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블로거 세상을 꿈꾸며

‘니키의 홈페이지’ 방문기

이정인 | 기사입력 2007/05/21 [17:07]

레즈비언 블로거 세상을 꿈꾸며

‘니키의 홈페이지’ 방문기

이정인 | 입력 : 2007/05/21 [17:07]
니키, 그녀를 만난 적은 없다. 생면부지의 니키, 그렇지만 마치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에 들뜰 정도로 반가웠다.

몇 주 전 인터넷으로 레즈비언 관련 자료를 찾다가 어떤 홈페이지에서 “당신은 결코 레즈비언을 볼 수 없어”(You never see lesbian)이라는 상당히 흥미로운 제목의 글을 보게 되었다. 내용은 레즈비언 캐릭터가 나오는 미국 드라마들을 레즈비언의 시각에서 분석한 것이었다.

제목에서처럼, 레즈비언 캐릭터가 속속 매체에서 보이고 있지만 매체 속 레즈비언들은 현실 속의 레즈비언과 다르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영어의 압박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제목에서부터 뿜어지는 바다 건너 외국 레즈비언과의 조우는 그녀의 이야기를 더 보고 싶어 홈페이지를 샅샅이 탐색하도록 만들었다.

니키는 레즈비언을 주제로 한 다양한 글쓰기를 통해서, 다른 레즈비언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자신의 생각과 분석이 담은 글들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더불어 그녀의 글들은 레즈비언 연구나 여성학과 같은 전문적인 분석보다는 덜 학문적이다. 오히려 이러한 방식 때문에 그녀의 글은 더욱 자유로워 보였다.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기에, 내가 느낀 반가움처럼 그녀의 홈페이지를 들르는 현실의 많은 레즈비언들에게 힘을 주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레즈비언의 삶을 드러내는 활동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아이디어와 영감을 제공하고자 하는 니키의 희망이 이미 실현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니키의 홈페이지를 보고 신기했던 점은, 그녀의 생각이나 글들이 생소한 것들이기 때문은 아니다. 어떤 연구기관에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한 레즈비언으로서 자기 나름대로의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했다. ‘나 홀로 사이버 NGO’를 운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경험 드러내기에서 적극적인 소통으로

물론 니키의 경우처럼 주위에도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는 흐름들이 있기는 하다. 특히 한국에선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는 블로그들이 폭발적으로 유행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과 함께 주류 언론매체에 대항해 저항적인 대안매체로서도 그 가능성과 영향력이 점쳐지기도 한다.

즉, 주류 언론매체에서 가시화되지 못한 채 소외되어 온 소수자들의 경험이, 기존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되고 소통될 수 있는 기회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인터넷 상의 블로그들이 일방적인 ‘경험 드러내기’ 공간으로 주로 활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아쉬운 점도 있다. 경험을 드러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간 감춰지고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와 사연들이 더 풍성해졌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동시에 기존의 다른 블로그들과 비교해서 비록 세련된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레즈비언으로서 다른 레즈비언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네트워크 만들기를 희망하는 니키의 홈페이지가 더욱 솔직하고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필자도 역시 블로그를 사용하고 있는 블로거다. 인터넷의 익명성이 주는 운신의 자유로움이 있기 때문에, 블로그에선 레즈비언 정체성을 밝히는 것은 물론이고 소소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리고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은 채 다른 레즈비언 친구들의 이야기와 경험들을 접하면서 많은 위안을 얻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사이버 상에서 1촌이나 이웃으로 엮어 있더라도 뭔가 부족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러던 중 바다 건너 레즈비언의 홈페이지를 만나게 되어 나머지 부분이 채워지고 있다. 일단은 나의 블로그부터 ‘소통’의 문을 열어놓으려 한다. 어떤 방식으로 소통을 할 것인지는 더 많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영어 사전을 뒤적거리며 니키에게 반갑고 고마운 마음을 이메일에 담아 보내려 한다.

니키의 홈페이지: www.nickihastie.demon.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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