현재진행형

김디온 | 입력 : 2006/08/23 [03:58]
지난 5월 대추분교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연일 뉴스에 보도되면서 이제 ‘대추리’라는 마을 이름은 누구에게나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흔히 ‘대추리 사태’라고 불리는 그간의 저항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이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올해도 농사짓자’ 구호의 의미

처음 이 곳에서 살 생각을 했을 때가 지난 4월이다. 4월 중순에 다니던 직장에서 2주 가량 휴가가 생겨 그 동안 내내 대추리에 살면서 직파(볍씨를 어지간히 길러 모내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땅에 파종하는 것)작업을 했다. 대추리도 여느 농촌과 다르지 않아 봄이면 씨를 뿌리거나 모내기를 하고 여름에는 물 관리와 병충해 관리를 해주고 가을엔 수확을 한다.

국방부는 평택 미군기지화 확장 저지투쟁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활력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농사짓는 일을 방해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것이 국방부 소유의 땅이고 미군기지가 들어설 자리이기 때문에 ‘군사보호시설구역’이라며 명분을 만들려 했다.

그러나 그 땅은 주민들의 동의 없이 강제로 소유권이 넘어간 땅이며, 주민들이 오랜 세월 직접 개간해서 만든 땅이었고, 계속해서 농사를 짓고 있는 논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보호해야 할 군사시설이 하나도 없었다. 농민들과 지킴이들은 농사를 계속적으로 지어 땅에 모를 키워내어, 저들이 주장하는 문서상 소유권을 넘어서 실제로 그 땅이 누구의 땅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평생을 농사로 살아온 사람들의 몸은 농사에 맞게끔 리듬이 맞춰져 있어서, 농사를 짓지 않으면 몸이 더 아프고 마음이 괴로워지기 때문에서라도 농사를 짓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올해도 농사짓자’는 구호는 국방부, 노무현 정권, 미국의 군사정책이 갖는 반생명적이며 파괴적인 행정을 넘어, 삶과 생명을 지키고 유지하며 생산적 활동을 해나가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평화 위협하는 美 군사전략과 韓 독재행정

노무현 정권과 국방부는 어떤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대추리와 도두2리에 사는 사람들을 몰아내고, 그 곳에 미군기지를 세우려 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기지 재배치, 즉 방어적 성격의 군대를 언제든 어디로든 공격할 수 있도록 그 성격을 전환하는 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대추리에서의 저항은 반평화적인 미국의 군사전략을 방해함으로써 세계의 평화를 이끌기 위한 목적이 있으며, 동시에 정부와 국방부가 주민들에게 해온 반민주적인 절차와 행위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항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재고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국방부가 영농을 차단하려고 2월~4월에 걸쳐 수 차례 농지에 침입하고 농수로를 끊고 대추분교로 침입하려 했을 때,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과 학생, 그 중에도 반전운동가, 평화주의자, 반제국주의자, 생태주의자, 여성주의자, 인권활동가들이 대추리로 몰려와 함께 싸웠던 이유도 그것이다.

미래 사람들의 삶과 연대하는 주민들


5월 4일 이후, 농민들이 일해야 할 논이 철조망 안에 갇혀버렸다. 주민들과 지킴이들은 풀이 무성해진 자신의 논과 황폐하게 짓밟힌 땅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철조망 바깥쪽으로 조금 남은 논을 애써 가꾸는 동안에도, 군인들은 차량이 지나가기 편하게 길을 넓힌다는 명목으로 모가 자라고 있는 논을 파헤치기도 했고, 보리밭을 파서 수로를 만들기도 했다.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었지만 주민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희망이라기보다 의지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 동안 평생을 땀 흘려 가꾼 땅을 빼앗기며,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있던 학교도 철거당하고, 계속 밀리고 또 밀리며 한스럽게 살아왔던 시간들을 이대로 접어버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 정부시책에 순순히 따르는 것이, 더 큰 희생과 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불러올 것을 예감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싸움을 놓지 않는 것이리라. 700일이 넘게 밤마다 진행되는 촛불행사에 가보면, 주민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미래의 다른 사람들의 삶을 불러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고령인 주민들은 ‘우리야 이렇게 늙어 죽으면 그만이지만, 내 자식들, 내 손주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런 꼴 당하고 살 것 같아 도저히 주저앉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처음 싸움에서부터 그랬지만, 평택 대추리와 도두2리 주민들은 이젠 자신들 삶의 문제를 넘어서 타인의 삶에 대해서도 윤리적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이 주민들로부터 양심의 울림을 느낀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주민들에게 연대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 앞에는 이러한 연대를 방해하고 주민들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려는 정부의 계획이 가로막고 있다. 다시 또 한 번의 큰 싸움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8월 말에 예정된 ‘강제퇴거’가 그것이다.

