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태일이와 어린 여공, 그 낮은 목소리들

만화상 수상작 읽기③ <태일이>

김은혜 | 기사입력 2010/03/08 [02:09]

배고픈 태일이와 어린 여공, 그 낮은 목소리들

만화상 수상작 읽기③ <태일이>

김은혜 | 입력 : 2010/03/08 [02:09]
<남녀 간 차별의 벽이 과거와 달라지는 가운데, 만화계도 성별유통구조 즉, 남성작가-여성작가, 남성독자-여성독자이라는 이분법이 허물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만화작품 속 여성주의적 시각은 어느 정도 진일보했을까. 어느 정도 균질화됐을까.
 
2009년 지난 한 해 만화관련 기관과 단체에서 우수작품을 선정했다. ‘오늘의 우리만화상’, ‘부선만화대상’, ‘독자만화대상’ 등의 수상작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검증 받은 작품이다. 이들 작품을 대상으로 여성주의적 읽기를 시도해 본다. 스포일러 유의. -편집자 주>
 
◇<태일이> 박태옥 글, 최호철 그림 (돌베개, 2009 완간)
-제6회 부천만화대상 수상작-
 

1970년, 경제성장과 토건국가 건설의 명분하에 은폐되었던 여공들의 고달픈 노동현장을 고발하고 낮은 임금에 시달리는 피복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사회적으로 울리게 했던 전태일의 삶과 죽음이 만화로 그려졌다.
 
반향은 크다. 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됐지만 독자층은 의외로 넓다. 단행본으로 발간되면서 아이와 함께 읽는 부모, 사서 보는 성인이 늘어난 덕분이다. 지난 해 가을에는 제6회 부천만화대상을 받았다.
 
배고픔의 근원을 묻다
 
▲ 박태옥 글, 최호철 그림 <태일이> (돌베개)
이야기는 1959년 서울, 한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판자촌과 동대문 시장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거리를 활보하다 만난 비루한 넝마주이 아저씨를 두려워하는 동생들에게 “애들 잡아다 팔아먹는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이라고 일러주는 태일이. 가난한 이들에게 덧씌워진 사회적 터부와 이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는 태일의 태도는 이후 넝마주이 아저씨처럼, 배고프게 성장해야 하는 그의 앞날과 잘못된 것은 바로 잡는 올곧은 그의 성품을 암시한다.

 
가출을 하고 부산에서 굶주림에 지쳐 바다에 버려진 무 한 조각을 주워 먹으려다 익사할 뻔한 태일의 모습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그 비루한 일상 속에서 태일은 ‘난 왜 언제나 이렇게 배가 고파야 하나’ 굶주림의 근원을 생각한다.
 
태일이를 거리로 나서게 한 것은 일단, 사업실패로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진 채 술과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에게 있다. 어머니는 가계의 몰락을 견디다 못해 순간 미쳤다. 열네 살 태일과 어린 동생들이 실의에 빠진 아버지와 어머니를 돌봐야 했다. 이들 가족의 고단한 생계활동은 당시 빈곤계층의 삶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 전상수가 무너진 것은 4.19 혁명 즈음, 난리통에 빚어진 사기 때문이었다. 억울하게 사기를 당했어도 호소할 데가 없고 법적 보호가 전혀 안 되는 시대였다. 정치적 혼란기, 경제적으로 억울한 상황을 당했지만 개인이 해결해야 했다. 작가는 태일이 가족의 몰락과 해체를 시대적 맥락 아래에 설명하면서, 이에 대한 책임이 단지 전상수라는 가부장 개인의 리더십 부재와 아내나 자식 등 구성원의 노력 부족에 있었던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태일이를 울린 시다
 
“여기 있는 애들이 죄다 시골에서 왔잖니? 잘 곳도 없어서 공장에서 자고. 아침이나 겨우 해먹지 점심은 생각도 못해. 게다가 넌 실력도 좋고, 남자고…. 부럽지 않을 수가 있겠니?”   ‘정말 날 부러워하네. 세상에!’  -3편 36~37쪽 중에서
 
▲ 박태옥 글, 최호철 그림 <태일이> (돌베개)
열 살이 갓 넘은 봉제공장 ‘시다’들은 태일이를 부러워한다. 태일은 가난한 자신을 부러워하는 시다들의 시선에 그들의 낮은 환경을 돌아본다. 창문 하나 없는 작업 공간, 재단사-재단보조-미싱사-시다의 분배구조, 먼지구덩이 속에서 장시간 일하느라 얻은 병….

 
그는 또 평화시장 안의 성차별적 구조를 간파했다. 청계청과 동대문 일대에서 의류, 섬유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수는 엄청났는데 그 중 85~90%가 어린 소녀를 포함한 여성이었다. 시다로 일하는 소녀들은 대부분 지방출신으로 오빠나 남동생의 학비를 대기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 이들의 노동은 철저히 타율에 의한 것이다.
 
태일은 이들의 ‘오빠’가 되어 준다. 태일은 어린 시다들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차비를 털어 그들에게는 한 끼의 식사 될 풀빵을 사준다. 기존의 재단사와는 다른 모델의 재단사를 꿈꾼다. 그러나 기존의 재단사를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에 직시하게 된다. 생산자가 아닌 노동자라는 측면에서 재단사의 위치는 시다의 위치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용자 앞에서는 입이 있어도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하위주체’라는 노동자의 위치를 바라본다.
 
