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의 봄”이 왔어요!

노들장애인야학, 대학로에 새 배움터 마련

안소진 | 기사입력 2008/04/08 [15:04]

“노들의 봄”이 왔어요!

노들장애인야학, 대학로에 새 배움터 마련

안소진 | 입력 : 2008/04/08 [15:04]
[1993년 개교해 장애성인들에게 배움터를 제공해왔던 노들장애인야학이 교육공간을 잃어 길거리에서 수업을 하게 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 바 있다. 14년간 거처했던 정립회관이 ‘운영 및 공간부족의 이유’로 퇴거할 것을 요청해온 이후, 노들장애인야학은 다른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2008년 1월 2일, 추운 겨울에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길거리 수업을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수업을 한 지 80일, 봄소식과 더불어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노들장애인야학이 새로운 교육공간을 확보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제 노들장애인야학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다시 한번 장애성인들을 위한 교육공간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또 노들야학이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글을 기고해 준 안소진님은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편집자주]

교육공간 확보를 위한 “노들의 봄”
 
 "길바닥에 나앉아도 수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노들장애인야학
노들야학 교실이 자리잡고 있었던 아차산 자락 중턱의 정립회관 3층. 중증장애를 가진 35명의 학생에게 주어진 단 세 칸의 교실. 우리, 청솔, 불수레, 한소리 이렇게 4개 반이 모두 나와 수업할 여건이 되지 않아서, 요일을 번갈아 가며 나와 사용하고, 그래도 부족한 교실은 복도와 노조사무실을 빌려 채웠습니다.

 
교무실이 없어 복도에서 종종걸음 치던 교사들, 마땅히 쉴 곳이 없어 모처럼 찾아온 새 식구도, 손님도 오갈 데 없던 그곳. 노들야학에는 배우지 못한 서러움에 젖어 찾아오는 발걸음들로 채워졌고, 장애에 대한 차별로 점철된 사회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던 학생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비좁고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우리의 배움터였던 노들야학 교실, 14년간 정든 그 공간에서 퇴거할 것을 정립회관 측으로부터 요청 받았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2007년 10월 17일, 노들야학의 교육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노들의 학생들을 넘어 더 많은 장애성인이 교육받을 수 있는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노들야학 교육공간 확보, 장애성인 교육권 쟁취를 위한 투쟁’, “노들의 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 2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세 동의 천막을 치고, 80일 동안 노들천막야학을 진행했습니다. 추운 겨울, 천막 안에서도 수업은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기존의 문해교육, 초등, 중등, 고등과정 수업은 물론,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차별에 대해 저항하는 인사들을 초청하여 진행한 천막특강, 문화공연을 통해 공원을 지나는 수많은 시민들과 한바탕 어우러진 ‘노들인의 밤’까지. 노들 안팎의 힘을 모아 80일, 그 밤과 낮을 지켜냈습니다.
 
노들야학이 마로니에공원에 둥지를 튼 후에, 많은 분들이 장애성인의 교육문제에 동의하며 힘찬 응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천막을 쳤다는 뉴스를 보고 어린 손녀들을 데리고 찾아온 할머니, 조금씩 모은 것이라며 작은 손에 가득 찬 돼지저금통을 내미는 꼬마친구, 지나는 길에 언 몸이라도 녹이라고 담요를 건네주신 분들, 지난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크나큰 힘이 되었습니다.
 
접근이 쉬운 위치에 마련한 새로운 배움터
 
▲ 새로운 배움터 © 노들장애인야학
조촐한 세 동의 천막이 있던 마로니에 공원 뒤편, 이제 노들야학은 그 꿈을 펼쳐갈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평일, 4개의 반이 안정적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든든한 교실은 물론, 교양수업, 세미나, 특활수업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할 수 있는 실습실, 교사들이 수업을 준비하고 교재교구를 정리할 수 있는 교무실이 있습니다.

 
그 동안 자리잡고 있었던 정립회관의 노들야학은 서울주변 언저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접근성이 좋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종로 한복판에 둥지를 틀 수 있어 찾아오는 발걸음이 보다 가벼워지리라 생각합니다. 교통이 편리하고, 지하철역에서 가깝고, 휠체어를 밀고 오기에 그리 멀지 않은, 오고자 하는 누구나, 배우고자 하는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더 많은 이들이 함께하겠지요.
 
엄동설한 겨우내, 천막야학 기간 동안 노들장애인야학은 장애인야학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대책과 법제화 등을 교육과학기술부 및 서울시교육청에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시행될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시행령 안에 장애인야학에 대한 지원 근거를 부족하나마 일부 명시했습니다.
 
또한 장애성인의 교육지원을 특수학교에서도 제공할 수 있도록, 서울의 정민학교에 장애성인을 위한 특수학급을 올해부터 설치,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와 서울시교육청의 대책은 아직 미비한 실정입니다. 장애인야학의 지원에 관한 법적 지원 근거는 그 내용이 구체적이지 못해서, 시행령 규정을 바탕으로 장애인야학의 실질적 운영을 지원하기 어렵습니다. 열악한 장애인야학의 운영에 필요한 공간의 문제, 특수교육보조원 지원, 통학 지원 등에 대해서도 여전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의 천막야학을 통해, 장애인야학에 대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관심을 높이고, 최소한의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장애성인의 평등한 교육을 꿈꾸기엔 가야 할 길이 멀고 험난한 것 같습니다.
 
벚꽃이 만개하고, 활짝 핀 목련이 반가이 맞이하는 마로니에 공원 근처 그곳에, 노들장애인야학이 있습니다. 교육받지 못한 누구에게나,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고 실천하는 모두에게 노들야학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겠습니다. 장애성인에게 평등한 교육-그 평범하고 행복한 교육을, 아직도 집에만 있어야 하는 장애성인과 이 사회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그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사람들까지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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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개 2008/04/11 [23:14] 수정 | 삭제
  • 이 봄에, 안좋은 소식만 줄줄이 잇따르더니 간만에 듣는 희망찬 소식이네요.
    새 보금자리 마련하신 것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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