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아이를 낳을 것인가?

윤하 | 기사입력 2003/08/29 [23:29]

어떻게 아이를 낳을 것인가?

윤하 | 입력 : 2003/08/29 [23:29]
한국이 '제왕절개 수술' 세계 1위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출산을 앞두고 있는 산모들에게 의사들이 여러 이유를 들어 은근히 제왕절개를 권한다는 이야기는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들은 바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왕절개 수술이 줄어들고 있다는 보도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그 보도의 '관점'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 보도는 의사들의 돈벌이 욕심을 분명하게 지적해 주었지만, 여성들의 고통없는 출산에 대한 욕망이 마치 범람하는 제왕절개의 근본원인인 것처럼 다루고 있었다. 또 마치 여성들이 제왕절개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기라도 한듯이 그 장점을 들어가며 자연분만을 권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의사가 생명의 위험을 운운하면서 태아의 건강한 출산을 위해서는 제왕절개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고 운을 뗄 때, 과연 제왕절개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은 임산부나 그 가족들에게 협박이나 다를 바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는 여성들이 출산방법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할 수 없으며, 자연분만이 몸에 좋으니 될 수 있으면 자연분만을 하라는 말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물론, 소위 좋은 사주를 아이에게 점지해 주기 위해 날짜는 물론 시간까지 맞춰 수술하는 여성들도 개중에 있다곤 하지만, 욕심이 그 지경에까지 이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논할 가치조차 없다. 여기서 나는 의사들에 의해 제왕절개가 권유, 강제되고 있는 메카니즘에 대해서만 문제삼고자 한다. 즉, 제왕절개를 둘러싼 문제의 근본원인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출산의 병원 독점’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는 임신을 하는 즉시 매달 정기검진을 받으며, 산달이 되어서는 매주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들은 은연 중에 그녀들의 몸이 태아를 키우기에 너무 불완전하고 위험하다는 느낌을 끊임없이 주입받게 된다. 그리고 출산 예정일에 몇일 앞서 출산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해 있는 산모들에게 의사는 아이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 어찌 좀 위험하다는 등, 여러 핑계들을 대가며 수술을 유도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임신은 결코 질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질병 치료를 위한 병원의 산부인과에서 여타의 질병들과 함께 다뤄진다. 이러한 시스템 역시 임신과 출산이 마치 질병인 양 은연중에 세뇌시키는 한 기제이다. 게다가 산전산후통을 격는 내내 병원 측의 배려라고는 조금도 없는 소외된 상황에서 출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의사들이 고작 하는 것은 이제 막 나오려는 아이를 받는 것 외에 무엇을 도와준다는 말인가?

결국, 산부인과, 즉 병원이라고 하는 남성적 영역 속으로, 소위 여성들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출산'이 통제되어 왔던 기존의 관행이, 결국 ‘무분별한’ 제왕절개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현상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시급한 것은 출산에 대한 병원의 독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다. 즉, 여성들의 몸과 경험이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는 출산시스템을 새롭게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조산원을 개혁하고 발전시키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얼마 전 몇몇 조산원에서 출생한 신생아들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공정한 보도는 아니었다. 실제로 병원에서 출산하다 사망하는 경우와 조산원에서 출산하다 사망하는 경우를 비교한 후 조산원의 위험도를 말했어야 했지만, 병원에 대한 언급은 생략되어 있었다. 비록 조산원이 병원에 비해 출산의 위험이 더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조산원이라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그곳들의 낙후된 시설이 더 문제라고 봐야 한다.

조산원 제도를 활성화하고 전문인력과 시설을 확충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경제적,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준다면, 경험 많은 조산원의 격려와 도움은 출산과정에서 완벽하게 소외되어 있는 산모에게 자신이 출산의 주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여성들의 출산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좀더 다양한 출산시설을 갖출 때만이 여성들의 몸과 생명의 탄생과 관련한 값진 일이 저급한 상술의 논리에 놀아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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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ngolia 2003/09/03 [01:18] 수정 | 삭제
  • 제왕절개술을 되도록 하지 않는 병원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 병원은 산모가 아이낳는 동안 남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더군요.
    병원 쪽에서 제왕절개술을 하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래요.
    아이 낳는 데 남편이나 타인이 함께 있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은 거구요.ㅠㅠ

    요즘은 앉아서나 서서 아이를 낳을 수 있게하는 곳도 있잖아요?
    비교했을 때, 이 병원은 여성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병원은 당연, 임산부는 누워서 아이를 낳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보는 거죠.
    그런 면에선 제왕절개술을 유도하는 병원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트위티 2003/09/02 [00:11] 수정 | 삭제
  • 몸이 어떤 대우를 받느냐에 따라서, 소중하게 다뤄지면 내 몸이 소중한 줄 알고, 하찮게 다뤄지면 내 몸의 자존감도 잃게 되는 것 같아요.

    병원에서, 특히 산부인과에서, 여성의 몸을 기계처럼, 인격없는 살처럼 다루기 때문에 출산이 기쁨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아들 낳으라는 모종의 압력에다가 고통에다가, 때로 수술을 하고도 산모는 몸이 수술을 했는지 조차 모른다고 하죠.

    병원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여성의 몸을 소중하게 아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아이를 병원에서만 낳도록 하지 않는 방법은 꼭 도입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 말리 2003/08/31 [23:50] 수정 | 삭제
  • 의사가 위험하다고 하면 제왕절개 안할 수가 없죠.
    정말... 그런 상황에서 수술 안하고 낳겠다고 하는 경우는
    아주 특수한 산모나 가능할 거에요.
    특정 종교 때문이거나, 돈이 너무 없거나. -_-
    의사가 돈 때문에 수술을 하게 만든다니... 충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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