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4막이 오르다

열정을 가진 영화배우 은호

강선미 | 기사입력 2008/02/11 [04:01]

인생의 4막이 오르다

열정을 가진 영화배우 은호

강선미 | 입력 : 2008/02/11 [04:01]
예쁘고 매력적인 웃음을 가진 은호, 그래서인지 나로선 왠지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다 술 한잔 함께 기울일 기회가 생겼는데,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첫인상이나 그 느낌과 달리 정말 서글서글하고 꾸밈없는 사람이었다. 시원시원하게 생긴 외모보다도 사실 은호, 그녀의 매력은 더 속 깊은데 있었다.

1막. 오랜 시간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꿈

▲ 은호
“겸손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자만하지 않고 가식적이지도 않고 솔직하면서도 겸손한 배우.”

은호는 배우다. 단편영화 한 편을 막 찍은 경력뿐이지만, 배우지망생이 아닌 배우. 보통 데뷔 초기 신인배우들의 경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인정 받고 싶다거나 대중에게 인기를 얻겠다거나 혹은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어할 텐데, 그녀는 겸손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건 아직 시작단계이긴 하지만, 연기 면에 있어서 은호는 이미 내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겸손함은 소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바람이었다.

은호는 어린 시절 어떤 아이였을까.

“어렸을 때부터 거울보고 총 쏘고. 아빠가 서부영화 보던 걸 따라 하는 거죠. 그런데 그때 제가 연기를 했던 건 여자이미지가 아니라 총잡이 같은 거였어요. 입으로 두두두두- 총소리 내면서요. 부엌에서도 소리가 들리니까 맨날 엄마가 웃었죠.”

은호는 어린 시절에 혼자 문 걸어 닫고 거울을 보며 눈빛 연기도 연습했다고 한다. “그 생각이 항상 나요. 어렸을 때 화장실에서 조명 각도를 이렇게 저렇게 보고. 어렸을 때는 못생겼거든요. 곱슬곱슬 머리에 단정치도 않았고 꼬질꼬질했는데, 사실은 그때부터 연기를 하고 싶었죠.”

어릴 때부터 혼자 연기연습(놀이)을 하던 은호였지만, 거울이 아닌 카메라 앵글에 자신을 비출 기회를 곧바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녀는 체육을 전공했다.

“배우가 되어야 한다는 꿈은 항상 있었어요. 연기학원을 다니려고도 했어요, 중3때던가. 그런데 그런걸 하면 ‘딴따라’가 된다는 그런 말이 있잖아요. 대학 들어가려면 그래선 안 된다는 인식 때문에, 그냥 (꿈을) 접어두고 대신 운동을 한 거예요. 저는 체육을 너무 좋아했고, 제 삶이었죠. 한때는 체육교사가 목표긴 했는데. 비걸(B-Girl)이 되고자 한 적도 있고. 핸드볼을 참 좋아했는데 발목을 다쳐서 핸드볼을 못하게 되어서 소프트볼을 전공했죠.”

‘딴따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선뜻 연기의 길로 들어서지 못했던 은호는, 대신 마음껏 좋아해도 괜찮은 운동을 통해 몸을 움직였다. 대입 준비하던 때 발목부상만 아니었더라면 좋아하던 핸드볼을 전공하려고 했다는 말에, 얼마 전 개봉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보람’이 캐릭터가 떠올랐다.

“제가 우생순의 보람이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하하).” 그렇지 않아도 은호 역시 이 영화를 보며 보람이 캐릭터에 욕심이 생겼었다고 말한다.

▲ 은호
체육은 은호에게 있어서 그 자체로 즐거움일 뿐 아니라, 앞으로의 길을 연결해주는 역할도 했다. 연기연습을 하든, 공부를 하든 간에 생계를 위해 그만큼 비용을 대야 했으니까. 구체적으로 배우가 되고자 마음먹기 전부터 은호는 수영강사로 활동했다. 경력이 벌써 5년이 되어간다.

