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랑 좀더 놀걸”

명문학교에서 배운 건 끝없는 경쟁심

마리 | 기사입력 2006/10/25 [02:45]

“친구들이랑 좀더 놀걸”

명문학교에서 배운 건 끝없는 경쟁심

마리 | 입력 : 2006/10/25 [02:45]
나는 서울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미아 현대백화점 옆의 허름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나 구로 부근의 학원을 전전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사람들이 “명문”이라고 부르는 학교에 들어가면 명문 인생을 살 것이라고 생각해, 비싼 학교에 가 부모님 등골을 빼먹으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중1때까지 간직했던 ‘산타’에 대한 믿음처럼 오랫동안 그 말을 믿으며 붙들고 있었던 건, 주변에서 만들어주는 그럴싸한 분위기에 도취돼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명문학교 우수학생으로 길들여지다

중학교 땐 학교에서 자고, 학원 가서 눈이 빠지도록 공부하다, 집에 오면 새벽까지 게임을 하거나 키보드를 두들기다 쓰러져 잠이 들었다. 종종 자다가 학교를 빠지기도 했다.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하루 이틀 빠져도 학교에선 생활기록부를 무마해주기 위해 알아서 애써주었다. 내 등수에 걸맞은 혜택으로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친구들과는 쓸데 없는 농담이나 주고 받고,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노래방을 다녔다. 고민을 나누고 다독이는 친구가 몇 명 있었으나, 나보다 좋은 성적을 내는 친구가 있으면 어쩐지 께름칙했다.

고등학교 때는 비교적 조용하게 죽어지냈다. 누군가의 눈에 띄는 일이 피곤하다고 생각했고, 선생님께 조금이라도 예쁨을 받게 되면 친하던 친구들도 곧바로 나를 멀리하게 된다는 사실을 익히 몸으로 깨달아 알고 있었다. 역설적으로 서로 예쁨을 받고 싶어했지만, 대놓고 그런 편애를 받는 것은 싫어했으니까. 머리를 쥐어뜯고 싸우지는 않지만, 모의고사가 끝나고 나면 복도에 붙는 이름의 위치를 두고 항상 암묵적인 경쟁이 이뤄졌다.

쉬는 시간에 소설을 읽으면, 아까운 시간에 그런 책이나 읽고 앉아 있는 것이 건방져 죽겠다는 듯한 주위 시선이 따가워서, 곧바로 소설책을 덮고 소심한 손짓으로 서랍을 더듬으며 단어장을 찾았다. 문제집을 풀고 있으면, 언제나 오가면서 서로의 책을 들춰보고 “이 출판사 것은 아직 안 풀어봤는데, 어때?”라는 식으로 항상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얼마나 더 많이 풀고 있는지 체크했다.

시험 때마다 싸늘해지기는 했어도, 성냥갑만한 공간 속에서 사고하며 빽빽하게 짜인 일상을 견디느라 다들 서로 ‘친구’라는 의식은 갖고 있었다. 입시와 대학이라는 거대한 괴물 앞에서 서로 측은하게 여기며 등을 다독여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고만고만한 동료의식은 거기까지, 우린 곧 냉정한 수험생으로 돌아왔다. 수능이 끝나면 언제나 어떤 선배가 일등을 먹었는데 그 선배가 그럴 줄 몰랐다네, 어떤 선배는 재수를 하게 생겼는데 어쩐지 성격도 별로였다네, 하는 말들이 후배들 사이에서 오갔다.

선생님들은 우수학생과 관련한 신화를 만들어 설파하시기에 바빴다. “그 선배는 너희 때 몸이 부푼 것처럼 뚱뚱했는데 대학 가더니 사람이 되어서 왔다, 그러니 너희도 참고 견뎌라. 성적 안 좋으면 좋은 선배도 못 된다.” 가끔 이런 말씀도 하셨다. “다른 학교 애들이 밑에 기본적으로 깔아주니 감사하라.” 모두가 깔깔댔다. 그리고 우리는 무럭무럭 자라서 명문고의 우수학생들로 거듭났다. 물론 나도, 잘 길들여졌다.

