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無)성적’ 존재가 아니다

장애여성이 말한다⑩

이희연 | 기사입력 2007/11/20 [02:08]

우리는 ‘무(無)성적’ 존재가 아니다

장애여성이 말한다⑩

이희연 | 입력 : 2007/11/20 [02:08]

‘장애여성의 성’이란 주제로 글을 쓰려니 머리가 아팠다. 그간 기사를 연재하면서 몇 번 이야기를 할 필요성을 느꼈지만, 어쩐지 이 주제를 조금씩 피해오고 있었다. 내가 처음 장애여성운동에 발을 들여 놓은 것도 ‘장애여성의 성’을 주제로 한 작은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게 되면서부터고,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를 하고 글을 써오기도 했지만 여전히 이 주제는 무척 버겁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아직은 사회적 약자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성 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연결되는 듯하다. ‘성’이라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용인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이를 주도한 것은 주로 남성들이었다. 남성들은 사회적 권력을 잡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성 담론을 만들어왔다. 성매매, 성폭력과 같은 형태를 정당화하는 걸 포함해서 말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여성의 성’은 제대로 담론화되지도 못한 채 은밀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지금도 그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장애여성의 성이라니…. 이것은 아마 그간 여성의 성 담론을 확보하고자 노력하던 사람들에게마저 어렵고 생소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제기된 ‘장애인의 성’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 역시 ‘장애인’으로 한데 묶여지는 남성들의 이야기가 그 주된 내용을 차지했다. 장애여성의 성적 권리에 대한 이야기는 좀더 연구가 필요한 분야로 남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장애여성이 성적 주체로 나서는 것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이 글에서는 어렵지만 장애여성의 성에 대해 우리가 함께 생각해볼 몇 가지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미끈한 라인’과는 거리가 먼 장애여성의 몸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여성과 남성을 시각적으로 구분 짓는 것도 몸의 차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몸의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많은 차이들을 끊임없이 경험하고 있다.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과 규정들이 많은 여성들의 몸을 묶어 놓는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 빗겨나간 곳에 장애여성이 있다. 장애여성은 장애를 인지하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끊임없이 의심 받는다.

장애여성의 몸, 특히 지체장애 여성들의 몸은 대부분 남성들이 선호하는 ‘미끈한 라인’과는 거리가 멀다. 장애의 특성에 따라 굽은 몸, 굽은 다리, 여기저기 휘어지기도 하고, 뒤틀려있기도 하다. 사회에서 말하는, 사회가 선호하는 여성의 기준에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몸을 지닌 것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요구되는 ‘성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낙인이, 장애여성의 성을 더더욱 무시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서 ‘성 역할’이란 가사노동, 출산, 육아 등인데, 요즘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여성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임무처럼 되어있는 역할이다. 많은 장애여성들이 이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도 장애여성들은 ‘성적인 권리’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상황이다. 많은 장애여성들이 축하를 받아야 할 첫 월경을 ‘저주’처럼 여겨야 했다. 장애여성들은 임신이나 출산의 문제에 있어서도 비장애인과는 조금 다른 경험을 한다. 또한 지적 장애(정신지체) 여성들에 대한 낙태나 자궁적출 수술이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성적 권리와 자존감이 다치는 경험들

나도 그런 경험을 겪어왔다. 여자아이들은 한번쯤은 머리를 기르고 예쁜 치마를 입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릴 적에 구부러진 다리가 드러나면 보기 싫다는 이유로 치마를 입지 못했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머리를 기르지도 못했다.

사춘기 무렵에 남들보다 조금 일찍 가슴이 나오고 생리를 하게 되었을 때, 어떤 친척분이 집에 놀러 와서는 ‘쯔쯧. 저도 여자라고 할 건 다 하나 봐. 생리 때 귀찮아서 어떻게. 거 왜, 병원에 데려가면 안 하게 할 수도 있다는데’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바로 앞에서 들었을 때, 성적 권리는 물론이고 자존감이 다쳐 한동안 말을 잃었던 경험이 있다. 비장애 여성의 경우라면 발육이 빠르다는 것이 흉이 되지는 않겠지만, 장애여성의 경우엔 나의 사춘기 시절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더욱이 장애여성을 성폭력 대상으로 삼는 사건들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장애여성의 성적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 당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지하철에서 은근한 눈빛으로 몸을 더듬는 남자들을 경험하는 것은 낯설지도 않은 일이 되었다. 수많은 성희롱적 농담에서부터 강간에 이르기까지, 장애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은 더는 특수한 시설에서 일어나는 사건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장애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자신보다 낮다는 점을 이용해 성적인 욕망만 채우려는 사람도 있으며, 특히 지적 장애(정신지체) 여성의 경우,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 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장애인은 있지만 장애여성은 없다

사회에서 장애여성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 중 하나가 ‘무성적 존재’라는 것이다. 장애여성은 여성이지만,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점만 부각시켜 ‘장애인’ 범주로만 묶어버린다. 이런 사고방식은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특히 장애인화장실이 ‘남녀 공용’이라는 점도 그 부산물이 아닐까 싶다.

장애인 관련 정책 역시 ‘성인지적’ 관점이 수용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분명 장애남성의 경험과 장애여성의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만큼 필요한 지원 역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면 장애인이지 장애여성은 뭐냐’ 식의 반응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우리 사회가 아직도 장애여성의 경험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장애여성의 성’은 참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몸이 다르기 때문에 받는 시선은 생각보다 서늘하고 폭력적이다. 사람들은 가끔 장애여성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장애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장애여성 개인의 문제로만 보려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장애여성은 분명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사회의 성적인 억압과 장애여성에 대한 무지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을 남기며, 이 글을 마친다.


  • 도배방지 이미지

  • 햇살 2009/09/13 [18:52] 수정 | 삭제
  • 여성이고 싶어도 여성으로 바라보지 않는 우리 사회의 가치없는 통념들이 장애여성성을 숨깁니다. '여성이다'라고 외치고 싶은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테죠.
    그래도 잔잔한 소리로 꾸준히 소리내면 언젠간 들어줄 날이 오리라 믿어요.
  • mari 2007/11/22 [23:09] 수정 | 삭제
  • 자꾸 누가 생각나서 눈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