“주부타임 했을 때 제일 즐겁고 행복했어요. 연령차이, 세대차이가 엄청 나는 할머니 세대, 어머니 세대가 있는 거예요. 어머니들이 너무 정겨운 거예요. 제가 안아드리고 그러면 좋아하셨어요. 저를 너무 예뻐하시는 거예요. 다른 반인데도 수영복을 주시기도 하고.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 어머니가 있는데, 저 대학 졸업할 때 떡 한 상자를 한 거예요, 영양 떡을. 그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어떤 할머니는 호떡을 직접 만들어 주셨고. 아, 어머니들 같은 경우 이름을 불러드리면 너무 좋아하셨어요. 누구 어머니, 누구 어머니라고.”

생계 때문에 했던 수영강사 일이지만 은호는 행복한 기억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주부타임, 다른 세대의 여성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되살리며 이야기하는 은호의 눈빛에서 정겨움과 고마움이 묻어 나왔다.

2막. 건강한 몸 VS. 가냘픈 몸매

은호는 대학교 때부터 해왔던 수영강사를 얼마 전 그만두었다. 체육을 전공하면서 체육교사를 고려하기도 했던 은호는 이제 어릴 적 꿈을 찾기로 했다.

“대학 졸업을 할 때 즈음, 내가 하고자 하는 욕구를 따라가보고 싶은 거예요. 두 가지 갈래가 있었어요. 보석 디자이너랑 뮤지컬이나 영화. 그래서 돈을 계속 모았어요. 그런데 보석 디자이너는 나중에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반면, 영화계 이쪽은 지금 아니면 절대 못할 것 같은 거예요.”

지금이 아니면 절대 못할 것 같아서, 그래서 배우가 되기 위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배우로서의 열정이 가득했던 은호는 그곳에서 스트레스 가득 찬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본격적으로 몸 관리하면서 연기레슨을 계속 받았는데요. 그 학원이 기획사에 소속된 사람들이 매니지먼트 통해 들어오는 학원이더라고요. 다들 너무 말랐고, 저도 몸에 대한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기 시작했어요. 원래는 제 몸에 만족했는데 말이죠. 운동을 하는 건 좋아하지만, 스트레스 받으면서 하니까 미칠 것 같은 거죠. 살은 안 빠지고 힘들기만 하고.”

그러다 모든 것이 힘들고, 귀찮아졌다고 한다.

“길이 안보여서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연급 오디션을 두 번 본 적 있는데, 정말 ‘여자 같은 스타일’을 뽑는 거에요. 저도 그런 캐릭터를 원하진 않았지만, 그들도 저를 원하지 않는 거죠. (오디션 때) 나한테 딱 질문이 그거였어요. 연기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살집이 있는데, 살이 많이 쪘는데 어떻게 이걸 뺄 수 있느냐’ 물어보는 거예요.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3막.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힘을 얻고 돌아오다

▲ 은호
그건 기분이 나쁜 것에서 그치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열망한 것을 하기 위한 입문단계에서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는 경험을 했으니, 커다란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힘든 걸 털어놓고 싶은 곳이 필요했어요. 그러다가 여성학 공부를 하고 싶단 생각이 처음으로 든 거예요. 공부를 하고 싶고, 학교에 다니고 싶었어요. 학교라는 곳이 저한테는 쉼터 같은 데라서요. 친구한테 ‘공부하고 싶어’ 이랬더니 ‘그럼 대학원 가’ 이러더라고요. ‘그래!’하고 그때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은호는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대학원으로.

“주류 상업영화 판에서는 연기를 하는 내 감정과 상관없이 꼭 몸이 갖춰져야 되고. 대부분 위에 사람들이 다 남자잖아요. 디렉터들이 남자고 하니까, 어쩔 수 없는 판인 거예요. 기획사도 그렇고, 심사위원들도 여자가 한 명도 없었으니까. 내가 그렇지 않은 데를 찾아가는 것도 너무 힘들었고. 그래서 ‘기회’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어요. 어차피 날 제외하고 만든 기회라고 생각했죠. 제가 자신감이 있어도, 그런 문화 속에 들어가면 자신감이 사라지는 거예요. 내가 학교에 다시 온 건, 쉼터를 찾아서 온 거죠.”

