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더 평등한 연애를 바라며

장애여성이 말한다⑨

이희연 | 기사입력 2007/11/05 [18:47]

좀더 평등한 연애를 바라며

장애여성이 말한다⑨

이희연 | 입력 : 2007/11/05 [18:47]

연애란 말은 왠지 달콤쌉쌀한 맛이 난다. 연애에 들떠 기분이 둥둥 뜨기도 하고, 연애로 인해 가슴 시린 경험을 하는 사람도 있다. 방송에도 연애에 관한 드라마가 많고, 누가 누구와 사귄다더라 하는 말엔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나이 들어가면서 친구들과 모이면 꼭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애인 이야기일 정도로, 누구나 한번쯤은 연애를 꿈꾸게 된다.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 ‘나’라는 존재를 인정 받고 싶다는 건 당연한 욕구다. 하지만 사회가 ‘나’라는 존재보다는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 애인이 뭐 하는 사람인지, 결혼 했는지 안 했는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더욱 관심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파트너가 있느냐 없느냐와 파트너의 지위에 따라, 나의 위치 또한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자신보다 사회적 권력을 지닌 사람을 파트너로 맞고 싶어하는 욕구가 생기나 보다.

청순가련형 장애여성상이 등장하는 이유

그런데 장애여성의 입장에서 연애에 대해 생각해보면, 좀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비장애친구들은 이젠 결혼 상대를 찾느라 연애를 신중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연애 자체를 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내 주변만 유독 그런지 몰라도, 한 사람과 연애를 끝내고 또 다른 연애를 시작하는 기간이 매우 길거나, 짝사랑만 하거나, 연애를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장애여성 중에는 더 많은 것 같다.

장애여성의 연애는 쉽지 않다. 비유하자면, 외모가 어느 자원보다 가치 있는 것이라 여겨지는 연애시장에서 경쟁하는 여성들 사이에 중심부로 가지 못한 채 주변에 서 있는 듯하다. 이 주변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장애여성들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청순가련형 장애여성상’을 선택하기도 한다.

강한 여성에게 사회가 부여한 ‘독한 장애여성’의 이미지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겁을 주기보다는, 차라리 연약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접근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사회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자, S라인을 향해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여성들의 몸부림은 처절할 정도이니, 장애여성들의 이러한 선택에 대해 뭐라 할 수 있을까?

연애나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건 물론 아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각종 짝짓기에 길들여진 우리는 다양한 인생관이나 선택을 존중해주기보다는, 연애나 결혼의 당위성을 굳게 믿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어딘가 결함이 있다고 간주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야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고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장애여성은 비참하고 괴롭다. 나의 연애도 그리 쉽지 않았다.

차별의 크기만큼 힘겨운 연애과정

여러 사람을 만나본 건 아니지만, 연애과정에서 사회가 장애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절실하게 느꼈다. 특히 비장애남성과 사귈 때는 장애여성이란 이유로 그들과 동등하지 못한 관계에서 연애를 시작했고, 항상 사람들의 숙덕거림을 부담으로 지녀야 했으며, 결국 너와는 생각이 안 맞는다느니, 장애가 부담스럽다느니, 주변에서 너무 이상하게 보는 시선을 견디기 힘들다느니 하는 말로 끝을 냈다.

어떤 장애남성들은 자신의 장애를 덮어줄 수 있는 상대로 여성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는데, 내가 사귄 사람이 그랬다. 자신의 몸에는 심한 장애가 있어도, 자신이 만나는 여성은 좀더 좋은 조건으로 자신을 보살펴줄 수 있는 사람이길 원하는 것이다.

잠시 만났던 한 장애남성은 그런 요구를 너무나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자신의 장애는 간과한 채, 나의 장애가 생각보다 경증이라서 다행이라고 했다. 내가 집안살림을 잘할 수 있다면 결혼도 생각해보겠다고 마치 베푸는 듯 말했다. 소개해 준 사람한테 미안했지만, 몇 번 보지도 않은 관계에서 ‘여자는 남자를 모셔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그 남자를 더는 만날 수 없었다.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주위 장애여성들의 얘길 들어보면 이런 저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자신의 장애를 생각하며 지레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연애를 하다 주위의 많은 반대로 인해 헤어진 경우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도 보았다. 비장애남성과 사귀던 장애여성의 이야기인데, 그 남자는 애인이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하자 억지로 성관계를 맺어 그녀가 자신의 상황을 자포자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헤어지고 싶을 때는 미련 없이 사라져버리는 삼류 연애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상대방을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려 들면

장애여성이 평등한 연애를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 곁엔 사회적으로 기본적인 자원도 보장 받지 못하는 장애여성이 아직 많다. 그런 조건으로 인해 더더욱 자신이 살아있음을 상대방을 통해 확인 받고 싶어하는 이도 있다.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해줄 수 있는 파트너가 나타나 멋진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기를, 그래서 내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아닐까.

하지만 설사 바라던 대로 상대방을 통해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는다 하더라도, 장애여성이 겪는 차별은 여전히 현실로 존재할 것이다. 상대에 대해 의존할수록,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다. 늘 부드럽게 대해주던 사람이 사회적 강자라는 권력으로 나를 억압해오는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 애초에 평등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타깝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꺼내놓긴 했지만, 이것은 순전히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왜냐면 지금 이 시간에도 열애중인 장애여성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애는 즐거워야 한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이 특별한 즐거움을 외면하거나, 반대로 연애를 강요 당해서는 안 된다. 다만 좀더 평등한 관계로 연애를 하는 장애여성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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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터 2008/03/04 [09:44] 수정 | 삭제
  • 존재를 확인받는것... 연애를 하면서 빠지기 쉬운 함정인거 같아요
    솔직한 이야기 잘 읽고 가요
  • 희망언덕 2007/11/24 [12:18] 수정 | 삭제
  • 저역시 뇌병변2급장애를 갖고 있는 여성인데 연애만큼은 정말 어려운거같아요... 전 병으로 인해 장애를 갖게되엇는데 사람들이 현재의 제모습보다는 아프기전 제모습을 자구만 끄집어 내려하더군요.. 이자체로 인정해줌 좋을 텐데.. 그러다보니 연애에 대해 기피하게되요,, 날 있는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진짜 어려 걸까요?
  • 연두 2007/11/08 [12:19] 수정 | 삭제
  • 연애 얘기같은 건 꺼내기 힘든 부분이 있는데, 솔직한 얘기들 잘 읽고 갑니다. 읽는데만 그치지 말고, 더 많이 생각해보고 깨달아야 할 얘기들인 것 같아요.
  • 2007/11/07 [17:16] 수정 | 삭제
  • 연애만큼 외모 따지는 관계도 없는 것 같은데,장애여성의 사랑과 관계맺음은 더 많이 힘들겠구나 싶어 마음이 저렸습니다.
  • 가을에 2007/11/07 [13:26] 수정 | 삭제
  • 연애는 이성끼리만 해야 할까?
  • 최희정 2007/11/06 [21:32] 수정 | 삭제
  •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평등한 연애가 있을까요?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장애여성의 연애가 쉽지많은 않겠지요. 연애하는 당사자들이 서로의 차이와 입장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