강제퇴거에 저항 ‘빈집을 모두의 집으로’

국방부는 빈집에 대한 철거를 하겠다고 주민들에게 공문을 보내왔으며, 언론을 통해 철거 계획을 밝히고 있다. 주민들이 살아온 힘의 마지막 뿌리인 마을공동체를 파괴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빈집에 오랫동안 기거하며 함께 기운을 북돋우며 싸우고 있는 지킴이들을 강제퇴거 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주민들의 집을 강제 퇴거시키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고 있는 국방부가,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에 앞서 지킴이들이 사는 집과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먼저 철거하러 공권력을 동원하겠다는 것은, 마을 전체 분위기를 더욱 침체시키고 주민들과 마을의 소일거리를 하면서 함께 정을 나누고 살아가는 지킴이들을 분리시키거나 구속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5월부터 심각한 인권침해를 자행하면서 강행하고 있는 불심검문으로 인해, 대추리와 도두2리에 방문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민들을 만나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처럼 주민들의 고립감이 더해가는 상황에서, 정부는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킴이들마저 강제로 퇴거시켜 마을을 파괴하겠다고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에 저항해 지킴이들과 주민들, 그리고 마을을 힘겹게 방문한 사람들이 빈집을 수리하고 의미 있는 공간으로 점유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빈집을 깨끗이 돌봐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직접 살기도 하고, 예술가들이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지킴이집 옆집’과 ‘인권지킴이의 집’, 그리고 19일 개관한 ‘대추리사람들’이라는 역사박물관이다.

9월 24일 평화를 위한 궐기

평택 대추리와 도두2리에선 너무도 치열한 투쟁이 현재진행형이다. 마을의 이장으로서 주민들의 싸움을 대표했던 김지태씨는 아직도 수감된 채 풀려나지 못하고 있고, ‘군사보호시설설정’의 위법성에 관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제기한 행정소송이 진행되고 있으며, 마을주민들과 마을을 방문하려던 많은 사람들에게 자행된 인권침해에 대한 법적 싸움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엔 미군측 일각에서 주한미군 감축계획에 따라 기존에 우리 정부에 요구했던 기지 규모를 축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는 언론보도(조선일보 2006년 8월 15일자)도 나왔다. 보도의 논조와는 별개로, 국내에서 해외에서 진행되는 끈질긴 투쟁이 미국 내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하는 소식이다.

빈집을 철거하러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 9월 24일 주민들의 집을 철거하려는 정부의 법률적 준비가 완료되는 시점에, 우리는 다시 한 번 평화의 염원을 담아 한 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서울에서도 평택미군기지협상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는 4차 평화대행진이 전개될 예정이다.

마을주민과 지킴이들은 그 날을 준비하며 김장거리 배추와 무를 심기 위해 이랑을 만들고 있다. 하루하루 농사를 놓지 않고 생을 붙잡고 있다. 이렇게 끈질기고 선명하게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기를.

자세한 현장 상황소식은 www.antigizi.or.kr
지킴이 김디온의 블로그 blog.jinbo.net/smf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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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딜레마 2006/08/25 [18:58] 수정 | 삭제
  • 눈가리고 아웅 떨어봤자다...
    국민 위해 국가가 존속하나...국가위해 국민이 존속하나...
    현정권의 최고의 패착은 대중을 너무 계몽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우월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게 자가당착이라는 것...
  • .... 2006/08/24 [21:52] 수정 | 삭제
  • 이것이 전쟁이 아니고 무엇일까.
    서울이었다면 좀 달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마을주민들이 농민이고, 연세가 많다는 이유로 더 쉽게 밀어버리려고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화의 이름으로 연대를!
  • dew 2006/08/24 [02:40] 수정 | 삭제
  • 반복되는 횡포..
    그러나 사람들의 저항은 조금씩 변화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 거리 2006/08/23 [16:56] 수정 | 삭제
  • 한 마을이 파괴되는 것을 볼 때 그것도 공권력의 힘으로 그리 되는 것을 보면서 분노하기보단 허탈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상을 버티고 일구며 평화마을을 만들어가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는 것에 힘을 받았습니다.

    지킴이분의 글을 직접 보니까 정말 느낌이 다르네요.

    사이트에도 가보았는데 다른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제 희망을 보태고 싶어요.
  • 평화를 2006/08/23 [15:27] 수정 | 삭제
  • 8월 24일(목) 오후 7시에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75차 서울 촛불문화제가 열립니다.
    평택미군지기확장반대 서울대책회의 상황실 (02-777-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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