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누구의 것? 제주는 갈등 중

[기획연재] 섬의 에너지자립 위해 ‘공풍화’해야

김동주 | 기사입력 2008/11/18 [13:36]

바람은 누구의 것? 제주는 갈등 중

[기획연재] 섬의 에너지자립 위해 ‘공풍화’해야

김동주 | 입력 : 2008/11/18 [13:36]
▲  태양광발전
제주도에는 최근 기후변화와 화석연료 고갈에 대비해 풍력 및 태양광발전이 많이 설치되고 있다. 특히 풍력은 대한민국에서 1번지라 불릴 만큼 우수한 바람자원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전국 최초로 상업발전에 성공하는 등 그 역사가 길다.

 
따라서 풍력발전단지를 건설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적극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기업들이 기존에 경제성장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해왔던 방식(불도저식)대로 풍력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지역주민과 갈등이 발생해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수익만을 우선시하는 태도는, 지역 에너지 전환에 대한 인식까지 부정적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즉, 풍력발전이라는 ‘녹색’을 기존 경제성장과정의 불도저식 ‘개발주의’처럼 하고 있는 ‘녹색 개발주의’의 폐해가 드러나고 있다.
 
풍력발전을 둘러싼 주민과 기업 간 갈등 깊어져
 
▲ 난산풍력발전단지 건설이 중단된 현장
제주도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풍력발전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제주도 동남부지역의 난산풍력발전단지를 둘러싼 갈등상황에서, 당사자들은 인근 다른 풍력발전단지를 반대하는 주민들과 연합해 ‘제주도 풍력발전 반대연합’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체계적이며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갈등의 상대편인 풍력기업뿐만 아니라, 풍력발전 자체에 대한 반대까지 주장하고 나서는 등 걷잡을 수 없이 문제가 증폭되었다.
 
그러나 제주특별자치도와 중앙정부는 풍력발전이라는 새로운 ‘전원개발사업’에 대한 제대로 된 법령도 갖추지 못한 채, 갈등 중재는커녕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기업은 그들 나름대로 풍력발전단지를 재빨리 설치해 발전차액지원제도에 따른 혜택을 얻고, 기후변화와 관련한 CDM(청정개발체제)사업을 수행해 더 많은 수익을 얻으려는 계산이 있기 때문에,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어쨌든 도내 최대 풍력발전운영업체인 공기업 한국남부발전(주)은 풍력발전사업을 계속 진행 중이지만, 나머지 민간기업들은 자금조달 및 주민갈등으로 인해 계속 보류되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도의 바람자원을 공공자산으로: 공풍화
 
풍력발전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더불어 외부에 의존하고 있는 섬의 에너지 문제를 해소하고, 지역발전을 위한 자원으로서 바람을 활용하기 위한 방안으로 필자가 제시하는 것은 “제주도 바람자원의 공익적 관리 및 공적 이용” 즉 “공풍화”이다.
 
▲  바람에 의해 한라산쪽으로 굽은 나무
제주도는 삼다(三多)의 섬이며, 그 중에는 바람이 포함되어 있다. 바람은 제주인들의 삶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바람은 언어(짧고 억센 사투리)와 건축(초가지붕 집줄놓기), 농경(흙이 날리지 않도록 밟아줌), 그리고 무속(바람의 여신인 영등할망을 위한 영등굿) 등 제주문화와, 자연생태(바닷바람으로 인해 한라산 쪽으로만 자라는 나뭇가지)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탐라국 개벽 이래 2천여 년 간 바람은 제주도민에게 고난과 역경이 상징이자, 실질적 장애였다.

 
그런데 불과 10년도 안 되는 사이, 외지 자본이 제주도의 고유한 자원인 바람을 ‘전기’라는 상품을 만드는 데 이용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바람과 함께 살아온 제주도민의 역사, 문화와 생태적 형평성에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이다.
 
풍력발전을 둘러싸고 발생한 제주 지역의 사회적 갈등을 관리하고, 바람자원 이용에 대한 제주도민의 역사, 문화, 생태적 형평성을 제고하며, 지역의 자연에너지자원을 이용한 지역자립에너지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제주도의 바람자원을 도민의 공공자산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법제화하는 것은 바람자원에 대한 ‘특허’권을 지방정부와 지역민이 갖고 있으면 되므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향후 다른 지역에 파급되어 지역에너지체제 전환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진도-제주 해저 송전선로 증설, 지역불평등 발생
 
▲  행원풍력발전단지
‘공풍화’를 통해 제주도에 공익 목적의 풍력발전단지를 많이 건설한다고 해서, 에너지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바람이 불지 않으면 전기 생산이 안 되므로 이에 대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풍력발전이 전체 에너지생산량의 20% 이상을 점유하면, 정전 등 에너지 계통 운영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다.

 
현재 제주도내 에너지는 전력부문의 경우, 도내 세 곳의 화력발전소에서 절반을 생산하고 나머지 절반은 해저 송전선로를 통해 육지의 핵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끌어다 쓰고 있다.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는 3%에 불과하다.
 
2006년 4월 1일, 제주도 전체가 장장 2시간 30여 분이나 정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해저 송전선로가 고장이 나서 전력공급이 차단돼, 제주도내 발전소까지 정지되었던 것.
 
정부와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그해 8월 말, 광역정전에 대비하기 위해 제주도내 LNG발전소를 신설하고 이와 병행하여 해저 송전선로를 증설하는 내용의 제안을 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후인 지난 8월, 정부와 제주도는 제주도에 LNG발전소 건설계획을 취소하고, 400MW규모의 해저 송전선로만을 증설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송전선로가 연결되는 전라남도 진도군은 섬을 반토막 내는 송전탑 건설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제주도로 보내주는 전기를 위해 진도주민들의 전력사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력변환소와 송전탑을 세우겠다는 것이기에, 지역간 불평등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제주도 입장에서는 전력공급의 대부분을 육지에 의존하는 것이므로, 에너지체제의 종속이 심화된다고 볼 수 있다.
 
진도에서는 진도군 차원에서 공식 반대입장을 표명했고 대규모 궐기대회도 벌어졌지만, 제주지역에서는 정책 변경과 관련한 민주적인 절차가 전무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도민들은 잘 모르고 있고, 타 지역 문제라고 치부하는 듯하다.
 
섬은 일정한 수준의 에너지 자립이 필수적이다
 
▲ 한경풍력발전단지 (한국남부발전)
제주도는 섬이기에, 물질과 에너지에 대한 일정한 수준의 자립이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해저 송전선로 증설은 지역간 불평등을 발생시키며, 섬의 에너지를 육지에 종속시키고 있다.

 
또한 에너지를 자립하기 위해 도내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바람자원을 이용한 발전시설들이 필요하지만, 사업주체인 기업들이 수익만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재생가능에너지의 친주민적, 친환경적, 친지역적인 성격을 매우 퇴색시키고 있다.
 
바람자원을 사회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공풍화’를 주장했고, 제주지방정부가 관련 용역을 수행 중이지만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실행에 들어갈지 여부는 모르는 일이다. LNG발전소 건설을 취소하고 해저 송전선로 증설이라는 정책 변경과정에서 어떠한 민주주의도 찾아볼 수 없었던 정부의 자세라면, ‘공풍화’의 실현도 쉽지 않을 듯하다.
 
섬은 매우 취약하기에, 섬 주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친시장적인 정부와 독단적인 기업들에게 지역의 자연자원이 약탈되고 민주주의도 퇴보할 수밖에 없다. 제주도뿐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섬’주민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정치센터(www.enerpol.net)와 일다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에 관련한 기사를 공동으로 기획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자 김동주님은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팀장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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