토마토 하나와 ‘동료의식’

이렇듯 십 년 넘게 철저하게 경쟁에 길들여지고 그로 인해 그럴싸한 관심을 받으며 자란 내게, 잘난 또래친구들은 언제나 시기의 대상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양한 친구들과 만나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에게 가장 힘든 것은 다른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 매우 건강하다고 여겨왔던) 동료의식에 대한 것이다.

상식이 풍부하거나 어떤 분야에 해박한 친구들을 보면 ‘나는 언제 저렇게 되지?’ 하며 엄청난 열등감에 시달렸다. 그러다 주변의 어떤 친구를 보면서, 나의 이런 생각이 애초에 잘못 길들여진 결과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그 친구는 창의적인 또래친구들을 보면 ‘쟤랑 같이 어떤 일을 해볼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기업에서 하는 사회공헌 프로젝트의 하나로 미디어 소외 지역의 아이들을 찾아가 미디어교육을 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엔 도시의 작은 공부방을 다녔는데, 한 번은 어르신들이 농사를 짓고 아이들은 간식으로 텃밭에서 수박을 따다 먹는 (나로서는 어느 책에서나 보았을 법한) 곳에 가게 됐다.

이 곳에서 우리의 프로젝트는 착착 진행되었는데, 그건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서로의 말을 경청해주는 태도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보통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나처럼 학부모든 학생이든 경쟁에 익숙해져 있어서, 자신이 큰 목소리를 내고 다른 친구들보다 월등해 보이려 하기 십상이다. 그 과정에서 친구가 나보다 잘 하는 일이 있으면 조마조마하거나 분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내 인생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몇 안 되는 깨달음의 순간 중 하나는, 바로 그 아이들과 간식을 먹게 되었을 때였다. 잔디 위에서 아이들과 영화촬영을 하다가, 잠깐 쉬자는 말에 마을 총무님이 토마토 몇 개와 먹음직한 수박 몇 통을 가지고 오셨다. 그 마을에서 토마토 재배를 많이 하는지, 부쩍 토마토 먹을 기회가 많았다.

다음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에는 토마토가 하나 남아 있었는데, 과도가 없어서 대여섯 명 되는 아이들이 함께 토마토 하나를 먹기에는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가위바위보 할까? 누가 먹을래?” 나는 토마토를 집고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물었다. 아이들이 만드는 영화에서 주인공 역으로 맹 연기를 펼치던 남자아이가 더 당연하다는 듯이 “선생님 괜찮아요. 같이 한 입씩 먹으면 되잖아요.”라고 말하고는 토마토를 가져갔다.

내 손을 떠난 토마토가 아이들 사이를 빙빙 돌다 마침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토마토를 한 입씩 베어먹은 아이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왜 저 생각을 못 했지?’ 가위바위보로 한 명에게 몰아주기에 익숙해지고, 1등을 하는 아이가 반장을 도맡아 하고, 상을 받은 한 명이 언제나 제일 먼저 선생님들 입에 오르내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너무나 익숙하게 살아왔던 내 꼬맹이 시절이 스쳐갔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

서울에 와서 친구들과 이 이야기를 했다. “토마토가 하나만 있으면 어떡할까?”하는 나의 질문에 친구들은 “대여섯 명이나 되면 조금밖에 못 먹을 텐데, 그냥 몰아주는 게 낫지 않아?”라든가 “칼로 똑같이 나눠야지. 그래야 서로 안 싸우지”라고 답했다. 그 아이들 이야기를 하자, 다들 “그게 가능해?”라며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애들이라고 마냥 싸울 줄만 알겠는가, 사실 우리보다 성숙한 소년소녀들이었다.

만화가가 꿈이라는 한 언니는, 만화계가 작아서 어떤 작가는 문하생이 자기보다 성공하는 것을 두려워해 잘 키워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끼리 따로 만화작업실을 꾸리는 일이 요새 더 많다고 한다. 대학에 와서는 자신의 강의에 토를 다는 학생을 분하게 생각하며 마땅찮은 학점을 주는 교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듣는다.