은호는 기운을 내서 다른 돌파구를 찾으려 했고, 적절한 시기에 ‘쉼터’가 될 만한 공간을 파고들었다. 결과는 좋은 것 같다.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데에는 큰 힘과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저는 너무 예뻐해 주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의 몸을 매력적이다, 섹시하다 하고. 다른 학기의 어떤 언니가 ‘은호야 너 정말 섹시하다’ 했을 때, 가식 없이 건넨 그런 말들이 자신감을 생기게 하고. 남자들이 봤을 때는 우락부락한 몸일 수도 있지만요. 영화 판에서는 워낙 다른 여자배우들이 다 마르고 하니까.”

힘을 얻은 은호는 자신을 굳이 찾지 않는 곳에 문을 두드리는 대신, 조금 다른 길로 선회했다. 얼마 전 그녀는 비주류에 속하는 곳에서 단편영화를 찍고 상영회를 가졌다.

▲  은호
“상업영화에서 배우를 하려면 몸매관리를 해야 하는 게 맞아요. 그리고 저도 하려고 하는데요. 단편영화 작업을 하면서 그냥 내 모습 그대로를 좋아해주셔서, 그런 감독들이 존재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감독들이 있잖아요. (은호가 출연하기로 결정된) 상업영화가 계속 딜레이되고는 있지만, 그 감독도 내 몸을 좋아하고 빼빼 마르고 똑같은 모습의 여배우들을 싫어해서 저랑 컨택한 거에요. 그런 걸 보면서 아, 내 이미지가 먹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자신감이 생기니까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왜 꼭 기획사 같은 데를 들어가려고 했지? 단편영화 작업하면서 분명히 내가 먹힐 수 있는 분야가 있을 텐데, 하고 인정하기로 했어요. 괜히 상업영화 쪽으로만 하려다 보니까 사실 더 어려운 거였죠.”

마라톤 거리를 100m 달리기하듯 하다가 갑자기 멈춰선 은호. 이제는 숨을 고르고 더 다부진 열정으로, 여유로우면서도 즐겁게 산책하듯 이 세상에 나섰다. 연기에 대한 은호의 생각을 들어보면, 힘든 일이 앞길에 생기더라도 그 꿈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연기는 제 삶 같아요. 프로가 되면 내 경험이 아니어도 연기가 나온다고 하지만, 경험이라는 건 사실 중요해요. 내 삶이 마음속에 투영된 영혼이 그때그때 캐릭터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거죠. 연기는 삶과 같고 영혼 같고. 너무 좋은 거죠. 카메라에 비춰진 나를 봤어요. 그런데 괜찮은 거에요, 내가 봤을 때. 내 눈빛이 좋고, 저 안에서 내가 살아 숨쉬는 게 너무 행복해요.”

욕심 많은 은호는 자신의 행복과 꿈을 향해 열심히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삶이 지속되는 동안 그녀는 언제나 배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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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am 2008/02/13 [17:23] 수정 | 삭제
  • 멋지네요..

    저는 우생순 보면서.. 배우들이 실제로 운동을 잘하는 여배우들이 있어서 그런 역을 맡았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여성들의 스포츠영화.. 멋지잖아요..
    은호씨에게 꼭 그런 기회가 있으셨으면 좋겠네요.
  • 오호호 2008/02/12 [00:41] 수정 | 삭제
  • 연기학원들이 사람 잡는구만요.
    말로만 듣던..
    성형은 하라 안하던가요?
    소위 말하는 늘씬쭉쭉빵빵한 여자들만 배우가 되면, 영화들이 다 수준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요. 영화가 다양한 여자들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어야지..
    은호님, 충분히 예쁘고 매력있습니다.
    영화배우로 성장한 모습 보고싶어요!
  • 베티 2008/02/11 [19:15] 수정 | 삭제
  • 섹시하고 예쁘시네요.
    영화도 좀 알려주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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