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과 골방에서 희망없이 살지 않겠다”

활동보조인서비스,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위한 방안

윤정은 | 기사입력 2006/10/11 [06:33]

“시설과 골방에서 희망없이 살지 않겠다”

활동보조인서비스,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위한 방안

윤정은 | 입력 : 2006/10/11 [06:33]
인천에 사는 박길연(43세)씨는 지체2급 장애인이다. 1990년부터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게 되면서 현재는 휠체어에 의지해 움직이지만 심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 병이 찾아온 그때 그는 나이 27살이었고, 막 결혼하고 난 다음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면서 15년간 집안에서만 지냈다. 그를 돌볼 사람은 오로지 가족밖에 없었다.

“15년동안 집안에서 살았다”

3년 전부터 남편이 하는 일이 잘 안되어 남편이 다른 지역으로 내려가게 되어 떨어져 살고있다. 고3인 아들과 지내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몸을 일으켜 모든 일을 알아서 할 수밖에 없다.

절박한 상황에 닥쳐 “아파서 엉엉 울면서 일을 했다.” 중증장애인인 그는 5개월 전만 해도 “밖에 나올 생각은 엄두도 못 냈던” 사람이다. 이제는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혼자 이리저리 전화도 해보고, 전동휄체어를 지원 받아 밖으로 나오면서 가족 이외의 사람들도 만나게 됐다. 그동안은 너무 가난해서 전동휄체어는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불과 5개월 전의 일이다. 절박한 상황으로 인해 생존문제가 걸려 혼자 알아서 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고 표현했다. 현재는 인천의 ‘민들레 야학’에서 공부도 하고 있다. “40~50대 장애인들 중에는 집에만 있다 보니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접하기 힘들고, 세상 물정을 모르게 된다.” 비록 절박한 상황이지만, 되돌이켜 자신의 생활이 어땠는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방안 공기와 밖의 공기가 다르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고, “투쟁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내면은 변화했다. 이제야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조금 받으면 그도 스스로 움직이고, 배우고, 밖으로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15년동안 집안에서만 지내고 난 이제서야 말이다.

“시설 밖으로! 세상 속으로!”

10월 10일 오후 2시, 세종문화회관 앞에 50여명의 중증장애인이 모였다. 이날 집회는 ‘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화 쟁취 36일 노숙농성 투쟁보고대회 및 백만인 서명운동 선포식’을 가지기 위해서 마련되었다. 박길연씨도 인천에서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몇 시간에 걸쳐서 이 자리에 참석했다. 그의 표현대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와 투쟁하는 것”이다.

지난 8월 30일부터 중증장애인들은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노숙’을 하면서 투쟁을 계속해왔다.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를 위해서다. 36일에 걸쳐 중증장애인들은 길거리에서 자고 먹으면서 “정부가 해마다 700여억원을 들여 장애인수용시설을 확충하는 정책은 폐기하고, 활동보조인서비스를 비롯한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지원 정책을 강화하라”고 외쳤다.

활동보조인서비스 쟁취를 위한 노숙투쟁

활동보조인이란 혼자서 일상활동을 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의 일상 활동을 도와주는 보조인을 말한다. 이 역할은 그간 대부분 가족이 담당해왔다. 그렇지 않으면 장애인시설에 수용되어 거의 외부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하며 정작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하지 못한채 살아왔다. 장애인들은 장애인시설에 수용되는 것에 대해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로 끌려왔거나,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방도가 없어서 그야말로 죽지못해 밀려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애인수용시설은 그간 시설생활자들의 인권유린 문제를 야기했을뿐 아니라, 각종 비리와 횡령 문제 등이 불거져나와 사회적 관심을 받곤 했다. 그러나 언론에서 떠들 때 그때뿐, 근본적으로 장애인수용시설의 문제가 건드려지지 않았다.

최근 성람재단 비리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시설 내 성폭력 및 인권유린 사건이 계속되고 있고, 시설에 지원되는 많은 돈은 이사장에 의해 횡령되거나, 이사장과 그의 가족들이 부와 명예, 권력이 대물림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에 의해 감시되고, 관리되어야 하나 시설장의 횡령사실이 밝혀지더라도 버젓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도 종로구청 앞에서는 장애, 시민,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세 달이 넘도록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장애인들은 “시설과 집구석에서 처박혀 있도록 강요하는” 정부정책에 반대하며 “시설 밖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정부가 장애인들의 생존권 보장과 자립할 수 있도록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와 같은 자립생활지원 정책을 강화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될 지난 주에도 세종문화회관에서, 종로구청 앞에서 중증장애인들은 요구사항을 적은 플랜카드를 걸고 노숙농성을 계속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는 보도블럭 위에는 그들이 바라는 희망이 적혀있었다.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제도화되어야 시설과 골방에서 희망없이 살다 죽지 않고, 교육도 받고,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제도화 되어야 가족에게 불행과 고통을 주는 존재가 아닌 자기 삶을 계획하고 결정하는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투쟁하고 있습니다.”

