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에는 착한 장애여성만 있다

장애여성이 말한다⑧

이희연 | 기사입력 2007/10/22 [22:06]

대중매체에는 착한 장애여성만 있다

장애여성이 말한다⑧

이희연 | 입력 : 2007/10/22 [22:06]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가족의 얼굴보다 더 많이 접하는 게 있다면, 그것이 대중매체일 것이다.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오가다 뉴스를 보게 되고, 텔레비전이나 잡지, 드라마, 영화 등 많은 매체 속에 둘러싸여 그것을 통해 세상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만큼 대중매체의 힘은 매우 크다.

‘상품성 있는’ 인물들에 가려진 장애여성

그런데 장애여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 나라의 대중매체는 사회적 약자를 다루는 데 있어 야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본의 논리에 밀려
 돈이 되는 기사만 다루거나, 상품성을 가질 수 있는 유명인이나 예쁘고 멋있는 사람만을 등장시키고 있다. 언론들조차 소외계층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는 빈도가 낮고, 이벤트 성으로만 다루는 것을 볼 수 있다.

장애 관련한 정부시책을 다룬 기사나, 정보를 제공하는 기사는 장애인 대상으로 만들어진 극소수 매체들을 제외하고는 몇 마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보도를 하는 전문 언론매체들은 잘 알려지지 않아서, 일부러 열심히 찾아보지 않으면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장애 관련 프로그램의 내용들을 살펴보자. 많은 경우 미담이나 장애를 극복했다는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장애인 관련 프로그램은 아직까지도 장애인을 시혜적 관점으로 바라보거나, ‘인간승리’류의 영웅담으로 미화하는 등 여전히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기별 편중 현상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 관련 보도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방송된 아이템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요 아이템은 역시 미담으로, 장애인들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시혜를 격려하고 촉구하는 내용들이다. 가족이나 친구의 도움으로 장애학생이 학교를 무사히 다니는 모습이라든지, 장애아동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집중 취재하는 것이다.

특히 장애인들의 시설 이용과 관련된 각종 불편 사항들을 고발하는 내용을 ‘장애인의 날’에 많이 볼 수 있는데, 장애체험이나 유명인의 시설 방문 등을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아무리 장애여성에게 중요한 이슈를 다루는 집회가 열려도, 주요 매체들에서는 이를 다루지 않거나 지나가는 얘기 정도로밖에 언급하지 않는다.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이미지

보도 프로그램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표적인 대중매체라 할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장애인이 등장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슬픈 연가>에서 김희선씨가 분한 시각장애인 캐릭터처럼 수동적인 비운의 여성이거나, <부모님 전상서>의 자폐아동처럼 가족 간에 생기는 불화의 원인이 되는 모습이다.

좋은 평가를 받았던 영화 <말아톤>에서조차 가족들이 너무 힘들고 불행한 모습으로 그려져, 장애인이 짐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장애여성의 경우에 더욱 왜곡되어 그려지는 면이 많다. 장애를 가지게 된 것만으로 좌절하여 성격이 이상해진다는 내용도 본 적이 있다.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여성이라든지,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었다는 이유로 강간미수범을 사랑하게 되는 캐릭터도 등장한다.

장애여성을 나약하고 사랑에 목매는 존재로 그리는 방식은,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 속 장애여성의 이미지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의 친구 클라라가 그렇고,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어공주>가 그렇다.

그녀가 수동휠체어를 타는 이유

현실과 가까운 장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를 보자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집안이 부유한 장애여성이라도 전동휠체어를 탄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수동휠체어를 타고 뒤에서 밀어주는 남성의 도움을 받게 된다. 심지어 바위 위에 수동휠체어를 타고 올라간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처럼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장애인은 '항상 도움을 받는 대상'이거나, '가족의 애물단지‘로 형상화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매체들은 장애여성을 '연약하고 수동적인 이미지’로 부각시키기 때문에, 장애여성 당사자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심지어 장애인들을 어린 아이의 이미지로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옆에서 음식을 먹여준다거나,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장애여성을 업고 다닌다거나, 가족들의 과잉보호를 미화시킨다거나 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과는 다른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게 되고 어느 한 부분이 불편해진다.

현실에서 장애여성들은 어릴 적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 소외를 받거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거부당하기 일쑤다. 전동휠체어가 없으면 외출하기 힘들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서기 어렵다. 그런가 하면 장애수당을 타인에게 빼앗기고 노예처럼 살아가는 장애인도 있고, 성폭력을 당해 평생 아파하는 이들도 있다.

장애여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삶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 사회가 그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대중매체들은 장애인이 장애를 넘어서려 하는 ‘장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결국 장애는 나쁜 것이니 혼자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메시지일 뿐이다. 언제쯤이면 매체 속에서 장애여성의 현실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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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해 2007/10/24 [18:16] 수정 | 삭제
  • 아울러 외모지상주의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TV매체들에서 장애여성들은 더욱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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