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이

윤하 | 기사입력 2003/06/26 [18:07]

완벽한 아이

윤하 | 입력 : 2003/06/26 [18:07]
지난 주, 영국에서 난치병을 앓고 있는 한 소년의 부모들이 아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인공수정을 통해 동생을 출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태어난 아이의 몸을 이용하면 소년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어린 아이가 투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한 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참 잘된 일이다. 그리고 조직세포가 거의 동일한 사람으로부터 이식하는 방법 외에 달리 치료법이 없는 난치병의 경우, 이 방법은 현명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지만, 이러한 순진한 생각 속에는 너무 많은 문제점들이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 보도를 보며 ‘완벽한 아이’를 향한 인간의 경주가 시작되었다는 인상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동안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유전의 모든 비밀이 밝혀진 것은 ‘게놈지도’가 완성되면서부터다. 인간에 의해 유전정보가 모두 파악됨으로써 문제가 있는, 즉 난치병나 결함이 있다고 판단되는 유전정보를 태어나기 전에 재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재조작된 인공 수정란을 어머니의 몸 속에 넣으면 10달 후에는 유전적으로 완전한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요즘 생명공학이 관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그동안 백혈병이나 혈우병 등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병들을 출생 전에 치료해 건강한 아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파생될 문제들은 너무나 심각하다. 우선 생명공학은 생명을 창조하고 키우는 역할을 해왔던 여성의 자궁을 이미 만들어진 아이를 그저 키우기만 하면 되는 용기로 전락시킨다. 아이를 만드는 것은 의사들이며, 여성들의 자궁은 만들어진 태아를 잘 키우면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결국,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임신과 출산 등 여성 고유의 일은 여성들의 손을 떠나 의사들에 의해 관리될 것이다.

아울러, 더 많은 병의 치료와 생명공학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실험들 속에서 난자나 여성들의 몸은 마치 실험도구처럼 함부로 취급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오늘날의 고도의 과학기술에도 불구하고, 인공 수정된 수정란은 어머니의 자궁 속이 아니고서는 어디에서도 키울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어찌 ‘난자 판매’나 ‘자궁 임대’ 같은 일이 자행되지 않겠는가? 결국, 이러한 생명공학은 여성들의 몸을 실험도구로 전락시키고 상품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두 번째, 생명공학의 기획은 인간의 존재를 하찮게 취급하는 반생명주의를 담고 있다. 이번에 영국에서 태어난 아이의 경우는 몸의 무언가를 나눠줘도 그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듯 하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심이 이렇듯 소박한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어, 간이나 심장 등 하나밖에 없는 기관을 이식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인 어린 자식, 부모 또는 애인이 있다면 이런 장기를 이식시켜 줄 아이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는 장기를 이식시켜 주고 어떻게 될까? 결국 철저히 장기 이식만을 목적으로 하는, 소모품이 될 아이들의 탄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완벽한 아이에 대한 소망 속에서 우리는 변형된 ‘우생학’적 의식을 본다. 병도 없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조금도 흠이 없고, 게다가 외모도 수려하고 지적으로도 뛰어난, 소위 ‘완벽한 아이’의 추구는, 결국 정신적 또는 신체적으로 불편을 가진 사람들, 유전병을 앓고 있거나 유전적 요인에 의해 불편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또 특정 병에 걸릴 가능성을 더 많이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 게다가 키도 작고 못생긴 사람들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열등하다고 판단하는 우생학적 사고를 본다. 따라서 이런 출산기획이 보편화된다면 ‘완벽한 아이들’ 외에 순전히 어머니를 통해 태어난, 유전적으로 조작을 거치지 않은 아이들은 마치 불량품처럼 취급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과학은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애시당초 과학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본다. 그리고 요즘은 어쩌면 이 둘은 끝까지 함께 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도덕성은 과학과 비타협적으로 싸우지 않고서는 지켜질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대, 과학과 비타협적으로 싸운다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 인류는 어쩜 파멸의 길로 접어들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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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바 2003/06/28 [15:23] 수정 | 삭제
  • 저는 인류의 끝없는 욕심이 두렵습니다. 오래 살기를 바라는 욕심도 두렵고 완벽한 아기를 탄생시키려는 욕심도 두려워요. 여성의 몸이 지금보다 더 도구화되고 그 과정에서 소모품이 될 아기들이 생겨나는 것도.

    친구와 그런 얘길 해봤는데 친구 말은 자본주의도 겪었는데 그 시대가 되면 또 거기에 맞춰 살게될 거라 하더군요. 인간은 그런 존재인가 싶기도 해요.
  • mani 2003/06/27 [15:57] 수정 | 삭제
  • 아기를 치료하기 위해 또 아기를 낳을까,
    그런 상황이 안 닥쳐봤으니까 뭐라 지금으로선 자신있게 말하기 어렵지만,
    좀 끔찍한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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