중증장애인, 최소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

10월 4일, 노숙농성 36일째 중증장애인들은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면담에서 5가지 사항에 대해 합의하고, 농성을 풀었다. 합의한 5가지 사항에 대해서 “아직은 미흡한” 실정이지만 ‘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화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단’은 “보건복지부로 하여금 장애 유형, 연령, 소득 기준과 무관하게 당사자의 필요도가 일차적 기준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제해 냈고, 앞으로 종합적 계획 수립과 법률제정의 약속을 받아냈다”고 발표했다.

복지부와의 합의에 따라, 2007년에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소득 기준해 차상위계층 200%의 중증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10일, 노숙농성 투쟁보고대회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은 “활동보조인서비스는 빈곤정책이 아니며, 중증장애인이 사회속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권리”라며 “소득 기준과 무관하게 장애인 당사자의 필요도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전국에 약 215만명의 장애인 중에서 일상활동에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이 75만명이고, 그 중에서 일상활동에 타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애인은 34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보건복지부가 약속한 예산 400여억원은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지원에 비해 활동보조인서비스 제공이 너무도 절실한 중증장애인들이 많은 이런 사정으로 인해, 장애인들은 2007년도에 자신에게 그 혜택이 돌아올지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천해피해피자립생활센터’ 김정인 소장은 “예전에 가사도우미 지원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인천시에서 며칠 있다가 안된다”고 통보하면서 중지시켰다는 것이다.

김 소장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고, 휄체어에 의지해야만 움직일 수 있는 중증장애인이다. 그러나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 장애단체의 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고, 사무실 명의가 그의 이름으로 올려져있는 등의 이유로 “오너라서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하며, 현재 “나보다 더 처지가 좋지 않은 중증장애인들이 있을텐데…”라고 덧붙였다.

김정인 소장의 말처럼 애초에 정부가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장애인은 “아주 중증장애인, 누워서만 지내야 하는 와상장애인” 정도를 말했다. 물론 “눈 뜨면서부터 도움이 절실한 중증장애인”은 말할 것도 없지만,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한 부분은 장애인들의 일상생활 전부분이다. 또한 장애인 스스로가 주장하듯, “장애 유형, 연령, 소득 기준과 무관”할 수도 있으며, 당사자의 필요도에 따라 달라진다.

현실적인 재원마련 시급

장애여성공감 박영희 대표는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한 부분은 장애인들이 입고 먹는 문제, 화장실 문제라든가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 범위는 와상장애인뿐 아니라 활동서비가 필요한 범위가 다양하다. 즉, 학교에 다녀야 하는 장애인, 직장에 나가야 하는 장애인, 운동이 필요한 장애인 등 활동지원은 다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표 또한 2007년부터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시행되면 “기초생활 수급자이고,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에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영희 대표는 “한정된 예산에, 제한된 대상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람에 대한 평가가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2007년에 한해서 수급자 소득 기준 200% 차상위 계층이라고 한정했지만 이번에 합의하면서 ‘지차제의 실정에 따라 그 이상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장애단체들에서는 “지역에서 장애인들이 더 많이 싸워서 그 이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중증장애인들에게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해줄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제공되기 위해선 현재로선 재원마련과 체계적인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10월 4일, 보건복지부 유시민 장관은 중증장인들과의 면담에서 “2008년에는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현실적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중증장애인들은 이 약속이 지켜지고, “체계적인 계획 수립과 법률 제정을 통해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고, “투쟁은 지금부터”라며 앞으로 계속적인 투쟁을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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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반 2006/10/11 [08:45] 수정 | 삭제
  • 이 나라가 장애인에게 예산을 얼마나 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장애인을 얼만큼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느냐의 문제기도 하고요.
    무조건 퍼부으라는 것이 절대 아니지 않습니까.
    최소한 살아갈 인권인데.
    복지부는 헛 약속만 하지 말고 실효성있게 재원을 마련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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