대학원생을 라이벌로 의식하면서 남의 글에 자기 이름으로 버젓이 책을 내는 교수 이야기도 들었다. 몇 안 되는 교수직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경쟁을 견디며 그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닌가. 동료의식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승자독식은 어쩔 수 없으니 강대국에 붙어야 산다’고 말하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서 땡땡이나 치면서 친구들이랑 좀더 놀 걸, 이제 와서 나의 지난 학창시절이 허탈해 진다. ‘친구’라면 서로의 성장을 격려해주고, 붙잡아 주고, 고민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 건데. 마음 속에 어떤 장애가 있어서 스스로 벽을 쌓고 경계를 만들어 혼자 열등감에 시달렸다. 지금은 후회가 되는 부분이 많다. 사회에 나가서 생활할수록,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이들과 친구하기 힘들어질 텐데, 그 소중한 시간을 삐뚤어진 생각으로 ‘친구는 필요 없다’며 날린 것 같아서 말이다.

어차피 혼자인 세상이라 일단 나부터 잘나고 봐야 한다는 생각과, 혼자인 세상이기 때문에 더더욱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충실하고 함께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 두 생각의 차이는 깻잎 한 장이었는데, 그걸 깨닫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일은 정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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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6/11/01 [14:46] 수정 | 삭제
  • 자식들이 어떤 인물이 되길 바라면서 학교에 보내고 양육을 하는지 돌아봐야죠.
  • 독자 2006/10/31 [20:57] 수정 | 삭제
  • 기사 잘 봤습니다.

    그런데 마리님. 혹시. 그 미디어교육을 어떤 단체에서 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 전공이 언론정보쪽이라.. 미디어교육에 평소 관심이 좀 있어왔는데..
    어디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전혀 정보가 없어서요.
  • 흠냐 2006/10/30 [22:45] 수정 | 삭제
  • 한겨례 필진네트워크에 가면 박노자님의 블로그가 있습니다. 그곳에 올라온 글입니다.
  • lovemind 2006/10/30 [21:01] 수정 | 삭제
  • 아래 박노자 샘의 글 제목을 알 수 있을까요?
    한겨레에서 아무리 검색을 해도 찾을 수가 없군요.
    아니면 링크 주소를 알려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__)

