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러웠던 여인이여, 안녕”

<문미애를 추억하다>展

류소선 | 기사입력 2008/04/24 [13:01]

“너그러웠던 여인이여, 안녕”

<문미애를 추억하다>展

류소선 | 입력 : 2008/04/24 [13:01]
▲문미애유품방 가변설치 환기미술관(2008)
환기미술관에서 좋은 전시가 열리고 있으니 가보면 마음에 들 거라는 추천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곳이 종로 부암동 북악산 산책로가 시작되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서, 산책도 할 겸 환기재단작가전 <문미애를 추억하다> 전시회를 찾았다.

 
문미애(1937~2004년)는 한국의 초기 추상미술운동에 참여한 화가로 알려져 있다. 1962년 <악뛰엘전>에 참여했으며, 1964년 미국으로 간 이후 뉴욕과 파리, 서울 등에서 그룹전과 개인전을 열었던 여성작가다. 그 외, 화가 문미애에 대한 정보는 별로 가진 바 없었다. 그보다는 한 화가를 ‘추억하는’ 방식의 전시회 기획이 돋보인다는 추천이 마음에 들어 전시장까지 이끌려 간 것이라 해야겠다.
 
이 전시는 문미애라는 화가의 유작을 감상하며 그의 발자취를 돌아본다기보다는, 생전에 같이 작품활동을 하고 생각과 열정을 나누었던 연인과 동료들, 후배와 제자들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그를 “추억”하는데 더 의미가 있다.
 
관람객들은 처음에 문미애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공간에 들어서게 되는데, 낯선 이(들)의 “추억”의 세계로 들어선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그 옆에 적힌, 동료이자 남편이었던 한용진의 글귀 앞에선 누구나 잠시 멈춰있게 될 것이다.
 
▲문미애作  무제(1960년대 중반) 캔버스에 유채, 122X153cm
“(…) 떠나며 부탁한 일 즉 그리든 그림과 끝낸 그림들을 모두 불태워 달라고 하였으나 태워버리기 전에 그대가 아끼던 친구들의 그림과 더불어 잔치 한번 벌이고 없애려 하니 양해해주게. (…) 너그러웠던 여인이여, 안녕”
 
그것은 문미애라는 작가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한용진을 비롯해 전시를 기획한 사람들의 마음을 알리는 문구였다. 한편으로 관람객들에게는 마지막이라는 것, 그의 작품을 볼 기회가 다시는 없으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전시장 곳곳에서 저마다 각기 다른 추억과 감정을 가지고 문미애를 회고하는 미술가들의 짤막한 글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문미애의 균형 잡힌 추상화들과 어우러져, 그를 추억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마치 서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교감을 하듯 진열되어 있다.
 
전시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문미애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깊이가 깔려 있는데, 이를 흩트리지 않으면서도 한용진, 윤명로, 민병옥, 김창렬, 문소영 등 14인의 작품들이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며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특히 3층 전시장에서 만난 신수희 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2006)라는 작품은 시적인 제목만큼이나 아름다운 그림이라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것 같다. 화가가 만들어낸 파랑의 느낌이 무척 맑고 투명해서 기분이 좋았는데,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이 흐르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것 같은 아득한 그리움도 함께 느껴진다.

 <문미애를 추억하다>展 (2008)
흥미로운 것은, 문미애를 추억하는 작가들의 글귀가 이들의 작품들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전시회를 통해 한 예술가의 생애와 성품, 기질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곧잘 그런 유혹에 빠진다. <문미애를 추억하다> 전은 무리하게 그의 삶을 훑어내지 않는다. 전시장에 들어선 이들은 그의 작품과 함께 동료들이 추억하는 문미애의 모습을 단면 단면 마주치게 되고 매력을 느끼게 되지만, 너무 많은 호기심을 갖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은색머리에 생명력 있는 눈빛을 가졌던 사람, 작품활동에 대한 열정과 화가로서의 자존심이 강했던 여성, 자유분방함과 엄격함이 함께 느껴지는 작가, 자신의 작품들과 함께 영원히 떠나버리고자 했던 문미애. 그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상상해보며, 아쉽지만 아쉬운 마음까지 담아서 이제는 떠나 보내야 하나보다 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전시장을 나서게 된다.

<문미애를 추억하다>展은 6월 15일까지 계속된다. (02-391-77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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