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고 더 똑똑해지는 것 같아요”

이혼 당사자 여성들, 이야기 마당 열어

김홍미리 | 기사입력 2007/08/28 [03:19]

“이혼하고 더 똑똑해지는 것 같아요”

이혼 당사자 여성들, 이야기 마당 열어

김홍미리 | 입력 : 2007/08/28 [03:19]

<필자 김홍미리님은 한국여성의전화연합 활동가로, 우리 사회에 새로운 이혼 담론을 만들고 여성의 경제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실천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나날이 높아지는 이혼율은 한국 사회에서 이혼이 더 이상 낯설거나 드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이혼에 대해 터부시하고 사회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이 남아 있다. 이러한 편견은 이혼 당사자들로 하여금 ‘이혼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혼 당사자들은 어떻게 살아 가고 있을까? 부모와 혈연 자녀로 구성된 소위 ‘정상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는 편견 어린 시선을 받으며, ‘이혼녀’라고 하는 다분히 비난 섞인 이미지와 동고동락하면서 살고 있는 이들(우리)의 삶은 과연 어떨까?

“이혼하고 나서 점점 더 똑똑해지는 것 같아요. 나 혼자서 책임지고 알아서 해야 하니까 이것저것 찾아보고 따져보고 하는 거에요.”

지난 달 26일 인사동 한 켠에서는 이혼 당사자 여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혼하고 좋은 점’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는 새로운 이혼 담론을 만들기 위한 활동의 하나로, 한국여성의전화연합에서 기획한 것이다. 여성의전화는 2005년부터 여성-이혼 당사자 모임을 꾸려왔고, 지난 3월 “쉬운 이혼은 없다”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이번에 열린 “이혼당사자 이야기 마당”은 “당당한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당나귀)’라는 부제가 붙었고, ‘자유롭게 말하고 잘 들어준다’라는 단순한 원칙 하에 진행됐다.

이혼하고 나서 비로소 “내가 ‘나’인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 “일상을 누구에게 지배 받지 않고 자유롭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나의 발전을 위해 투자하고 배워나갈 수 있어서 좋다”는 사람 등, 참여자들은 지금껏 말해본 적이 없던 이혼의 좋은 점에 대해 털어놓았다.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를 통해, 이혼은 지금까지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며느리였던 여성들이 온전히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식사 준비, 집안 청소 등을 내가 시간이 날 때 해도 된다’는 사실에서 오는 (사소하지만 엄청난) 해방감을 이야기하는 여성도 있었고, 남편과의 소모적인 감정 싸움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이혼이 주는 안정감이 아이들을 더 밝아지게 한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이날 모인 이혼 당사자들은 이혼의 좋은 점을 발견하는 한편, 이혼이 주는 일상의 불편함과 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불편함의 주범은 다름아닌 주변의 ‘편견’이었다.

특히 일부 몰지각한 교사가 “가정환경도 안 좋으면서~” 하며 자녀에게 차별적인 언동을 하는 경우나, 이혼 가정의 자녀를 무조건 문제아로 낙인 찍는 문화 등은 해당 자녀뿐 아니라 이혼 당사자들이 겪는 가장 큰 차별로 꼽혔다.

그런가 하면 이혼여성을 ‘주인 없는 여자’로 보는 성차별적 시선으로 인해 언어적, 물리적 성희롱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었고, 다짜고짜 ‘저러니 이혼했지!’라고 간주해버리는 것, 관공서 등에 서류를 제출할 때 서류와 본인 얼굴을 번갈아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것 등 일상에서 발생하는 편견들은 끝이 없었다.

“그래, 나 이혼했어! 나 잘 살고 있다고!”

인사동에 모인 열한 명의 이혼 당사자 여성들은 주변의 불편한 시선이 문제일 뿐, 이혼이 삶에 가져다 준 안정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비록 한국 사회가 ‘남편 없음’을 이유로 종종 불편함과 부당한 차별을 강요한다 하더라도, 또한 경제적인 어려움이 당분간 지속된다 하더라도, 그 ‘남편 없음’이 가져다 주는 평온함과 안락함은 온전히 이들(우리)의 것이다.

※ 현재 이혼 당사자 모임 "당나귀"에서는 한부모 가정의 자녀가 학교를 비롯해 일상에서 겪는 차별 사례를 모으고 있다.

문의: miri.hong@gmail.com, 02-2269-2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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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가현 2007/09/01 [23:29] 수정 | 삭제
  • 를 지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바라지도 않고 딱 그만큼만. 혼자 살고 여성이고 나이 적지 않다면 아래로 내려다 보거나 비딱하게 보고 싶어하지요. 그런 처지에 감히 행복하면 이상한가 봐요. 모두들 다 똑같이 살아야하냐고 외치고 싶을 때, 종종 마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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