    어째, 쪽글만 보면 본 기사보다 박노자 샘의 글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네요.
    본 기사도 잘 읽었습니다.
  • 무지개 2006/10/29 [22:52] 수정 | 삭제
  • 별 것은 아니지만 박노자 선생님은 오래전에 한국으로 귀화하였고 원래는 러시아분 이셨습니다.
    그 외는 나비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나비 2006/10/29 [17:46] 수정 | 삭제
  • 박노자님은 노르웨이 사람이고 노르웨이 국립오슬로대학 교수님이라고 합니다.
    상당히 진보적이고 웬만한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에 대해 잘 아십니다. 한국학 교수라고 하던가... 직접 만나면 아주 겸손하시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분의 글이 내가 몰랐던 것에 눈을 떠주게 해주고, 예리함과 따뜻함을 겸하고 있어 좋아합니다.
    마리기자님도 비인간적인 환경을 넘어 부디 따뜻한 인간으로 살아남으시길...
  • 마리 2006/10/28 [20:48] 수정 | 삭제
  • 나비님, 박노자님께서 쓰신 관련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
  • 평소 2006/10/28 [00:51] 수정 | 삭제
  • 좋은 글이네요 :)
    잘 읽었습니다~
  • kimyun 2006/10/27 [20:05] 수정 | 삭제
  • 생각 안 해보려고 하고 잊으려고 하고 지금 눈앞만 바라보려고 해서 그렇지, 돌아보면 얼마나 비극적인 일들을 겪어왔는지 모르죠. 입시나 입시위주 학교같은 사회구조 때문에 말이에요.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랫분이 올려주신 박노자님 글도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마리님 글이 더 좋지만요..
  • 나비 2006/10/27 [17:22] 수정 | 삭제
  • 마침 교육에 관련한 박노자님의 글이 있어서 소개 하고 싶네요.
    한겨레 신문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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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사람이 자신이 행복한 줄을 모른다는 말은 역시 맞는 듯합니다. 제가 소련시절에 학교에 다녔을 때에 자신을 꽤나 불쌍한 존재로 생각했어요. 보기도 싫은 교복을 입지, 교련 수업에다 매주에 무슨 군사 행진을 또 하지, "국사"교과서 내용이 어린 저만 봐도 거짓말투성인데, 그걸 가지고 시험을 쳐야지... 하여간 기분 좋게 등교하는 적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한국 학교들의 학생들이 사는 현실을 보니 제가 그나마 행운아이었던 것 같아요. 소련 학교도 꽤 권위주의적이며 억압적이었는데, 박정희주의적 학교와 달리 딱 두가지, 즉, 체벌과 전학급, 전교의 일률적인 등수 매기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저 자신이 "상위권"이라고 대충 알고 있었는데, 몇 등인줄 모르고 졸업을 했어요. 그건 정말로 다행입니다. 사실, 거의 전부가 인테리 가정 출신인 "상위권" 아이들에 대해서 그렇지 않은 - 대다수가 노동자 가정 출신의 -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게 보는 면이 있었는데, 만약에 거기에다 각 아이에게 일률적인 등수를 매겨 "너는 꼴지야"라는 식으로 대했다면 저희 학급의 내부 관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민하기 끝이 없는 사춘기에, "25등", "30등"의 꼬리표를 달고 산다는 것은 보통 쉬운 일입니까? 당연히 운이 좋아 책이 많이 비치돼 있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말 몇 마디 하게 돼 있지요... 소련도 물론 계급사회이었지만 사회안정의 차원에서 계급질서를 숨기고 "평등"의 이데올로기를 어느 정도 표면적으로 유지한 것이지요. 그런데 한국 교실 같으면 "등수"의 위계질서가 말그대로 모든 사회적 관계 형성의 기반이 되는 모양입니다. 어릴 때부터 문화 자본을 상당히 물려받은 데다 적응력이 뛰어난 쪽에서 "나는 우승자"라는 의식이 키워지고, 또 그렇지 못한 쪽에서는 "나는 열렬한 자"라는 자괴감을 안고 사는 것을 일찌감치 연습을 하고... 아마도 사회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흉악한 사회적 범죄라면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평등지향성을 이러한 수법으로 일찍 갈아뭉개고, 아이들을 성적이라는 자본을 열심히 축적하는 "작은 자본가"로 키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어릴때부터 친구 집안의 평수를 따지기 시작하지요... 정신적인 의미에서는, 이와 같은 사회화 과정은 아이를 일찍이 거세시키는 것입니다. 순응주의적 현실과 뭔가가 "다른" 것을 상상조차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성장 과정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살아남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정말로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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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때명문대생 2006/10/27 [00:43] 수정 | 삭제
  • 저는 학교는 사회의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들도 사회의 구성원이고 부모들도 그렇습니다. 선생님들이 특별히 경쟁적이라 학교가 엉망진창인 거 아니죠.
    또 한국사회만 그러냐? 그건 또 아닙니다...

    성숙한 개인이 성숙한 사회를 만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기자님처럼 그런 기성세대들이 싫어서 20대부터 도망만 다녔는 데... 지금은 10년전보다 더 나아졌을까요?
    기자님은 도망다니지 말고 열심히 싸우면서 사세요. 도망다니면 싸우는 거만큼
    지치거든요.
  • 나비 2006/10/26 [19:18] 수정 | 삭제
  • 정의롭지 못한 교육현실, 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이런 것들을 보면 문득 우리의 미래에 대해 섬득한 생각이 듭니다. 부정의 속에서 부정의의 혜택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부정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요즘 회자되고 있는 최규하 전 대통령처럼 부정의에 눈 감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런지...
  • tsr 2006/10/25 [22:21] 수정 | 삭제
  • 여러가지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요. 정말 친구들이랑 좀더 놀걸 그랬어요.
  • 모짜렐라 2006/10/25 [14:43] 수정 | 삭제
  • 학교교육 정말 문제 많은 것 같아요.
    인성교육은 절대 불가능한 구조.
  • rjf 2006/10/25 [12:59] 수정 | 삭제
  • 학교얘기와 동료의식 얘기중에 공감가는 얘기가 많네요.
    경쟁이란 거 사람의 마음에 해를 입히죠.
    친구들 사이에 경쟁심이라는 마음이 흐를 때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이 나요.
  • 오렌지 2006/10/25 [06:05] 수정 | 삭제
  • 학교마다 차이는 있을 망정 사실은 우리 때도 그랬다는 걸 생각해보니 더 아득하고 괴로워지는 것이 아침 식사를 거를 것 같습니다. 정말 우정이고 인정이고 다 파괴하는 학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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