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험주의자”

밤하늘 별을 보는 사람 박현

김영선 | 기사입력 2007/10/08 [21:50]

“나는 경험주의자”

밤하늘 별을 보는 사람 박현

김영선 | 입력 : 2007/10/08 [21:50]
언제인가, 하루에 한 번씩 하늘을 보자는 다짐을 했다. 도시에서는 길을 걸을 때나 차를 탈 때나 빽빽한 건물밖에 볼 수 없으니, 하늘을 바라보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 실현되려면, 고개를 한껏 젖히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현은 하루에 하늘을 몇 번 올려다 볼까. 현이 바라본 하늘은 맑을까, 흐릴까. 별이 많을까, 마냥 컴컴할까. 박현은 천체 물리학자를 꿈꾸는 ‘밤 하늘을 보는 사람’이다.

레고로 로봇 만들기

재잘재잘 이야기를 잘하고 으하하 웃기도 잘해서 같이 있으면 편하고 즐거운 현이 그 복잡하고 어려운 물리학을 배우는 사람이라니! 나는 이과 쪽에는 영 ‘젬병’이라 수학과 과학에 대해 늘 두려움을 느끼고 살아왔기 때문에, “학교에서 지겹게 가르치니까 그렇지, 과학은 충분히 재밌고 쉬운 경험이야”라는 현의 말이 신기할 따름이다.

“고등학교가 비평준화였어. 내가 원래 가고 싶었던 학교는 실업계로 분류됐는데 엄마는 1등급 고등학교를 가기를 바라고, 근데 나는 이놈의 학교가 너무 싫었던 거야. 그러다 발명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서 그거 하나 보고 ‘이 학교 가자’ 했던 거지.”

현이 고등학교 발명반에서 했던 것은 ‘레고 만들기’라고 한다. 명색이 발명반인데 레고라니, “엥?”하고 반문하자, 현은 단순한 장난감 레고가 아니라 로봇이라고 말해주었다. 광센서나 터치센서가 있고 모터도 있어서, 직접 프로그래밍해 로봇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그는 레고로 자판기도 만들고 엘리베이터도 만들었다. 인형 뽑기 기계도 시도했었다고 한다.

현은 그렇게 기계의 작동과정을 프로그래밍하는 것도 일종의 발명 같다고 말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있는 물건을 더 좋게 만들거나 매뉴얼을 직접 작성하는 것도 발명이라 생각한다고.

“하나를 만들려면 그 기계를 진짜 백 번 사용해 봐야 돼. 엘리베이터도 부분 부분 사진으로 찍고, 인형 뽑기 동영상으로 찍어 보고. 아이들이 원래는 잘 알지 못하는 기계의 원리를 직접 매뉴얼로 작성하고 레고로 만드는 거야.”

여자가 과학을 한다는 것을 기이해하는 시선에, 그리고 과학을 어렵고 딱딱하게만 생각하는 편견에, 그 동안 현은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여자들은 대개 과학을 어려워하지 않나?”라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내는 걸 보면.

“뛰어 놀고 체험하라”

“나는 어렸을 때 경험이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해. 체험을 많이 해봐야 궁금증도 생기는 거잖아? 보통 문과에 여자 많고 이과에는 남자가 많다고 하지. 그렇지만, 남자들만 밖에 나가 뛰어 노니까 당연히 궁금한 게 많은 거지. 여자는 인형 놀이만 시키고, 여자가 기계 다루는 데 관용적이지 않은 사회분위기가 ‘여자는 못한다’는 말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

현은 어렸을 때부터 놀이터에서 자주 놀았고 과학 체험관에도 많이 다녔다고 한다. “오히려 인형을 가지고 논 기억이 없어. 그리고 나는 책도 되게 싫어했다? 책을 절대 안 읽어서 지금도 무식한 게 많아. 하하”라고 웃는다.

“외할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아. 낚시 방을 하시는데, 공장에서 제작된 찌가 아니라 직접 수공예로 만드는 찌 있잖아. 나도 할아버지 옆에서 낚시찌 만들면서 놀았어. 그래서 여러 가지 공구나, 깎고 칠하고 붙이는 데 익숙해. 집안 분위기도 ‘여자는 이래야 한다.’가 아니라 ‘여자는 여자답게 자라면 안 된다’였어. 아마 외할머니가 그 시대 언어로 ‘신여성’이었나 봐. 나한테 치마 대신 바지를 입히고 밖에 나가 뛰어 놀라고 하셨어.”

현은 “물리는 상상력이 풍부해야 한다고 생각해” 라고 말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물리 공식을 억지로 외웠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은 이론을 외우는 것보다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예를 많이 상상할 수 있느냐가 과학인 것 같아. 수학이나 과학이 두려운 이유는 실생활에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잖아. 물리 하면 이론, 수학 하면 숫자만 떠올리는데 실생활에서 그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정말 쏠쏠하거든. 어떤 친구가 불어를 배우면서 이제까지는 불어로 된 간판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며 놀라더라고. 그거랑 비슷한 거야.”

현은 이론을 생각하면 실제 예가 먼저 떠오른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일주일에 한 번씩 실험을 했던 경험이나 레고를 만졌던 일이 특히 도움이 되었다고. 레고로 로봇을 만들 때 하드웨어 설계를 했던 것이 역학 공부나 상상력을 키우는 데도 좋았다고 한다.

