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박과 룰을 갖고 노는 ‘강한 언니’의 충고

차우진의 노래 이야기 (4) 브라운 아이드 걸스 - “Candy Man”

차우진 | 기사입력 2010/10/25 [17:59]

속박과 룰을 갖고 노는 ‘강한 언니’의 충고

차우진의 노래 이야기 (4) 브라운 아이드 걸스 - “Candy Man”

차우진 | 입력 : 2010/10/25 [17:59]
<필자 차우진님은 대중음악비평웹진 '[weiv]'(웨이브)의 편집인이며, 음악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차우진의 노래이야기’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중심으로 한 칼럼으로, 격주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철지난 얘기 같지만, 걸 그룹에 대해 한 번 더 얘기하자.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을 휩쓴 걸 그룹 열풍은 팬덤과 젠더, 가요의 질적 성장에 대해 여러 가지 논점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중요한 건 음악적 변화라는 맥락에 있다.
 
대중음악을 산업적 관점에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들었다는 건 한편으론 대중음악에 대한 논점을 풍부하게 만들었지만, 또 한편 음악 비평의 무게중심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어떤 쪽이든 이해하고 분석하고 글을 쓰는 입장에선 흥미로운 일인데 개인적으로 특히 관심을 가진 걸 그룹은 브라운 아이드 걸스다.
 
채찍을 휘두르는 여사제들
 
▲ “Candy Man”이 수록된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3집 앨범
잠시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하자면,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막 데뷔했을 때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이들로서는 나와의 만남이 거의 첫 공식적인 인터뷰였는데, 그래서인지 이들은 바짝 긴장해있었다.

 
개인적으론, 당시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신인들 중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터뷰는 겉돌았고 시간은 더디게 갔다(게다가 이제 막 EP를 발표한 신인에게 대체 뭘 물어보겠는가). 그런데 사진 촬영을 할 때,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비눗방울 콘셉트였는데, 가인이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동행한 사진기자와 나는 가인의 팬이 되었다. 이 얘기를 왜 하냐면, 브아걸에서 가인은 (나르샤와 함께) ‘권력을 가진 여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핫팬츠에 탑을 입고 섹시한 자태를 뽐내지만 그게 남성의 성적 대상화란 관념에 포섭되지는 않는다. 이들은 채찍을 휘두르는 여사제들이고 그 발밑에는 건장한 남자 노예들이 복종한다.
 
이런 이미지는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대중문화의 이중적 속성이다. 클레오파트라와 천추태후와 마를린 먼로와 마돈나가 구사해온 권력의 이미지란 점에서 자본주의 안에서 여성의 성역할에 대한 복잡한 관점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가 극대화된 건 아무래도 3집 앨범에 실린 “Candy Man”이다. “아브라카다브라”에 밀려 거의 공개되지 않은 곡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노래야말로 최근 몇 년 동안 등장한 걸 그룹 싱글 중에서 압권이라고 생각한다.
 
쉴 틈을 주지 않고 질주하는 곡 구성
 
[“Candy Man” 라이브 영상보기]

이 곡은 일단 듣는 사람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코러스가 치고 나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인다. 보컬에도 확신이 넘치는데 그 확신이야말로 섹시함의 기반이 된다. 묵직하게 둥둥거리는 비트 위에 새겨진 촘촘한 멜로디가 물 흐르듯이 흐르는데 클라이맥스는 “what's up little girl”이 나오는 부분부터 시작된다. 곡의 압권은 “마음이 팝 / 여기저기도 팝팝 / 터지네 팝 / 여기저기서 팝팝”으로 구성된 훅(hook)인데, 전체 구성을 보면 대략 코러스가 먼저 치고 나오고 주요 테마가 진행되다가 다시 코러스로 반복되며 끝나는 구조다.
 
간단하고 짧다. 그래서 인상적이다. 거꾸로 선 삼각형, 혹은 기울어진 느낌을 주는 이 구조는 그래서 긴박하고 위태롭고 빠른 인상을 준다. 내리막길로 질주하다가 딱! 하고 끝나는데 그 자체로 깔끔하고 미려하다. 간주도 없이 진행되는 곡은 노래에 완전히 집중하게 만든다. 특히 미료의 거친 랩은 촉망받는 기대주였던 허니 패밀리 시절을 연상시킨다.
 
내키는 대로, 자기 자신으로
 
이 노래의 내용을 압축하자면, ‘바람둥이(혹은 나쁜남자)에게 상처받은 언니의 충고’다. “what's up little girl / 혹시나 하지 말길 바래 / what's up little girl / 역시 울지나 않길 바래”로 이어지는 랩은 이 곡의 테마를 한마디로 압축하는데 이 충고가 경험적이란 점에서, 또한 직설적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요컨대 돈과 달콤한 말로 여자를 속이는 남자 따위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나도 모르게 넘어가 개고생한 언니의 충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이 흥미로운 건, “아브라카다브라”와 마찬가지로 브라운 아이드 걸스를 다른 걸 그룹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 갖다놓기 때문이다.
 
이들과 비슷한 곳에 있다고 여겨지는 2NE1이 아직 세상물정 잘 모르는 여자(소녀)들의 각오를 대변한다면,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산전수전 다 겪은 언니들의 이미지를 고수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친절하거나 상냥한 건 아니다. 언니는 강하다. 한 마디 툭 던질 뿐이다. 다만 모든 저주는 남자에게로 향한다. 믿음직한 선배인 셈이다.
 
아마도 이 노래가 강렬한 건 이 묵직한 비트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노래가 만드는 정서가 강한 여자, 적어도 남자에게 휘둘리지 않게 된 여자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미지 덕분에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조권을 갖고 노는 가인이나, <청춘불패>에서 예쁜 척하지 않는 언니의 면모를 보이는 나르샤의 포지션이 가능했다.
 
이때의 교훈은 이것이다. 어떤 여자들은 대중문화 산업에서 특정 시선에 포섭된 채 정체화(identified)되지만, 어떤 여자들은 그 속박과 룰을 가지고 논다. 중요한 건 그게 전략이기도 하고 의지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 이중적 속성은 필연적으로 어떤 선택을 촉발시킨다. 바로 자기 자신으로 살라는 것.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쁜 척, 착한 척, 감성이 풍부한 척 꾸밀 필요 없다. 내키는 대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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