평화시장을 가득 채운 태일의 외침
 
태일은 노동자의 권리를 생각한다. 연대를 기획하고 전략을 모색한다. ‘바보회’와 ‘삼동침목회’가 꾸려진다. 그림자에 가려졌던 노동자들의 규모와 환경이 어떤지 실태를 조사하고 계량화하여 가시화한다. 마침내 단수였던 태일은 복수인 그들이 된다. 시다들도 복수로 발화하기 위해 거리로 나오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1970년 10월 24일, 11월 13일, 약속한 시간에 돌리던 재봉틀을 놓고 자신들의 인권을 외치려 했던 어린 시다들의 목소리는 번번이 새어 나오지 못한다. 태일이와 함께하려 한 어린 시다들의 행진은 사장과 한통속이 된 경비원, 경찰, 공무원들의 저지에 번번히 가로막힌다. 그리고 태일의 분신을 목도하게 된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일요일은 쉬게 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는 태일의 외침은 곧 평화시장을 가득 채운 80~90% 여공들의 응어리진 한맺힘이고 경제 성장이라는 명분아래 내동댕이쳐진 노동자들의 인권이었다.
 
만화는 맨 마지막 장 ‘뒷이야기’ 편에서 태일의 분신 이후 펼쳐진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 압축적으로 말한다. 근로시간 단축, 일요일 휴무, 다락방 철거, 환풍기 설치 등 태일이 요구했던 것이 어느 정도 이뤄지기까지 2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 40년이 지난 지금도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노동자의 권리는 뒤로 처지고 여전히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현재의 상황을 꼬집는다.
 
하위주체인 여공의 목소리를 찾아서
 
▲ 박태옥 글, 최호철 그림 <태일이> (돌베개)
전태일의 동생이자 여성노동운동가인 전순옥 박사는 1970년대 여성노동자의 낮은 위치와 이들의 투쟁이 노동운동사 측면에서 어떻게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지를 고찰했다. 그녀가 쓴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신문사, 2004)에 따르면 어린 소녀들과 젊은 여성들은 일찍이 여성에게 낮은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적 배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순진’해서 비양심적인 공장주들이 이용하기 좋았다고 지적한다.

 
또 공장 안 숙소는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언제나 통제가 가능한, 착취의 온상이 되었다고 한다. 고용주는 여성노동자들이 하루 중 언제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급한 주문이 들어와도 사전 통지 없이 여성노동자들에게 손쉽게 시간외 근무를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얼마나 지옥 같을까요?’라며 한숨짓는 어린 소녀들과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억눌렀던 것은 비단 환풍기 하나 없고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했던 노동 환경만은 아니다. 태일이처럼 스스로를 위해 거리로 뛰쳐나올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그 가난한 의식과 온몸을 불살라 자신의 소리를 대신 외쳤던 지도자 태일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깊은 슬픔은, 문화적으로 가정적으로 경제적으로 복종만을 가르쳤던 다각적이고 다양한 압력이 만들어낸 장면이었다.
 
다큐멘터리 만화가 혹은 이 시대 풍속화가로 불리어지는 최호철 작가는 이미 그의 전작 『을지로 순환선』에서 ‘관계는 보이는 이미지 뒤에 숨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단 한 칸의 그림이 수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본 걸 그린다’고 말하는 그는 작품을 통해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노인, 아이, 임산부 등 우리 사회의 다수 구성원이만 소수로 치부되어 언급되지 않았던 이들을 중심에 위치시킨다. 그리고 경제 성장과 함께 그늘진 공간, 경쟁과 소외의 현장 등 현대 한국 사회의 세태를 한 폭에 담아낸다.
 
이러한 그의 스타일은 만화 『태일이』에서도 유감없이 볼 수 있다. 당시 평화시장의 봉제공장의 복잡한 분업구조를 한 칸으로 집약해 즉자적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이들의 창문 하나 없는 작업 현장과 고된 표정을 통해서 사용자의 비인간적인 처우를 느끼게 한다. 사용자와 한편에 선 자들을 ‘거대한 벽’으로 상징화하고 ‘그 벽을 올라타려는 낮은 위치의 노동자’를 한 폭의 그림에 담아냄으로써 노동운동의 의미와 역동성을 이미지화 한다.
 
만화 『태일이』는 평전이나 영화, 소설 등 여타의 매체보다도 너무도 쉽게 읽혀진다. 그리고 쉽게 가슴을 울린다. 왈칵 눈물을 쏟아내게 하고 오랫동안 아리게 한다. 시대 탓일까. 이 작품은 노동유연화란 명분으로 비정규직이 일상화되고 여성화되는 지금의 우울한 산업현장과 1970년대 여공의 노동현장을 비교하고 등치 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한편으로 1970년대 현존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여태껏 아무도 지금의 아이들에게 그의 이야기를 꺼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웅서사에 익숙한 아이들과 소통을 시도하는 만화 『태일이』는 수많은 성장만화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이 시대 특별한 문제작이 된다. 
 
※ '김은혜의 만화읽기' 필자 소개: <여성 다시 읽기>와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회원이자 방송작가. 네 살 난 아이와 함께 애니메이션 보는 것을 즐기는 유쾌한 워킹맘. 순정만화를 탐구하고 홍보하는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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