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얼’과 ‘쌩목’의 기록을 남긴다는 것

레즈비언 20인 20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쏘머즈 | 기사입력 2008/03/27 [02:11]

‘쌩얼’과 ‘쌩목’의 기록을 남긴다는 것

레즈비언 20인 20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쏘머즈 | 입력 : 2008/03/27 [02:11]
“우와, 너무 좋아!!”
 
스무 명 레즈비언들의 모습을 이십 년 동안 영상으로 기록해두고, 그것을 고이 모아 두었다가 이십 년 후 상영을 한다니, 이 얼마나 멋진 계획이란 말인가.
 
레즈비언권리연구소에서 지난해 내게 ‘20인 20년 프로젝트’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때, 나의 입에서는 “너무 좋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앞뒤 생각할 것 없이 무조건 좋다고 했다. 앞뒤 생각했어도, 아니 앞뒤 생각했으면 더더욱 한다고 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앞으로 20년간 외롭지 않을 것이다
 
먼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하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떨쳐낼 수 없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아마도 많은 레즈비언들의 고민일 것이다. 나는 이십 대 중반을 넘기면서부터 그러한 고민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저 고민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무거운 그런 두려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학교 다닐 때만큼 함께할 수 없는 친구들과 관계를 유지하기 버거워지는 커뮤니티, 나이 들어갈수록 만나기 어려워지는 것 같은 파트너,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여성이기에 감당해야만 할 결혼 압력….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외로움에 질식시킬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20인 20년 프로젝트’가 반가웠다. 스무 명의 레즈비언 친구들을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명씩 이십 년간 만날 수 있는 끈이 마련되는 셈이지 않은가.
 
매년 매달 그녀들을 만난다는 것. 요즈음은 무엇이 기쁘고 또 무엇이 슬픈지 짧게나마 소소한 일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고, 때로는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맘 편히 투덜댈 수도 있다는 것이며, 10년 후에 내 곁에 애인도, 레즈비언 친구들도 그렇게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녀들의 날생선 같은 이야기를 영상에 담으며
 
그리고 역사적인 이유 하나. 있어도 없는 레즈비언이라는 ‘존재’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오랜 세월 수많은 레즈비언이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있고, 존재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들,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지간한 노력가지고는 당최 찾아보기가 힘들다. 있어도 없는 존재이기에 그 시절을 살아낸 그녀들의 발자취는 투명하고 이 시기를 견뎌내는 우리들의 얼굴은 희미하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란 말인가.
 
역사학적인 가치를 이래저래 논할 필요도 없이 당장 ‘내’가 ‘레즈비언인 나’로 이곳에 살고 있음을, 살았음을 남겨 놓을 수가 없다는 것. 하루하루 치열하게 보내는 우리들에 대한 제대로 된 기록이 없다는 것. 비록 오래도록 볼 수는 없었지만 앞으로는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도 모자이크 처리된 불투명한 얼굴과 앵앵대는 변조된 목소리가 아닌 ‘쌩얼’과 ‘쌩목’으로 말이다. 이십 년을 살아내며 한 해 한 해 조금 더 아름다워지고 조금 더 행복해질, 우리들의, 시퍼런 날생선 같은 일상을 말이다.
 
이십 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지 않고, 스무 명이란 사람들은 결코 적지 않다. 그래서 아마도 사이사이 삐걱거릴지도 모르고 누군가들은 어느 순간부터 등장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음이, 그리고 수행할 것임이 “너무 좋다.” 두세 사람만이 남더라도 그 과정 속에 나는, 그녀는, 그리고 우리는 살아있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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