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를 찾아가다 만난 ‘쥐불’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③

이옥임 | 기사입력 2008/02/11 [00:18]

철새를 찾아가다 만난 ‘쥐불’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③

이옥임 | 입력 : 2008/02/11 [00:18]
일다에 <특별한 여행> 코너가 신설됐습니다. 의미가 있었던 여행, 홀로 떠나는 여행, 자기만의 여행방식,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등 다양한 여성들의 여행 이야기를 싣습니다. 여러분의 특별한 여행기를 보내주세요. <편집자 주>


© 이옥임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동요 한 자락이 들려올 것만 같은 이곳은, 진도에서 땅끝마을을 거쳐 우리나라 최대 철새도래지라는 고천암을 찾아가다 만난 곳이다. 땅끝마을에 내려갔다가 시간이 많이 지체되기도 했지만, 여기서 사진을 찍느라 예정했던 시간보다 늦게 고천암에 도착했다.

작년에는 여름철에 가서 철새를 못 만났기에, 겨울철새를 만나보려고 일부러 이 시기를 택해서 찾아간 것이 너무 늦은 시각에 도착했다. 그 바람에 새들은 벌써 둥지를 찾아 들어 서걱거리는 갈대밭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진 몇 컷을 찍고 나서 차에 올라 고천암 일대를 돌아보는데 벌써 날이 저문다. 주위가 어둑해지자 저쪽 들판 가운데서 검은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여기저기서 빨간 불이 피어 오른다. 쥐불이다!
 

▲ 쥐불     ©이옥임
 
오늘은 농부 아저씨 혼자 들판에 쥐불을 놓고 있지만, 예전에는 아이들이 떼지어 나와서 쥐불놀이를 했었다. 나락(벼)을 베어낸 논바닥과 논두렁에 볏짚을 군데군데 깔아놓고 불을 놓으면 병충해가 없어져 다음해 농사짓기가 수월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쥐불을 놓고 나서 구멍 뚫린 깡통에 숯과 장작 쪼갠 걸 집어 넣어 불 화로를 만들었다. 깡통 양쪽에 철사 줄을 꿰어 손잡이를 만들고 불지핀 깡통을 빙빙 돌리면 깡통 속의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한참을 돌리다가 하늘 높이 던져 불꽃놀이를 했다.

타닥타닥 타는 소리를 내면서 둥글게 포물선을 그리다 땅에 떨어지면, 달려가서 깡통을 주워 다시 장작을 더 넣고 빙빙 돌려 던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런 놀이에 시들해지면 불싸움도 하고 놀았다. 어떤 때는 이웃동네 아이들과 불싸움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럴 때면 동네 청년들은 물론 조무래기들이랑 처자들까지 나와서 응원을 했다.

불 싸움은 위험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말렸지만, 쥐불놀이는 오히려 어른들이 부추겨 아이들을 들판으로 내몰았다.

지금이야 농촌에서 아이들 소리가 나지 않을 만큼 아이들이 귀해졌으니, 쥐불놀이고 뭐고 다 옛 이야기일 따름이다. 가끔씩 오늘처럼 어른이 나와서 자기 논에 쥐불을 놓는 경우는 볼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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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y 2008/02/12 [14:15] 수정 | 삭제
  • 저도 어렸을 때 본 기억이 나네요.
    꼬마때 동네 언니오빠들이 들에 나가서 깡통에 불을 놓아 휘휘 돌리고 놀았던..
    어른들은 밤에 오줌싼다고 하셨던 것 같구.
    나도 크면 저런 거 해봤음 했는데, 기회는 오지 않고 쥐불놀이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이제 얼마 없는 것 같군요.
  • 철새 2008/02/12 [02:32] 수정 | 삭제
  • 여행 이야기 잘 읽고 있습니다.
    여행이란 걸 이렇게 할 수 있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철새를 맞이러 길을 떠나고, 쥐불 놀이를 만나고.
    저도 잠시라도 길을 떠났으면 싶도록, 여행 이야기 감질나게 들려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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