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버니지아공대 참사대책은 ‘총을 버려야’

범인 조승희에 대한 관심을 넘어

윤정은 | 기사입력 2007/04/24 [07:09]

[논평] 버니지아공대 참사대책은 ‘총을 버려야’

범인 조승희에 대한 관심을 넘어

윤정은 | 입력 : 2007/04/24 [07:09]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으로 온통 떠들썩하다. 사건이 일어난 미국 사회는 물론 범인의 국적인 한국에서도 시끄럽긴 마찬가지다. 한국 언론은 사건이 일어난 후부터 지금까지 범인이 한국 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모든 이슈들을 제치고, 연일 ‘조승희 사건’을 톱기사로 보도하고 있다.

한국언론에 비친 ‘조승희 사건’

이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의 과도한 민족주의 문제가 재확인됐다. 한국 사회가 구조적으로 가해온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 문제는 돌아보지 않는 한국인들이, 이 사건을 통해 그 동안 일군 ‘아메리칸 드림’이 일그러질까봐 곤혹스러워 하는 듯했다.

자녀교육과 성공신화를 가지고 미국으로 향한 한국인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우리가 그동안 봤던 한인교포들의 모습은 소위 성공신화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거나, 명문대학에 입학안 교포2세들 뉴스들이었다. 한국 사람들로서는 전세계를 놀라게 한 범인이 한국 출신이라는 점에서, 즉 이민자의 극도로 부정적인 모습을 통해서 많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한국 언론들 또한 한국 국적의 조승희가 왜 그런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는지 궁금해하며, 연일 범죄의 원인을 추정, 진단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현재로선 조승희의 첫 범행 타켓이 된 여학생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밝히는 것이 관건이라고 일제히 보도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이목은 이들의 관계에 대한 수사 결과에 집중되고 있다. 심지어 언론들은 조승희 가족은 어떤 사람들이고, 누나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까지도 기사화해서 알리지 않아도 될 정보까지 공개하기도 했다.

총기 소지가 허용된 사회의 모습

지금도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을 찾고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총기’다. 학교 안에서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죽인 이 사건은 조승희라는 한국 국적 미국이민자가 규정을 어기고, 총을 가지고 수업중인 교실로 난입해 무방비의 학생들과 교수를 쏘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조승희에게 총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또 그가 총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면 삽시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는 사건을 저지를 수도 없었다.

따라서 이 사건의 원인을 조승희 개인의 성장배경이나 분노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는 개인들은 수없이 많다.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 개인들과 사회에 불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도처에 있다. 개인의 정신적인 문제나 분노를 ‘총’이라는 무기를 통해 극단적인 폭력의 방식으로 폭발시킬 수 있는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문제는 돈을 주면 쉽게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사회구조인 것이다.

개인에게 오랫동안 억압되어 있던 분노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폭력으로 터트리고자 할 때, 총보다 유용한 수단은 없을 것이다. 총은 주머니 속, 가방 속, 심지어 몸에 지닌 채 이동하기에도 편리하다. 휴대하기도 쉬어 남의 눈을 피해 목표물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을뿐 아니라, 방아쇠를 당길 정도의 미약한 힘만으로도 다수의 사람을 일순간 제압할 수 있다.

총을 든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총을 꺼내 든 순간 강자로 군림할 수 있다. 단지 사람들을 향해 총구만 들이대고 조준하는 시늉만 해도 총을 들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일사천리하게 통제할 수 있고, 공포에 떨게 만들 수 있다. 총을 든 강자는 눈짓 정도의 미동만으로도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벌벌 떨게 되고, 그의 앞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할 것이므로, 어느 때보다 강자로서의 기분을 만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도 총을 들지 않은 교실에서, 어떤 누구도 총을 들 수 없도록 규제된 학교에서, 오로지 유일하게 총을 들고 우뚝 서있던 조승희는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사람들 사이로, 죽은 척 시늉하고 누워있는 사람들 사이를 그 순간만큼은 주눅들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란

사건 발생 후, 미국 사회에서 이 사건의 원인을 총기 소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목소리에서, 오히려 총기 규제를 완화해야 유사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가 크게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극악한 살인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소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반적인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총기 소지가 허용된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총을 가진 사람과 총을 가지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이런 경험을 거치고 불안과 공포를 내면화한 사람들과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개인들은 쉽게 총이라는 자위수단을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자유로운 총기 소지로 인해 범죄자에 의해 일순간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힘없이 쓰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보다 안전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시민들이라면 이 문제를 정치적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하려는 세력들에 저항하고, ‘총’이라는 무기라 아니라 법과 도덕의 힘으로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미국 사회가 총기소지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와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이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은 제거되지 않을 것이며, 해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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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과나무 2007/04/25 [15:46] 수정 | 삭제
  • 한국에 총기사용이 허가된다면 총기사건이 끊이지 않겠죠.
    엄하다는 군대에서도 총기사건들이 계속 발생하는데, 개인에게 총기를 '휴대'할 수 있게 한다는 게 참.. 이해가 가지 않는데.
    이번 사건을 보니까 미국사회에 대해서 다시 보게되더군요.
  • 로드 2007/04/25 [09:55] 수정 | 삭제
  • 하지만 똑같이 총기소지를 허용하는 캐나다에서는 총기 사고가 훨씬 적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또 미국 외의 다른 나라에서 총기소지가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과연 미국처럼 수시로 교내 총기사고가 발생하고, 1년에 1만명 넘는 희생자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까요?

    저는 (볼링포컬럼바인에서 나오는 것처럼) '공포'가 지배하는 폭력적 미국사회에 그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국내에선 폭력범죄의 만연으로 국외로는 전쟁과 같은 무력지배로 나타나고 있구요. 총기소지 허용은 근본적인 원인이라기 보단, 그런 공포정치에서 나오는 하나의 '정책'에 불과한게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볼 때, 만약 총기소지가 불법화되어도, 상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수십명이 사망하는 '대형'사고는 조금 줄겠지만요...
  • 덕이 2007/04/25 [04:19] 수정 | 삭제
  • 총기사용 규제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강화하겠다니.. 음. 이해가 안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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