“나는 경험주의자야. 어떤 때는 공상가이기도 해. 그런데 사실 과학에서 경험주의자라는 말은 위험해. 왜냐하면 과학은 ‘내가 관측하는 순간 결정되어 버린다’고 하거든. 예를 들면 어떤 전자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해봐. 무엇을 보는 과정은 물체에 빛이 닿아 반사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물체에 빛이 닿아 버린 이상, 그 물체는 이미 빛이라는 에너지를 얻어서 변했다는 거야.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결코 볼 수 없는 거지.”

그렇게 과학은 절대 확실한 것을 말해주지 않아, 라고 현은 말했다. 때문에 한없이 허무해지는 때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과학을 계속 하고 싶어? 그렇게 허무한데?”라고 묻자, 현의 대답은 명료하다. “궁금해. 정말 정말 궁금해.”

“별도 내년 이날에 같은 곳에 있지는 않아”

“어렸을 때부터 인간이 왜 있을까, 인간이 사는 지구는 왜 있고 태양계는 왜 있고 우주는 왜 있을까가 궁금했던 거야. 아마 우주보다 더 큰 게 있지는 않을까. 우주는 지금의 시대에서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제일 큰 단위일지도 몰라.”

그는 인터뷰를 하며 “상상력이 중요하다”, “수학은 증명의 논리지만 물리는 느끼는 것 같다” 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이런 의미구나, 싶다. 계속 계속 호기심을 갖는 것, 지금 옳다고 하는 것이 정말 맞는 것인지 묻는 것.

“하늘을 많이 봐. 신기해, 저 게 왜 저기 있을까…. 이 모든 세상이 찰나라고 생각해. 진짜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별도 움직이거든. 내년 이날에 같은 곳에 있지 않아. 시간의 소중함 이런 말이 아니라, 그냥 순간 순간이 새롭고 다른 것이구나 싶어. 그리고 사람끼리, 국가끼리 싸우는 게 허무하고. 우주에서는 티끌도 안 되는 거잖아, 인간은.”

현의 진지함에 새삼 놀랐다. “생각해보니 나도 초등학교 때 학교 대표로 과학 실험교실 갔었어”라고 말하자, “그게 문제라는 거야. 시험성적 좋은 애들만 학교에서 한두 명 뽑아 과학실험을 시켜주는 거잖아. 그런데 누가 과학을 좋아하겠어?”라고 지적한다. 무섭게 열정적이고 날카로운 이 아이가, 내가 알던 박현과 정말 같은 사람인가 싶다.

현의 마음 속에 있는 빛나는 꿈들을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하지만, 관측하는 순간 결정되어 버린다는 말처럼 내가 현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오판일 수도 있다. 그래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별처럼, 서로에게 더 다가설 수 있기를. 그렇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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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crezhodgz 2007/11/26 [20:23] 수정 | 삭제
  • Satyadev Dubey came from Bilaspur in Madhya Pradesh to Mumbai with the intention of becoming a Test Cricketer. Instead, he got ensnared in the world of theatre. He joined the Theatre Unit, the theatre group cum school founded by Ebrahim Alkazi.
  • pzzquudxqe 2007/11/26 [01:26] 수정 | 삭제
  • The Thorn Clarke winery is owned by husband and wife David and Cheryl Clarke. David's family has wine roots in the Barossa Valley going back to the 1870s. Their 2005 shiraz, while costing more than $20, shows lovely depth and beat out some far more pricey reds in today's release. Penfolds really needs no introduction. Chief winemaker Peter Gago, based in Adelaide with his wife, who is a member of the local parliament, often comes to town. Their top wine is Grange, without question the best shiraz in the world
  • vieugnvaji 2007/11/21 [09:02] 수정 | 삭제
  • The Audi A4 won through against strong competition in the midsize class. Rupert Stadler, Chairman of the Board of Management of AUDI AG, took receipt of the prize
  • avhoofqoug 2007/10/22 [23:39] 수정 | 삭제
  • Hello! Good Site! Thanks you! bjaekjhhlkm
  • 사슴 2007/10/17 [16:42] 수정 | 삭제
  • 우리 생활과 떨어져버린 수학과 물리를, 사람들의 실생활으로 다시 가져오는데 한 몫을 담당해주시면 좋겠네요. ^^
  • hyo 2007/10/09 [16:06] 수정 | 삭제
  • 어릴 때 무척 좋아했는데......
    기계를 좋아하구, 호탕(?)한 성격이.. 꼭 제 친구 중에서 누군가가 떠오르네요.
    호기심 많은 그 친구가 보고 싶어졌어요.
    사진 보니까, 웃음이 꼭 닮은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은 외국에 있어서 잘 못 만나지만,,
    한때는 저도 물리를 좋아했는데..
    공부는 싫어라 해서 그만,.
    공부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어쩌면 더 열심히 했을 지두..
    근데 사람의 호기심은 끈질긴 것 같아요.
    호기심이 있다는 건 아직은 희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구..
    저보다 어려보이지만, 친구인 셈! 하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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